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고통이 두렵다"는 뭉크 속에서 나를 본다

황융하 2024. 6. 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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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승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 오는 9월 19일까지

[황융하 기자]

 "이번 뭉크 전은 아시아 미술사에 남을 최고의 회고전이다."
-디터 부흐하르트 전시 큐레이터, 서울신문 특별호에서 인용
  
"예술은 고통을 자양분으로 피어나는 꽃"이란 이 말은, 예술을 탄생시킨 작가의 핍진한 삶을 알아보았던 어느 철학자가 했을 법도 하다. 아니면 예술가의 작품을 담대하게 관람하던 여느 관람자의 남모르는 신음일 수도 있겠다.

인용한 문장에 덧붙이거나 변용된 표현은 진부할 정도로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술의 심적 동요와 고귀함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 <흐트러진 시야> (섹션14) Oil on Canvas. 80.5 x 64.5 1930 (전시장에서 재촬영)
ⓒ 황융하
서울 서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지난 5월 22일부터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가 열리고 있다(19세 이상 성인 기준 입장료 2만 원).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대표작인 <절규>와 <마돈나>를 포함해서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행운이 열린 셈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뭉크의 유명작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삶과 예술 세계는 물론, 표현주의와 급진적인 실험성까지 심도 있게 탐구할 기회마저 제공한다.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심리적, 감정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전열하면, 어두운 색조가 주를 이룬다. 이는 불안, 고독, 죽음의 고통에서 기인하되 인간 존재의 미약한 본질을 각인토록 해준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계시처럼 단호하되, 작품에서 직감되는 무게가 단연 관객을 압도한다.
 
▲ <임종의 자리에서> <By the Deathbed>(섹션4) 종이에 석판, 45 x 54.3cm 1896 (전시장에서 재촬영)
ⓒ 황융하
  
140점이 전시되는데, 20세기 예술을 대표했던 뭉크의 대표작인 <뱀파이어>와 <키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상징적인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개인 소장품들도 다수 전시되었다. 노르웨이 뭉크미술관(9점)을 비롯해 미국, 멕시코, 스위스 등지에서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126점)이 한국에 모였다. 그리하여 관람객은 그의 예술적 진화와 변주를 하나의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 생의 프리즈 인 퍼즐 (섹션14) 전시장에서 촬영 및 레이어 편집
ⓒ 황융하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을 두려워할 뿐이다."

뭉크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에서 온 커다란 상실감, 그 고통을 견디며 자랐다고 한다. 개인적인 질병이 더해지며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렇기에 뭉크의 작품은 무의식에 숨겨진 감정과 갈등을 표출하는 창구로 해석될 수 있다.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면, '예술은 억압된 감정의 해소 수단'이 될 수 있다. 뭉크는 그의 트라우마와 정서적 고통을, 특히 유화와 판화라는 시각적 매체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예술은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다."

전시는 단순히 뭉크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도록 한다. 그의 작품에 담긴 철학적, 심리적 배경을 탐구하는 데 중점이 맞춰졌다.

전시된 뭉크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온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힘이 감지된다. 관람객에게 단순한 시각적으로 만족하는 감각을 넘어, 내면의 성찰을 유도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의 전시는 총 14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작가의 초년과 프랑스 시절, 말년으로 나누어 기법의 변화를 주시한다. 또한 주제별로 묶어서 회화적 실험, 생의 프리즈, 공포와 죽음, 누드, 마돈나, 목판화 등의 공간으로 채웠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도록 자극하는 전시

 
▲ <절규> (섹션4) <The Scream> 종이에 석판, 손으로 채색, 43.2 x 32.5cm 1895 (전시장에서 재촬영)
ⓒ 황융하
 
마지막 섹션에서는 디지털과 실제 퍼즐로 제작하여 뭉크의 작품을 재현해 놓았다. 전시에서 만날 수 없었던 뭉크의 여러 대작들을 아쉽게나마 새로이 마주하는 공간이다.

뭉크의 절규 속 장면은 여러 가지 해석으로 이어진다. 귀를 바싹 틀어막고, 입은 한껏 벌어졌으나 발화되는 소리는 없다. 무언으로 삼켜야 하는 고통, 배경과 어우러져 눈을 뗄 수가 없다.

크의 상징적인 <절규>는 석판화 위에 채색을 입혀 그의 독자성이 부여된 작품이 들어왔다. 석판화 채색 버전은 전 세계에 단 2점만 존재한다. 그중 1점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에케베르크 언덕에서 바라본 전경, 핏빛으로 물든 석양, 불안이 가득한 세상을 심연 속에 그려보자.

뭉크의 <달빛 속 사이프러스> 작품 앞에서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이 애잔하게 겹친다. 불행과 고독을 심적인 동태로, 집착과 희망을 외연으로 확장하려는 두 작가의 완연한 차이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개인적 경험과 고통을 내면의 성찰을 통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영한 중요한 예술적 기록이다.

뭉크의 사이프러스 너머에 보이는 연인의 <키스>는 황홀하되 애처롭고,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에서는 까마귀가 불길할지도 모르는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두 대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이프러스에서, 우리는 내면적 치유를 위한 든든한 조언자를 만나게 된다.
 
▲ <병든 아이> (생의 프리즈) 하나의 작품에 대한 변주적 제작. 해석의 다양성
ⓒ 황융하
전 세계 23곳 소장처와 개인 컬렉터를 한 명 한 명 만나 공을 들인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노력에 일면 감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미술 작품이 투자를 위한 가치물로 변모된 현시대에서 우리는 점점 더 명화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박탈감도 느낀다. 이런 전시로 위안되어 순순히 만족하는 게 아닌지.

전시를 나오며, 죽음이라는 화두 앞에서 새삼 우리의, 나의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찌하다 보니 우리는 대형 참사와 황망한 죽음 앞에서도 책임 단위가 절멸한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이런 현상이 누구의 탓인지 별개의 문제로 따지더라도,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도록 자극하는 전시임이 분명하다.
   
전시 기간은 총 104일이다. 오는 9월 19일까지 뭉크의 작품과 그의 내면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장 모든 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소장 가치로 충분한 작품들을 모두 담아보시길.
 
▲ <작가의 아포리즘> 전시장 내에서 촬영. 작가의 격언으로 작품 세계를 추출하다.
ⓒ 황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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