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줄기세포 주사 열풍·의료기기 혼탁상 사그라들까
앞으로 병의원·의료기기 업체는
해당 단어 내세워 광고·홍보 불가
일각선 “값싼 골수 기구 가능해져
신기술 하향평준화 우려” 지적도
보건복지부가 논란이 된 ‘무릎 관절염 골수 줄기세포 치료’의 신의료기술 고시를 개정해 최근 재고시했다. 고시 내용 중 ‘줄기세포’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이번 조치로 지난해 7월 해당 신의료기술의 애매한 고시 이후 의료계에 과열 양상을 빚은 ‘줄기세포 주사 열풍’과 의료기기 시장의 혼탁상(국민일보 1월 16일자 25면 참조)이 사그라질지 주목된다.
3일 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처음 고시된 신의료기술의 명칭은 ‘무릎 골관절염에 대한 골수 흡인 농축물 관절강 내 주사’다. 그런데 시술 방법에는 ‘환자의 장골능(엉치뼈)에서 채취한 자가 골수를 원심 분리하고 농축된 골수 줄기세포를 무릎 관절강 내 주사함’으로 돼 있었다. 관절에 주사하는 내용물로 ‘농축된 골수 줄기세포’와 보다 포괄적인 ‘골수 흡인 농축물’이 혼용돼 쓰인 것이다.
이에 의료계는 미래 재생의료의 꽃으로 주목받는 ‘줄기세포’를 내세워 환자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정형외과 병의원은 물론 요양병원, 안과, 이비인후과, 심지어 한방병원(의사 고용)까지 골수 줄기세포 주사 시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며 블로그와 SNS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 신의료술의 치료 대상은 연골손상정도 국제표준(ICRS) 3~4등급, 무릎 골관절염 진단기준(KL) 2~3등급에 해당하는 중기 무릎 골관절염 환자들로 연령 제한이 없다. 특히 수술하지 않고 간단한 주사(필요하면 하루 입원)로 무릎 통증과 관절 기능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돼 치료 수요가 급증했다.
게다가 비급여 시술비에 대한 실손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어 환자들이 선호했다. 실제 최근 금융당국 발표에 따르면 무릎 골수 줄기세포 주사의 실손 보험금 청구 건수는 지난해 7월 38건에서 올해 1월 1800건으로 월평균 95.7% 증가했다. 일각에선 ‘제2의 백내장 수술’ 우려가 제기됐다.
의료기기 업계에선 골수 줄기세포 분리·농축 장비(키트)를 둘러싸고 혼탁상이 빚어졌다. 이번 신의료술을 신청한 M사는 자신의 제품만이 유일하게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 기준에 맞게 기존 제품(미국 식품의약국 허가 제품)과 효과가 동일하다는 동등성 시험을 거쳐 ‘양질의 골수 줄기세포 추출 기구’로 정식 허가받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업체 제품들은 이런 과정 없이 단순 골수 처리용 기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업체들은 ‘신의료기술 호재’에 저가의 골수 처리용 기구를 줄기세포 치료용으로 과대 포장해 광고하다 단속 기관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 업체들의 제품을 납품받은 일부 의료기관도 이에 편승해 편법·꼼수로 환자 유치에 이용해 빈축을 샀다.
D한방병원의 경우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서 M사의 골수 줄기세포 추출 키트를 도입해 무릎 관절염을 치료한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더욱 싼값의 다른 업체 장비를 쓰고 있음이 실손보험사 실사를 통해 드러났다. 한 무릎 관절염 환자는 지난 2월 해당 한방병원 광고를 보고 무릎 한쪽 당 1000만원에 골수 줄기세포 주사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주사 후 몇 개월이 지나도 통증 호전이 없자 의구심이 생겼고 의료기기 업체에 문의한 결과 M사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 환자에게 사용하지 않으면서 홈페이지나 광고 문자 발송을 통해 식약처 허가를 받은 M사의 제품으로 치료한다고 속인 것이다.
M사 관계자는 “실손보험사로부터 환자 보험금 청구 서류에 첨부된 키트 사진이 우리 제품이 맞는지 확인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다른 회사의 저가 키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시술받은 환자는 골수 채취를 위해 마취 상태로 있으니 어떠한 의료 장비로 추출하는지, 어떤 키트를 사용하는지 알기 힘든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심 없는 일부 의료기관의 허위 광고로 인해 애꿎은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초 명확하지 못한 고시로 혼란의 불씨를 자초한 복지부가 뒤늦게나마 오류를 바로잡은 것은 적절하다. 복지부는 기존 고시의 시술 방법에 ‘농축된 골수 줄기세포’를 삭제하고 ‘농축된 골수 흡인물’로 대체했다.
하지만 의료기기 업계와 개원가에 ‘골수 줄기세포 주사’에 대한 과대·편법 판촉을 부추겼다는 비판은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번 고시 개정으로 값싼 골수 처리용 기구도 쓸 수 있게 돼 신의료기술이 ‘하향 평준화’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골수 추출 키트를 제작해 쓰는 곳도 늘 것으로 예상한다.
대한정형외과학회장을 지낸 정형외과 전문의는 “골수 흡인물에는 줄기세포나 성장인자가 들어 있는데, 유효한 세포의 수나 양에 대한 기준 없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로 주입하면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검증되지 않은 골수 추출 도구의 무분별한 남용이 더 심해져 환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신의료술 개정안에 ‘줄기세포’라는 용어가 사라진 만큼, 앞으로 병의원이나 의료기기 업체들은 해당 단어를 내세워 광고·홍보할 수 없다. 신의료술 재고시 내용이 일선 현장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당분간 난맥상이 계속될 여지가 크다.
현재도 SNS 등에는 ‘골수 줄기세포 주사 치료’를 표방한 병의원, 한방병원 광고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복지부 등 관계 당국의 더욱 철저한 감시와 단속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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