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치료효과는 좋은데… 부작용에 약 바꾸면 보험혜택 아웃
기존과 달리 완치 가깝게 조절 가능
아토피 치료 ‘게임 체인저’ 역할
효과 없거나 부작용 환자들엔 발목
신약간 교체 투여 땐 보험급여 불가
첫 치료제 실패 경우 환자 전액 부담
약값 부담에 치료 포기하는 경우도
전문가들 ‘보험 지원’ 목소리에도
정부, 근거 부족 이유 뒷짐만
제한 두지 않는 미·영·일 등과 대조적
고교 2학년 A군은 아토피피부염으로 오래 고생하다가 지난해 5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 신약 ‘생물학적 주사제’를 맞고 있다. 이후 몸의 피부 증상과 가려움증은 좋아졌지만, 얼굴 홍조(붉어짐)와 결막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 또 다른 신약(JAK 억제제)으로 바꾸길 원했다. 하지만 약을 바꾸면 더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A군 부모는 3일 “한 번 치료 방법을 정하면 바꿀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부작용이 있어도 치료를 유지하는 게 맞는 거냐”고 호소했다.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면 A군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환자들의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최근 아토피피부염 신약들이 대거 국내 도입되면서 치료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증상 개선 혹은 완화 수준에 머물렀던 기존 치료 방법과 달리, 이른바 ‘표적 신약들’은 완치에 가깝게 질환 조절이 가능해 아토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아토피피부염은 환자마다 다양한 증상과 경과를 보이는 까닭에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증상이 가벼운 경증이라면 연고, 크림 등 바르는 약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중등도(중간) 이상으로 심해진 환자에게는 전신 스테로이드제, 면역 억제제, 광선요법 등 전신 치료를 시행한다. 이런 치료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환자들이 여전히 많다.
수년 전부터 염증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만을 표적으로 해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아토피의 근본 치료가 가능해졌다. ‘생물학적 제제’와 ‘JAK 억제제’가 대표적이다. 생물학적 제제는 아토피의 증상과 징후를 일으키는 면역 물질(인터루킨-4, 13)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걸 차단한다. 주사제인 ‘듀필루맙(상품명 듀피젠트)’이 가장 먼저 국내 도입됐으며, 6세 이상부터 성인까지 처방할 수 있고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근 ‘트랄로키누맙(아트랄자)’이 새로 허가받으면서 아토피에 처방 가능한 생물학적 약물은 2가지가 됐다. 이 약은 12세 이상부터 처방받을 수 있고 역시 보험 급여가 된다.
JAK 억제제는 아토피피부염에 관여하는 염증성 면역물질의 신호 전달 경로(JAK)를 차단해 질환 발병 관련 면역 반응을 좀 더 포괄적으로 억제한다. 약효가 1~2일 내로 빠르게 나타나고 하루 1회 먹는(경구) 형태여서 주사제에 불편함을 느끼는 환자에게 유용하다. 국내에 ‘유파다시티닙(린버크)’ ‘아브로시티닙(시빈코)’ ‘바리시티닙(올루미언트)’ 등 3가지가 허가돼 있다. 유파다시티닙과 아브로시티닙은 12세 이상부터 처방할 수 있고 보험이 적용된다. 바리시티닙은 성인에서만 처방받을 수 있으며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신약들이 늘 그렇듯, 환자에겐 고가의 약값이 부담이다. 생물학적 주사제 역시 비급여인 경우 월 약값이 140만원, JAK 억제제는 월 약 60만원이 든다.
다행히 정부의 발 빠른 지원으로 몇 해 전부터 중증 아토피피부염에 대한 산정 특례와 각 신약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은 10%로 줄었다. 하지만 앞서 A군 사례처럼 부작용이 있거나 약효가 없어 신약 간 교체 투여를 고려하는 경우 보험 급여가 되지 않아 치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토피피부염의 경우 다른 질환보다 개별 환자 간 이질적인 특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환자가 다양한 약제 중 자신에게 맞는 치료제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 대외협력이사인 원종현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교수는 “생물학적 제제와 JAK 억제제는 작용 기전 상 환자에게 나타나는 효과와 부작용에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두 신약을 상호 교체해서 투여할 경우 보험 급여가 지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써보지 않고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첫 치료제 선택 시 의료진과 환자들은 고심할 수밖에 없다. 첫 치료제만 보험이 되는 현실은 환자 증상에 따라 가장 적합한 약제 보다 고가의 치료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 첫 치료 실패 시 약을 바꾸면 환자가 약값 전액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비싼 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약값 부담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도 있다.
원 교수는 “약제 간 기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환자는 생물학적 주사제가 더 맞을 수 있고 어떤 환자는 JAK 억제제가 더 적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약물 또는 JAK 억제제 간에도 약제별로 특성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신약을 하나 선택하고 나면 다른 신약으로 바꿀 수 없는 구조에서는 약 자체의 효과, 나에게 적합하냐 아니냐보다 약가 등 다른 요인이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들이 자신에게 최적의 치료제로 치료를 잘하는 것이 건보 재정의 절감, 건전화에도 도움 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아토피피부염 치료 전문가들이 신약 간 교체 투여의 보험 지원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관련 부처는 ‘신약 교체 투여 시 환자들의 치료 성과가 더 높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이에 학회는 지난해 말 발표한 ‘아토피피부염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중등증 이상 아토피 환자에서 생물학적 제제와 JAK 억제제 사용 시 3개월 동안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다른 생물학적 제제 혹은 JAK 억제제로 변경을 고려할 것”을 명시했다.
또 지난 3월 국내외 임상 연구 데이터와 실제 환자 대상 추적 연구 결과 등 신약 간 교체 투여의 학술적 근거 자료를 관련 부처에 제시했다. 이미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국가들은 별다른 제한 없이 아토피피부염 치료 시 신약 간 교체 투여에 보험 적용을 허용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 아토피피부염 외에 건선이나 류머티즘성관절염, 강직성척추염 등 다른 면역질환들도 신약의 교체 투여가 거의 허용되는 추세다.
2022년 기준 국내 아토피피부염 진료 환자는 97만3683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증상이 심해 ‘표적 신약’ 대상이 되는 중등증 이상 아토피 환자는 25~40%가량으로 추정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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