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초상집, 속은 잔칫집?…"반성" 말하며 축하주 돌린 與 [현장에서]

김기정, 김한솔 2024. 6. 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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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기엔 초상집 같았는데, 한 걸음 다가서 보니 잔칫집 같았다.

지난 4ㆍ10 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국민의힘을 보며 최근 드는 생각이다. 지난달 30~31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1박 2일 일정의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 모습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만찬을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총선 참패 뒤 열린 연찬회의 분위기는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30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모습은 좀 달랐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여당 국회의원이 가슴에 다는 배지는 금배지가 아니라 제 눈에는 고난의 십자가로 보인다”라며 경각심을 일깨우는 와중에도 상당수 의원은 앉아서 졸고 있었다.

이들을 깨운 건 저녁 자리였다. 누군가의 소개처럼 ‘우주항공청 개청식 뒤 불가능에 가까운 일정에도 불구하고 연찬회에 와 주신’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자 좌중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에 고무된 듯 윤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고 “오늘 저녁은 아까 맥주도 놓지 않아야 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욕 좀 먹겠습니다.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여러분에게 맥주로 축하 주(酒) 한잔씩 다 드리겠습니다. 화이팅”을 외쳤다. 2022년 연찬회부터 시작된 국민의힘 ‘연찬회 금주령’은 이렇게 3년 만에 깨졌다.

웃고 떠드는 집권당 의원의 모습이 의아했던 건 무엇보다 이날이 채상병 특검법 부결 이틀 후이자, 무리한 얼차려로 사망한 군 훈련병의 영결식 당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저녁 방송 뉴스에선 ‘즐거운’ 연찬회 현장은 물론, 대통령실의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연루 의혹과 사망한 훈련병의 영결식 소식이 한데 버무려졌다. 북한이 날려 보낸 대남 오물풍선 소식도 함께였다.

누군가는 “요즘 저녁 먹으면서 맥주 한잔 안 하는 곳은 없다”(김민전 수석대변인)며 항변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너무 잔치하는 분위기처럼 나와서 좋아 보이진 않았을 것 같다”(김재섭 의원)고 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만찬 뒤 환한 얼굴로 여당 의원의 큰 박수를 받으며 허공에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31일 오전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잔칫집 분위기는 연찬회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중ㆍ하순 무렵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22대 당선인을 권역별로 나눠 세 차례 저녁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일부 당선인은 윤 대통령을 “각하”라 부르며 “무조건 충성한다”라거나 “대통령의 호위무사가 되겠다”는 등 아부성 발언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차마 전달하지 못할,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줄 낯뜨거운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세 차례의 저녁 자리에서 술은 각각 맥주 한잔 또는 화이트와인 한잔 정도였다고 알려졌는데, 실상은 달랐다. 소주ㆍ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았고, 상당수 의원이 만취 상태로 귀가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은 지난달 31일 연찬회를 마무리하며 낸 결의문에서 “집권당으로서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지난 총선에서 매서운 회초리를 맞았다”며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언제나 민심을 가장 두려워하겠다는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비장한 각오와 그간의 잔칫집 분위기가 묘하게 오버랩됐다. 이들의 표리부동한 모습이 22대 국회에서도 계속 이어진다면 국민의힘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누구 말마따나 바닥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지하실도 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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