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정의당 뭐하냐'는 의문 남겨... 그래서 폭망"

박소희 2024. 6. 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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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의당 신임대표 "노동과 기후에서 방향성 찾을 것, 거리의 대표 되겠다"

[박소희, 남소연 기자]

 2024년 5월 31일 권영국 정의당 신임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남소연
 
자꾸 '피고인'이 되던 변호사였다. 반대편에선 '시위꾼'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에 끌려가 옷이 찢기고, 법정 피고인석에 앉는 그를 사람들은 '거리의 변호사'라고 불렀다. 22대 총선을 닷새 앞둔 4월 5일, 장하나 전 민주당 의원은 "단 한 사람을 위해 탈당한다"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권영국. 오랜 세월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고, 22대 총선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4번으로 입후보했던 그는 이제 '정의당 대표'라는 새 직함을 얻었다.

권 대표는 지난 5월 28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어제 가위 눌리는 꿈을 꿨다"면서도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마주 서겠다"고 했다. 그는 사흘 뒤 여의도 당사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을 때도 "가위는 이제 안 눌리려고 한다"며 웃었다. 그러나 "걱정만 한 보따리 안고 당대표에 취임한 듯한 느낌은 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그의 어깨 위엔 무거운 짐이 얹혔다. 22대 총선은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후 20년 만에 국회에 자력 진입한 진보정당이 없는 선거였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창당 12년 만에 처음으로 '0석'을 기록했다. 당에는 30억 원대 빚도 남았다. 이 때문에 정의당은 조만간 여의도 당사를 정리하고 구로 쪽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임대료 절감을 위해서다. 원외정당은 국고보조금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한때 40명에 달했던 당직자들도 '권고사직'을 받아 8명 정도로 줄였다.

당사 한쪽에는 '다시 시작'이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권 대표는 그 출발점을 '현장'이라고 말한다. 그는 "(취임식에서) '이제 우리의 활동 방식은 행사가 아니라 투쟁'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며 "실제로 원내정당들은 대체로 행사를 하는데, (원외정당이 된)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활동방식을 진짜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현장에서, "거리의 대표"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정권 탄생에 대한 책임 논란, 제대로 해소 못했다" 
 
▲ 해단하는 녹색정의당 중앙선대위 2024년 4월 11일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선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 오늘(31일)로 원외정당 2일 차다. 실감하고 있나.

"저는 원내활동을 안 했기 때문에 실감 안 된다. 그런데 원내에 익숙했던 분들은 매일 출근하고, 회의 준비하고, 뭔가 계속 정무적으로 움직이던 것에 대한 구속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스스로 모든 일을 만들어가야 된다. 언론의 원내정당 동정보도에서도 정의당은 사라졌다. 아직 관성이 남았는지 어제는 나왔더라(웃음)."

- 당대표 선거 결과 93.2%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투표율은 29.3%에 그쳤다. 당의 침체된 분위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경선할 땐 후보별 조직들이 굉장히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지만 이번엔 단독후보였다. 또 총선 결과가... 심하게 얘기하면 폭망했다. 일부는 당과 진보정치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다수 당원들은 당에 대해서 뭔가 적극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 상태였을 거다. 그리고 매우 침체된 분위기에서 선거운동 기간이 거의 없다 보니 선거가 있는지 모르는 당원도 꽤 있더라. 당이 정비되면 지역 순회부터 하면서 당원들과 소통하고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 '0석'이라는 총선 결과는 누적된 평가라는 의견이 다수다. 스스로 출마선언문에서도 "정의당은 시민들의 정서와 세상의 변화에 둔감했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실천은 대중의 눈높이에 미달했다"고 진단했는데, '결정적 실패'의 원인을 꼽자면. 

"차례대로 꼽자면 첫째, 윤석열 정권 탄생에 대한 책임 논란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 했다."
  
 2024년 4월 11일 심상정 녹색정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22대 총선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21대 국회의원 남은 임기를 마지막으로 25년간 숙명으로 여기며 받들어 온 진보 정치의 소임을 내려놓겠다”고 입장을 발표한 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 유성호
 
- '심상정 후보의 완주가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이야기하는 건가. 
  
