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왜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론' 꺼냈나
[정욱식 기자]
▲ 1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로저 위커 의원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5월 30일 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상원 군사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은 한반도에서 억제력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옵션"을 모색해야 한다며, 미국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고 이를 한국과 공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짐 리시 의원도 "유럽과 달리 우리는 아시아 지역에서 핵무기를 전부 철수했다"며 북중러의 위협에 대처하고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핵무기를 재배치하기 위한 옵션들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국방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대행도 SBS 인터뷰에서 "상황이 정말 악화하면 미국 전술핵 재배치도 분명 선택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안보 참모 가운데 한 명인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 역시 5월 28일 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특칭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지금보다 더 강한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내용을 소개한 이유는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아이젠하워 모델'이 부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953년 1월부터 8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취임 당시 33만 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을 퇴임 시에는 5만 명대로 대폭 줄였다.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였다.
아이젠하워는 그 공백을 핵무기 배치로 메우려 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핵무기를 '몰래' 반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정부와의 협의나 통보도 없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반입한 이유는 '신무기 배치'를 금지한 정전협정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 공군이 5월 16일 미 공군의 F-22 2대와 한국 공군의 F-35A 스텔스 전투기 2대가 충청지역 상공에서 근접 공중전투 기동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 공군 F-22와 한국 공군 F-35A가 연합 훈련을 하는 모습. |
ⓒ 공군 |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 역시 대규모의 주한미군 주둔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래서 주한미군을 빼거나 한국이 큰돈을 내야 한다고 요구한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지, 재집권 시 '철수냐, 큰돈이냐' 가운데 어느 쪽을 선호하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아이젠하워 모델'이 거론될 가능성은 커 보인다. 앞서 소개한 공화당 중진 의원들과 트럼프의 희망 사항이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에 작성된 핵태세검토(NPR)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 주는 부분이 있다. 이 보고서는 전술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효과적이고 유연한 핵 억제력을 확보하려면 전략핵에 비해 사용 문턱이 낮은 전술핵이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동북아에 전술핵 배치 가능성도 시사했다. "비전략 핵무기(전술핵)의 배치는 미국이 확전에 대응할 수 있는 전진 배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잠재적인 적대국에 보내는 확실한 억제 신호"라며, "필요할 경우 미국은 동북아와 같은 지역에도 비전략 핵무기와 그 운반 수단을 배치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당시엔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에 배치할 전술핵이 없었던 반면에 최근엔 그렇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양산 및 실전 배치에 들어간 B61-12 열핵 중력탄이 대표적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3월에 이 핵폭탄을 F-35A에 탑재해 운용하는 것을 인증했다. 이로써 미국은 F-15E, F-16A/B/C/D 등에 이어 전술핵을 탑재·운용할 수 있는 '이중용도 전투기'의 선택지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향후,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 시 전술핵 재배치론이 강하게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한국의 보수 진영이 전술핵 재배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월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뒤 트럼프 타워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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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핵은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인식이 워낙 강하다는 점에서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한국에 미국 핵무기가 없어도 한반도에선 이미 미국 핵과 북핵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문 뒤의 총'을 문 앞에 갖다 두는 것이 어떤 군사적 효용성과 국가적 실익이 있는지는 자문해 볼 필요는 있다.
가장 중요한 판단 지점은 핵전쟁 방지에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에 있다. 전술핵 배치의 유용성은 강력한 대북 억제력과 억제 실패 시 핵무기 사용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작용과 반작용이 악순환을 형성하면 국지 충돌 및 확전 가능성이 모두 상승하고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도 커진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첨예한 핵군비경쟁을 벌이면서도 핵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병행했던 것도 이러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대양을 사이에 두고 광활한 영토를 갖고 있던 미·소도 이러했을진대, 휴전선을 맞대고 있고 종심도 짧은 한반도에서 전쟁 방지와 이를 위한 위기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미국 내에선 북핵 대처와 관련해 여러 가지 논의들이 나오고 있다. 앞서 소개한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나오지만, '군비통제'나 '중간 단계' 논의도 초당적으로 나오고 있다. 비핵화는 단기적으로 불가능하니 북핵 동결 및 단계적 감축부터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 내에선 이러한 논의조차 금기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나 독자적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외교적 대안을 기피할수록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와 위험은 더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군비통제 모델을 중심에 놓고 한국식 대안을 공론화할 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소견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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