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전 장례식'이라면 환영입니다
[장순심 기자]
엄마와 이혼하고 런던에서 거주하는 아버지의 재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는 딸 해들리 설리반(헤일리 루 리처드슨)과 암투병 중인 어머니의 생전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는 아들 올리버 존스(벤 하디)는 매일 수천 명이 오간다는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이어 또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 탑승한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린다.
7시간의 비행시간,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잠에 든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헤어지기 직전 올리버는 해들리의 휴대폰에 번호를 남기지만 미처 저장하기도 전에 해들리의 휴대폰은 고장 나고 만다. 서로를 연결해 줄 무엇도 없지만 이미 둘의 마음엔 서로가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 영화 <첫 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 스틸 이미지. |
ⓒ 넷플릭스 |
영화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2023)은 확률상으로 불가능한 사랑을 기어코 성취하고야 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영화는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운명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러줄 때만 운명이 될 수 있다'라고 영화는 이야기하는데, 결국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특이한 것은 영화의 내레이션(내레이터 역, 자밀라 자밀)이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인물이 책을 읽어 주듯 이야기의 흐름을 해설하며 두 남녀를 운명으로 안내한다. 목소리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해 상황을 설명하고 흐름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는 목소리가 영화의 배역으로 당당히 등장해서 두 주인공의 결정적 순간을 연결한다.
영화는 또 죽음과 이별을 이야기한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가정이라면 한 번쯤 장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아니어도 요즘은 본인의 장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도 많다. 사실 영화에서의 장례식 장면을 볼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우리의 장례식의 그 이상한 풍경과 불합리, 낯섦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꽃으로 가득한 단 위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망인의 사진. 조문객으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고 준비한 돈을 부조함에 넣는다. 침울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웃음도 농담도 왠지 용납돼서는 안 되는 공간에 딱 어울리게 눈물방울을 찍고 조문하는 사람들. 맛없는 밥을 억지로 삼키는 것처럼 식탁에 앉아 기계적으로 차려진 음식을 젓가락으로 휘젓는 모습 등. 담배 연기 가득한 장례식장 주변의 풍경과 그곳에서 재산이나 이해를 둘러싼 싸움이라도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죽음을 위한 의식이 완성된다.
이런 풍경이 적어도 나의 장례식에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꽤 구체적으로 얘기한 적도 있다. 그 한 가지 예를 올리버의 엄마 테사 존스(샐리 필립스)의 장례식이 보여주는 것 같아서 신선하고 반가웠다.
"37, 셰익스피어가 평생 쓴 희곡의 숫자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신 낭독과 연극의 횟수이기도 하죠. 1900, 어머니가 저를 학교에 데려다주신 날 수입니다. 제가 운전을 시작하기 전까지요. 두 번, 제가 실연당했을 때 어머니가 딸기잼 파이를 만들어 주신 횟수죠. 그런데 저는, 엄마의 인생을 숫자로 측정하려고 해 봤습니다. 그게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 엄마, 제가 그러는 거 아시잖아요. 전 모든 걸 다 그렇게 하죠.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테사 존스는 숫자가 아니란 거죠. 연극으로 올린 희곡이나 만든 음식이나 조언의 횟수가 아니라 엄마죠.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영화는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예고된 죽음은 주변의 모두를 괴롭고 힘들게 한다. 그러나 생전에 가까웠던 사람들과 이별하기 위해 마지막 공식행사로 기획된 놀이라면, 나와 교류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자리라면, 먹고 마시고 추억하다가 많이 슬퍼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테사 존스의 생전 장례식은 1시간 32분 지속되었습니다. 26개의 추도사 공연이 있었고 9개는 독백이었으며, 시 낭송 다섯 편,노래 여덟 곡, 춤 세 번, 프리스타일 랩 하나, 이상한 디제이 세트도 하나 있었죠.
87%의 손님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사랑이란 단어는 39번 나왔으며, 한 아들은 비행기에서 만난 그녀와 손을 잡고 있었으면 했지요.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도 간소화된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전의 형태로 고인을 추모하거나 생전에 좋아하던 노래나 취미를 함께하는 것으로 추모하기도 한단다. 코로나 이후 먼 곳에서 참여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온라인 조문도 있다고 하니 마지막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조심스럽지만 고인에 대한 진심을 다하려는 것 같다.
영화 <써니>(2011)에서도 색다른 장례식이 나온다. 장례식장에 고인이 가장 찬란했던 때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 함께 추었던 춤을 추며 공연의 형태로 치르는 모습은 경직된 장례식의 분위기를 파괴하며 다른 어떤 의식보다 더 진하게 고인을 추억하게 한다. 결국 장례는 관습이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까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사이토 디카시의 <일류의 조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에너지의 완전한 연소'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며 그 연소 방법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라고.
이는 죽음에도 연결되는 말인 것 같다. 생의 모든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죽음, 그 모범을 테사 존스의 장례식에서 본 것 같다. 선택의 주체가 되어 죽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마지막 과정을 스스로 실행하는 이런 마지막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기꺼이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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