한동훈이 불 지핀 지구당 부활론, '대권용'일 뿐
[김찬휘 기자]
▲ 4월 11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제22대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당사를 나서며 당직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정치개혁'이라 쓰고 '정치독식'이라 읽는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이 5월 30일 페이스북에 '지구당 부활'을 지지하면서, 난데없이 정치권에 지구당 부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지만 "지금은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일주일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발언에 화답한 것이다. 5월 23일 이재명 대표는 부산의 '당원 주권시대' 컨퍼런스에서 "지구당 부활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었다.
지구당은 2004년 폐지됐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수백억 원의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한 이른바 '차떼기 사건'을 계기로, 정치관계법(이른바 오세훈법)이 개정된 결과였다. 거대 여야의 유력 정치인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구당 부활', 과연 정치개혁일까?
지구당의 장점을 꼽자면
현재는 시도당 사무실과 시도당 유급직원만 가능하지만, 지구당이 부활하면 지역구 단위의 사무실과 유급직원 운영이 가능해진다. 정당 경상보조금도 지구당으로 보낼 수 있고 지역구 단위로 후원금(예컨대 연간 5000만 원)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국회의원이 아닌 당협(지역)위원장이 사무실을 합법적으로 두고 지역구 활동을 하면서 차기 선거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장점을 생각할 수 있다.
'지역구 단위에서 사무실과 후원회를 둘 수 있는 국회의원과 그렇지 못한 원외 정치인 및 정치 신인 사이의 형평성을 개선하며, 당원협의회의 편법적인 운영을 탈피하여 원외 당협(지역)위원장의 정치자금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을 높인다.'
2004년 지구당이 폐지될 때 민주노동당은 그것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소원을 했고, 20대 국회와 21대 국회에서 일명 '노회찬법'이란 이름으로 지구당 부활에 관한 정치관계법 개정안이 계속 발의된 적이 있다. 국회의원이 없거나 매우 적은 소수정당의 입장에서도, 지구당은 지역 차원의 정치 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월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당원주권시대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컨퍼런스에서 지난 총선 낙선자와 당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 연합뉴스 |
하지만 딱 여기까지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필요하지만 정치개혁 과제에서 가장 시급하지도 가장 중요하지도 않은 것이므로, 진정한 정치개혁의 과제를 미루거나 도외시하게 만든다.
첫째, 한동훈 전 위원장은 지구당 부활을 "정치영역에서의 '격차해소'"라고 정의했다. 나는 묻고 싶다. 누구와 누구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인가? 국회의원 정치인과 원외 정치인 사이의 격차를 말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상위 10%의 소득과 자산이 전체 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상황에서 국민 전체의 소득-자산 격차를 줄이는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상위 1%와 5% 사이의 격차 해소안을 내놓고 '소득 격차 해소'라고 말하는 것 같은 것이다. 지구당 부활 주장이 '그들만의 리그' 얘기처럼 들리는 이유다.
더 나아가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 전 위원장이 '당권'을 강화해 '대권'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지구당 부활 카드를 꺼냈다는 중론이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강성 지지층과 온라인 조직력을 지구당의 오프라인 세력화로 연결시킬 수 있고, 원내 기반이 약한 한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으로서는 원내보다 많은 원외 위원장의 지지를 엮어 힘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다면 지구당 부활은 '대권 주자들의 리그'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격차해소"라고?
둘째, 기득권 양당 체제를 전혀 위협하지 않는, 아니 기득권 양당 체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개혁'이다. 지구당이 생겨 경상보조금 지원이 가능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보조금이 많아야 지원도 많이 할 것이 아닌가?
2023년 경상 국고보조금 총액은 476억 원이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46.9%, 국민의힘이 42.5%를 가져갔으니 양당이 89.4%를 가져 간 것이다. 기득권 양당에게만 유리한 정치자금법 국고보조금 조항(정치자금법 제27조)을 개선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영역에서의 격차해소"인데, 이 격차를 해소하지 않고 지구당 지원만 가능케 한다고 정치개혁인가?
영국 노동당이 노동조합의 후원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등 단체(정치자금법 제31조)는 물론이거니와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의 개인 후원금(정치자금법 제8조 1항)도 금지돼 있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토호들과 개발업자들의 돈이 원외 정치인과 '정치신인'으로 흘러들어 가고, 당선이 되자마자 지역 토건사업을 일으키느라 정신이 없게 된다. '은혜'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선거가 다가오면 '업자'들이 연합하여 특정 후보를 '몰빵 지원'하는 일도 왕왕 일어난다. 따라서 정치자금법의 이 규정도 바꿔야 한다.
정치자금 세액공제 제도(정치자금법 제59조)도 불완전한 제도다. 연간 10만 원까지는 100/110, 10만 원 초과분은 15%, 3000만 원 초과분은 25%까지 감면해 주는 것은 '세액'이다(지방세 10/100 추가 공제). 다시 말해 세금을 연간 10만 원 미만으로 내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혜택이 없는 제도다.
▲ 제22대 국회 개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5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걸려있다. |
ⓒ 남소연 |
셋째, 정치관계법은 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으로 구성된다. 두 번에 걸친 '위성정당'으로 그 존재 이유가 파산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그냥 둘 것인가? 위성정당 + 준연동형 = 병립형인데, 언제까지 '조삼모사'로 방치하면서 눈가리고 아웅하려 하는가?
OECD 38개국 중 27개국이 정당명부식/연동형 등 100% 비례대표제를 가지고 있고,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형인 5개국도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61.3%~37.8%다. 한국은 비례대표 15.3%에 불과하다. 지구당 부활만이 아니라 공직선거법 개정에 거대 여야가 착수해야 한다.
거대 여야가 손봐야 할 것들
정당법도 독소조항 투성이다. 중앙당을 수도에(3조) 두고, 5개 이상 시∙도에(17조)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18조) 한다는 규정도 문제다. 일단 '지역정당' 출현을 막는다. 또한 1000명은 경기도민의 0.0071%고 세종시민의 0.28%인데, 이건 세종시민이 경기도민보다 정당 활동이 약 40배는 더 어렵다는 얘기다. 형평성이 전혀 없는 자의적 규정이다.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은 정당원이 될 수 없다는 22조와 선거연합정당 등을 가로막는 '이중당적' 금지(42조 2항)도 개정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대통령 거부권을 제한하며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를 도입할 수 있는 헌법 개정도 절실하다. 결선투표제가 없는 것도 기득권 양당체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된 또 하나의 원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가 있는 곳이 85개국이고 결선투표제가 없는 곳이 22개국이다. 결선투표제는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말한 "특권 폐지"와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 말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런 제도 개선이 수반돼야 가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구당 부활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지구당 부활만을 외치는 정치개혁은 개혁일 수 없다. 국민을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돌보는 정치개혁은 '정치독식'일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찬휘씨는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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