"그렇다. 우리가 대처도 안 됐고, 해소도 못 했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권의 무책임하고 무도한 통치에 정의당이 정말 선명하게 투쟁했나. 정권과 맞짱 뜨는 모습도 대중들에게 미흡하게 보였던 측면이 있다. 또 상당히 왜곡되고 과잉된 페미니즘 논쟁이 발생하면서 일부 의원들이 과다 대표됐고, 당이 정체성 혼란에 빠진 사이에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 쪽에서 지지를 철회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개별 행동하던 분들은 많이 나가버리고. 당의 신뢰도가 확 떨어져 버렸다.

저 같은 경우 현장에서 정의당을 볼 때, 원내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현장에서 책임 있게 같이 싸우기보다는 '스피커' 역할에 주력했던 느낌이랄까. 당원들도 굉장히 실망했더라. 삶의 현장은 너무 고통스러운데, 노동 현장도 정권의 탄압 때문에 굉장히 힘든데 정의당 의원이나 지도부를 보면 그만큼 절실하게 보이지 않는 거다. 비례대표 경선할 때도 '당이 도대체 어디 가 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중들도 '정의당은 도대체 뭐 하고 있나'란 의문 부호가 있었고."

"진보정당이 사라져도 되나"
  
 2024년 5월 31일 권영국 정의당 신임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남소연
- 한두 가지 처방으로 풀 수 없을 텐데, '가시밭길'임을 알면서도 왜 당대표로 나섰나.

"정의당이 21대 국회에서 정말로 아무것도 안 했나? 그렇지 않다.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주도했고, 강은미 의원이 단식까지 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다. 노란봉투법도 이은주 의원 역할이 컸다. 국가가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취하를 촉구한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허영인 SPC 회장을 청문회에 세운 것도 정의당이다. (원내정당 대표로서) 마지막으로 국회 청소 노동자들과 오찬을 했는데 '정의당만큼 우리를 신경 써주고, 우리 손을 잡아준 정당이 없다. 꼭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더라.

이 진보정당이, 진보정치가 이렇게 쉽게 사라져도 되는가. 그 위기감이 있었다. 물론 제가 정당 활동이 일천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내가 어떻게 정당을 책임질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 그런데 당내 경선 때부터 저를 지지했던 많은 분들이 너무 미안해하면서, 그 마음 때문에 매우 주저하면서 당 대표로 출마해 달라더라. '내가 뭘 잘했다고 이 부탁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외면 못 했다."

- 당 대표 첫 일정으로 '정의로운 전환 발전노동자 행진'에 참여했다. 어떤 이유였나.

"진보정당은 정치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마침 발전노동자들로부터 (참여) 요청도 있었다. 또 석탄발전소 폐쇄는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이자 기후문제다. 당의 방향성 또한 노동과 기후에서 찾는 게 맞다고 봤다."

- '모든 일하는 사람의 당', '기후위기와 구조적 차별에 맞서는 당'으로 거듭나겠다던 기조와도 맞닿은 행보인데, 사실 진보정당이 늘 해온 얘기다. 원내에서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일을 원외에서 잘 할 수 있을까.

"난제다. 지금은 체력부터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노동단체나 일반시민단체, 대중운동조직이 지향하는 바와 정치결사체인 정당이 지향하는 바는 다르다. 정당은 언젠가는 원내에 진입해서 제도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여전히 갖고 있지 않나. 일단 노동자, 피해자, 소수자 등 '투명인간'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그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로부터 진보정치를 살려낼 계기가 주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꽤 있다."

"조국혁신당과의 차이? 노동권" 
 
 2024년 5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녹색정의당을 비롯한 야당 및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채상병 특검법 재의요구 규탄 야당-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 '제3당' 자리를 가져간 조국혁신당은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3년은 너무 길다'며 '검찰독재'를 조기 종식하고 '사회권 선진국'으로 가자고 말한다.

"제7공화국으로 가는 헌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누가 묻더라. '정의당이 내세우는 제7공화국 헌법과 조국혁신당 주장의 가장 두드러진 차별점이 뭐냐'고. 답은 노동권이다. 사회권을 복지와 동등시하는 순간 국민들은 시혜의 대상이 된다. 시민이든 노동자든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는 권리가 핵심이다.

결국 노동 3권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 지금은 노무 제공자의 파편화 현상이 너무 강해져서 전통적인 근로 개념에 포괄되지 않는 사례가 너무 많아졌고, 원·하청 관계에선 '진짜 사장' 주장 자체가 불법으로 여겨지고,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등은 너무 과도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조건이든, 복지든 주장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권리를 헌법에 제대로 담아야 한다.

