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우병우 전 민정수석 ‘직권남용죄’ 위헌소원 기각·각하

최석진 2024. 6. 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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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123조 18년 만에 다시 합헌성 확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형법상 직권남용죄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반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헌재는 앞서 2006년에 형법 제123조(직권남용)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 18년 만에 다시 합헌 결정이 나왔다. 앞선 결정에서 헌재는 해당 조항이 명확성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번에는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도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우 전 수석 등 4명이 청구한 형법 제123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합헌) 결정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지 않으며,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형법 제123조(직권남용)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과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세평 등 사찰 정보를 수집·보고하도록 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2021년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추모씨와 공모해 국익정보국장으로서의 직권을 남용했다고 봤다.

우 전 수석은 대법원에 상고해 상고심이 진행되던 중 헌재에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 중 '직권을 남용하여' 부분과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 부분이 명확성원칙에 반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헌재에 직접 헌법소원을 냈다.

우 전 수석은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며 자신에게 적용된 당시 국가정보원법 제11조(직권 남용의 금지. 현행법 제13조) 1항 중 '직권을 남용하여' 부분과 '다른 기관·단체 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부분, 그리고 이를 위반 시 처벌하는 같은 법 제19조 1항에 대해서도 함께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우 전 수석은 당시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범위 내에서 직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이용해 그러한 직권행사의 외관과 형식을 빌려 직권의 행사에 가탁한(직권 행사를 가장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직권남용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과 같으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먼저 헌재는 국정원법 조항들에 대한 우 전 수석의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각하했다. 헌법 제68조 2항의 헌법소원심판(위헌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법원에서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기각되거나 각하됐어야 하는데, 애초 우 전 수석이 국정원법 조항들에 대해서는 그 같은 신청 자체를 안 했기 때문에 위헌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형법 제123조가 죄형법정주의 명확성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앞선 헌재가 결정한 선례를 원용했다.

먼저 헌재는 "헌법상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와 형벌이 법률로 정해져야 함을 의미하며, 이러한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게끔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입법자가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의미의 서술적인 개념에 의해 규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다소 광범위해 어떤 범위에서는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 헌법이 요구하는 처벌법규의 명확성원칙에 반드시 배치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2006년 헌재의 판단을 원용해 "'직권'이란 직무상 권한을, '남용'이란 함부로 쓰거나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언상 이해되는데, 직권의 내용과 범위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경우에도 그것이 곧바로 '직권'의 의미 자체의 불명확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또 헌재는 "법원은 직권남용의 의미에 대해 문언적 의미를 기초로 한 해석기준을 확립하고 있으며 여러 법률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와 같은 의미로 '직권 남용' 또는 '권한 남용'과 같은 구성요건을 사용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는 유형과 태양을 미리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으로도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법률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내면적, 심리적 차원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법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의미하는 '의무없는 일'이란 '법규범이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일'을 의미하는 것임은 문언 그 자체로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헌재는 "위와 같은 선례의 결정이유는 심판대상의 내용이 동일한 이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이와 달리 볼 만한 사정변경이나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헌재는 형법 제123조 중 '사람' 부분도 명확성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봤다. 청구인 중 한명인 배모씨는 "이 사건 형법조항 중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부분에 대한 보호법익은 '개인의 자유 및 권리'이므로, '사람'의 범위에 '공무원'을 포함하고, '의무'의 범위에 '직무상 의무'를 포함하는 것은 확장해석 내지 유추해석 금지원칙에 위반되고, 나아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이다.

헌재는 "이 사건 형법조항이 특별히 '사람'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 않고, 상대방이 공무원인 경우라도 그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의사결정이나 직무집행에 있어 직권남용행위로부터 보호받을 필요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사람'의 범위에서 공무원이 배제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법원 역시 직권남용행위의 상대방인 '사람'의 범위에 일반 사인뿐 아니라 공무원 등도 포함됨을 전제로 판단한 바 있다"라며 "이와 같이 이 사건 형법조항의 문언, 보호법익, 법원의 해석 방법 등을 고려할 때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의 범위에 일반 사인으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뿐만 아니라, 공무원으로 하여금 정해진 직무집행의 원칙, 기준과 절차를 위반해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도 해당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형법상 직권남용죄 조항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도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무수행을 위해 부여된 권한을 부당하게 사용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에 그 입법목적이 있다"며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그 비난이 공무원 개인에 대해서만 그치지 않고, 국가작용 전반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을 초래해 국가기능의 적정한 행사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처벌의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헌재는 "직권남용행위의 폐해를 고려할 때, 이 사건 형법조항의 입법목적인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 보호 및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가능한 수단들을 검토해 그 효과를 예측한 결과, 행정상 제재보다 단호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헌재 관계자는 "2006년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 이 사건 형법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지 않음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직권남용행위의 상대방인 '사람'에 관한 해석도 명확하다고 판단했고, 공무원의 직권남용행위를 행정상 제재가 아닌 형사처벌로 규율하는 것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처음으로 판단한 사건"이라고 이번 헌재 결정의 의의를 설명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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