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재명이 쏘아올린 공…'지구당 논란'의 이면

나주석 2024. 6. 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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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당 설치 두고 정치권 제각각 목소리
후원금 대상 어디까지 넓혀야 하나 논란
원내정당의 길과 대중정당의 길, 갈림길에

22대 국회에 들어와 ‘지구당 부활’ 문제가 정치권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여겨졌던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현역의원을 제외한 다른 정치인들에게 기회가 배제된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은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당 부활과 관련해 한쪽에서는 지구당 부활을 정치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정치 개혁 후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더욱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정치권에서 '지구당 부활'을 적극적으로 말한 대표적 인물은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금은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 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 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지구당 부활론을 꺼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등 개정안을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제출하며 지구당 부활을 위한 입법에 시동을 걸었다. 이보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구당 부활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2002년 불법 대선자금 논란 이후 2004년 입법을 통해 지구당을 없앤 장본인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구당을 만들면 당 대표가 당을 장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여권의 반대도 크다. 조국혁신당이나 개혁신당도 지구당 부활과 관련해 부정적이다.

현재 지구당 논의의 핵심은 현역과 원외 당협위원장 간 공정성 문제다. 이런 이유로 지구당 부활 관련 법안의 핵심은 원외 당협위원장에게 지역 사무실 운영을 허락하고, 후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행법상 현역 의원은 지역사무소를 둘 수 있지만, 원외 위원장은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은 정치 신인이 현역 의원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이들은 지구당이 과거처럼 정치 부패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홍준표 시장은 "정치 부패의 제도적 틀을 다시 마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성 문제'를 다루려면, 당협위원장을 넘어 비현역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런 논점 이외에 더욱 근본적인 쟁점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왜 공정한 경쟁을 당협위원장까지만 보장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전날 SNS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지구당 부활’을 두고 벌어지는 찬반 논쟁은 정말 필요한 정치개혁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정치의 불공정은 ‘현직 대 비 현직’ 사이의 문제다. 단순히 현역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혹은 지역위원장) 간 문제가 아니다"고 언급했다.

제21대 국회 임기 마지막날인 29일 국회 본청에 제22대 국회 개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현재 논의되는 지구당 부활 논의는 결국 현역 의원과 비슷하게 원외 지역위원장 정도에만 혜택을 줄 뿐 이외의 다른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 등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사실상 현역의원 300명에 추가로 주요 정당의 원외 위원장들 수백명에게 '정치인 면허'를 발급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승민 전 의원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려면 모든 진입 장벽을 없애야 한다"며 "원외 당협(지역)위원장을 위해 지구당을 부활하고 이들이 정치후원금을 받아 그 돈으로 사무실과 직원을 두고 정치 활동을 하도록 하면 당협위원장이 아닌 정치인들은 무슨 수로 정치 활동을 하는가? 그건 또 다른 진입 장벽"이라고 꼬집었다. 유 전 의원은 대안으로 현직이든 아니든 후원금을 거둘 수 있는 방향을 제안했다. 아울러 "정치인의 후원금은 선관위 등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 등록해 한도와 지출 용도를 법으로 정하고, 해야 한다. 모든 지출은 투명하게 공개해 감시받도록 하고, 불법은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진입 장벽 제거 측면에서 의석수에 따라 거액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정당이 나아갈 길은?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 vs 의회 중심의 원내정당

이 문제의 이면에는 정당의 발전 방향을 둘러싼 시각차가 잠복해 있다. 미국처럼 원내정당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 아니면 당원들의 뜻에 따르는 대중정당의 길을 갈 것인지이다. 지구당 부활은 이른바 '오세훈 법' 이후 향해왔던 의회 중심 원내정당 대신 당원 중심 대중정당의 길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당원들의 참여를 주장하며, 지구당을 일종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2일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결의를 통해 "국회의원 중심의 퇴행적 원내정당을 거부한다"면서 "당론을 정하는 전 당원 투표를 제도화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당원의 의사를 모을 수 있는 당원 총회를 일상화하라"며 "모든 지역위원회가 활동할 수 있게 지역당을 부활시켜라"라고 주장했다. 정당이 나갈 방향은 원내정당이 아니라 당원 중심 대중정당이라고 주장한다.

지구당 부활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민주당의 경우 강성당원의 힘이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홍준표 시장은 "개딸정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강성당원이 포진했는데, 지구당이 부활하면 이들이 지구당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얘기다.

지구당 부활에 반대 입장을 밝힌 오세훈 시장은 원내정당 구조의 장점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당대표가 없고, 선거 기간이 아닐 때는 지역구 활동을 하지 않는 원내정당 구조"라며 "미국처럼 원내대표가 당을 이끌어가며 입법 이슈를 중심으로 정치가 흘러가는 게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협위원회가 있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미국이 민의 수렴을 못 할까? 오히려 그 반대라는 평가가 많을 것"이라며 "미국도 과거에는 지구당과 유사한 '정당 머신'이라는 조직이 존재했지만 숱한 부패와 폐해 때문에 지금은 사라졌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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