또 대통령이 계속 못 하면 합법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권한도 필요하다. 늘 혁명으로 할 순 없지 않나. 게다가 국민의 목소리를 늘 마지막으로 심판하는 곳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9명이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국민소환권이나 국민들의 법안제출권이 7공화국 헌법에 들어가야 한다.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데, 실제로 실행할 수 있도록 세부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 총선 결과, '민주당이 허락한 진보'만 생존했다는 평가가 있다. 정의당이 원내에 있든, 원외에 있든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은 넘어야 할 산인데.

"배고프다고 불량식품을 먹을 수는 없다. 비례위성정당은 거기에 비유할 수 있다. 단시간으로 보면 그 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같지만, 궁극적으로 이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하고 대립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자본 친화적이다. 보수당이 그렇다. 그러면 전세사기 피해자처럼 기존질서로부터 소외되거나 피해받는 사람들이 또 나타날 수 있고, 민주당이 집권 시절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던 문제처럼 어느 순간 충돌하는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때 '민주당이 허락한 진보'는 아주 단호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독자적인 진보정치의 가치를 견지한다'는 정의당의 결정은 굉장히 다행스럽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관계'는 어떻게 할 거냐. 민주당이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잘 대변하면 아주 강하게 잘 연대해야 한다. 반면 가덕도 공항 같은 것이 과연 필요한가? 부산 엑스포 유치를 염두에 뒀는데 다 물거품이 됐는데도 지역주민들의 개발에 따른 이익을 염두에 두고 공항을 계속 만든다? 강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나 서민들의 입장과 완전히 충돌하는 것에서도 가차 없는 비판을 해야 한다. 우리가 '독자적'이라는 뜻은 민주당에 쌍심지 켜고 대립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보정당으로서 자기중심을 갖고, 누구의 시각에 서있을 것인가란 문제다."

"'우리 변호사'란 말처럼... '우리 정치인' 되겠다"
   
 2022년 8월 25일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권영국 변호사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SPC그룹 매장인 패션5앞에서 ‘#제빵기사_유산율_50% #모성보호_법도_안지키는 SPC 파리바게뜨는 모성권을 보장하라’가 적힌 피켓을 들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 채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 산업단지 노동자들은 '진보당은 출퇴근길에 자주 보이는데 정의당은 선거 때만 보인다'고 말할 정도로 지역 조직이 허약해졌다. 2년 뒤 지방선거까지 생각하면 재건이 시급하다.

"정말로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어떻게 지역위원회 활동을 복원해내고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미 당의 체력이 무너져서 동시다발적으로 활성화하겠다는 건 빈말이고, 우선 활동이 살아있는 곳 중심으로 지역활동을 먼저 결의해서 살려보려고 한다. 그런 모범이 자꾸 드러나야 다른 지역에서도 '좀 해볼  만하겠다' 자신감을 찾지 않을까.

두 번째, 노동당과 녹색당 등 다른 원외정당들에 '뭉쳐보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원외정당들일지라도 사회적 주요 의제에 목소리 낼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수단은 굉장히 약하지만 다시 연대하고 힘을 합치면 좀 더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

- '당 대표 권영국'의 성과로 반드시 꼭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제가 쌍용차 대한문 싸움을 할 때 경찰과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몇 번 끌려가고, 구속 영장 신청되고... 그때 백기완 선생이 늘 대한문에 오셨는데 몸싸움 후 엉망인 상태로 돌아가면, 거기서 백 선생이 기다리다가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 변호사님 오시네.' 그 말이 너무 정겨웠다.

이제 '우리 정치인 오네'란 말을 많이 듣고 싶다. 정당을 선택하거나 일종의 당파성 있는 활동을 하면, 아무 격의 없던 노동시민사회 쪽과 갑자기 벽이 생긴다. 하지만 제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물론 정의당을 살리고 싶다는 목적은 매우 뚜렷하다. 그렇다고 제 생각이나, 가치 등이 달라지는가. 오히려 달라지지 않기 위해서 민주당이 아니라 정의당에 들어왔다. 노동자, 민중과 좀 더 선명하게 같이 가기 위해서 정치의 길을 택한 거다. (현장에서 저를 만나는 분들이) 그냥 격의 없이 대해줬으면 좋겠다. '거리의 변호사'로 대한 것처럼 '거리의 대표'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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