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까지 일할 수 있다"…30년 보험맨도 교육받는 이 캠퍼스 [르포]
지난달 13일 오전 경남 진주시 하대동 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교육2관 전기시퀀스실. 전기기능사 등 자격증 취득을 위한 전기설비 실습 교육이 한창이었다. 교육생 24명은 니퍼와 드라이버를 손에 들고 빨강·파란색 전선을 콘센트와 차단기, 전구 소켓에 연결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교육생 연령은 40대 이상으로 재취업을 희망하며 다시 한번 배움에 뛰어든 중년이었다.
이들 교육생은 2.7대1의 경쟁률을 뚫고 이 대학 ‘신중년특화과정’에 참여했다. ‘취업 의지’ 등을 묻는 면접 과정도 거쳤다. 교육 정원은 원래 20명이었지만, 신청자가 많아 24명(120%)으로 늘렸다. 교육생 황희용(56)씨는 “30년 동안 보험회사에서 지점장까지 하다 퇴직했다”며 “월급은 적어도 상관없다. 아직 젊어서 70세까지는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청년층이 줄어든 고용 시장에서 이른바 ‘중고 신참’이 주목받는 가운데 한국폴리텍대학 맞춤형 직업훈련에 중년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전국 40개 캠퍼스와 교육원에서 신중년특화·여성재취업 과정 등을 통해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중이다.
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진주캠퍼스에서 시작한 ‘신중년특화’, ‘여성재취업’ 과정에 24명씩 총 48명이 참여, 교육을 받고 있다. 하반기에도 같은 규모의 교육생을 받을 예정이어서 올해 수료자만 96명으로 예상된다. 2014년 최초 ‘베이비부머훈련’으로 시작, 그해 수료자 21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4.5배 증가한 셈이다. 지원자는 주로 기존 사업을 확장하려는 영세사업자, 정년 퇴직자, 이직자, 결혼·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등이다.
‘디자인&전산회계’ 교육생 김은진(32·여)씨는 “사회관계서비스(SNS) 계정을 운영, 스티커 등을 주문받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포토샵·일러스트 등 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몰라 외부업체에 맡겼다”라며 “점점 찾는 사람도 많아지니, 이번 교육을 통해 굿즈(goods)를 만들어 판매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대학은 “지원자가 선호하는 분야의 교육 과정을 개설했다”라며 "지역 기업체 수요가 많아 재취업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40대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한 신중년특화 과정은 내선공사(전기)·항공기부품가공·특수용접 등 위주다. 여성재취업 과정 주요 교과는 디자인&전산회계, 가죽공예&인터넷창업 등이다.
진주·사천 지역은 항공·기계가공 업체가 많고, 전기·주택관리 업체는 전기 관련 자격증 취득이 필수다. 지난해 신중년특화 과정 교육생의 전기 관련 자격증 취득률은 85%, 취업률은 67.4%로 나타났다. 여성에게 인기인 가죽공예 등도 같은 기간 교육생 가운데 61.4%가 취·창업에 성공했다.
김덕권(54)씨도 2022년 신중년특화 과정을 거쳐 전기기능사 자격을 취득, 경남 고성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취업했다. 그는 진주에서 15년 넘게 행사 전단 제작 등 인쇄·출판업체를 운영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매출이 반 토막 나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전기 자격증이 있으니 아파트 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쉽게 대처할 수 있는 것 같다”라며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여러 입주민을 대하는 곳이다 보니, 연륜 있는 중장년층을 선호한다”고 했다.
하정미 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학장은 “사회 경험이 풍부한 신중년이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신중년과 경력 단절 여성 등이 기술을 익혀 취업시장에 도전한다면 인력난 해소와 지역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진주=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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