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2년 더 살게요" 72→29% 급락…임대차법의 굴욕, 왜 [임대차 2법 시행 4년]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이 다음 달 시행 4년을 맞지만 이를 활용하는 세입자는 10가구 중 2~3가구 정도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임대차 2법의 4년 계약 만기가 도래하며 전세 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지가 부동산R114에 의뢰해 전월세 신고제가 시작된 2021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전국 아파트 전월세 거래(356만9139건)를 분석한 결과, 올해 들어 임대차 재계약에서 갱신요구권을 사용한 비율이 26%에 그쳤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도 갱신권 행사는 29%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진 임대차 2법은 기존 2년이던 임대차 기간을 ‘2+2’로 늘려 4년 거주를 보장한 계약갱신청구권(갱신요구권)과 재계약 때 임대료 상승 폭을 직전의 5%로 제한하도록 한 전월세 상한제가 핵심 내용이다. 세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인데도 4년이 지난 현재 갱신권 사용률은 매우 저조하다. 전월세 시장 상황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져서다.
"하락장에서 갱신권 유명무실…전셋값 변수 커져"
전셋값이 급등했던 2021년, 2022년에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에서 갱신권 사용은 각각 평균 68%, 59%였다. 전세만 놓고 보면 21년과 22년 상반기 갱신권 행사가 각 72%나 됐다. 전국 기준으로도 각각 67%, 60%였다.
하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전셋값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갱신권 사용이 급격히 줄었다. 역전세가 나타났던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갱신권 사용 비중은 33%로 21~22년에 비해 반 토막 났고, 올해는 더 줄었다. 대신 21~22년 30~40%대에 머물렀던 전월세 신규 계약이 작년부터 50~60%대로 크게 늘었다. 갱신권을 쓰지 않고 더 싼 매물을 찾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김지연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전월세 가격이 연간 10% 넘게 뛰었던 2020~22년에는 보증금 인상 폭을 5%로 묶는 갱신요구권이 위력을 발휘했지만, 전세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부터는 갱신권을 쓸 이유가 없어졌다”고 해석했다.
송인호 KDI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지난 4년을 돌아보면 갱신권은 상승장에서 일부 세입자들이 혜택을 봤다”면서도 “하지만 하락장에선 크게 유효하지 않고, 임차인들은 결국 시장 가격에 따라 주거를 선택하는 걸 알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오히려 임대차 2법은 4년 간 임대료를 통제해 집주인이 전세 가격을 한꺼번에 많이 올리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다”며 “이로 인해 법 시행 초기 전셋값이 폭등했고, 대다수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떨어트린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임대차 2법 시행 초기인 20년, 21년 전셋값은 전국적으로 19%, 14%씩 치솟았다. 지난 1년 간 서울 전셋값이 오르고 있지만 누적상승률은 5% 정도다. 지방은 아직도 역전세인 곳이 많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기관 관계자는 “법 효과는 모든 이에게 동일해야 하는데 임대차 2법은 시장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무엇보다 4년마다 전셋값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며 “과연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기여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요즘 시장에선 임대차 2법이 다시 전셋값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년 계약을 마친 집주인들이 다시 신규 전월세 계약을 맺을 때 또 4년치 임대료를 한번에 올려 전셋값이 들썩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강남·성동·송파 등 서울에서 인기 있는 지역은 벌써 몇 달 새 1억~3억씩 오른 전세 계약이 부쩍 늘고 있다. 성동구 e편한세상옥수파크힐스 84㎡는 2020년 5월 평균 전셋값이 8억5000만원였는데 최근엔 11억원에 계약된다. 4년 전 전세가 쌌던 아파트는 요즘 4억~5억원까지 전셋값이 뛴 단지도 나온다.
서울 인기 지역 전셋값 1억~3억씩 올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7월이면 2년 전 갱신권을 사용한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4781건의 만기가 돌아온다. 올해 말까지 넓히면 만기가 돌아오는 전월세 계약이 약 2만2000건이다.
마포구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지금은 4년 전 같은 저금리 상황이 아니고 부동산 경기도 좋지 않아 집주인이 무턱대고 전셋값을 올리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래도 4년 계약을 마친 집주인들이 최근 전셋값 상승 분위기에 편승해 호가를 조금씩 올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중개인도 “도심지나 학군지 아파트는 요즘 워낙 전세 물량이 없다”며 “몇 달 새 1억원씩 호가가 올랐는데도 전세가 금세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속된 고금리 탓에 매매 대신 전세 수요가 늘어난 데다, 전세 사기 여파로 빌라·다세대 수요까지 아파트 전세로 몰리면서 서울의 전세 매물은 1년 새 약 25%가량(3만6800여개→2만8600여개) 줄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내년 주택 공급이 계속 줄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전세 시장이 불안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속된 공사비 상승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기 등으로 작년부터 주택 인허가, 착공 등이 급감해서다. 내년부터 3년간 수도권 아파트 예상 입주 물량(약 23만5000가구)은 이전 3년(22∼24년·약 44만6500가구) 대비 반 토막 수준으로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내년, 내후년에는 입주 물량 부족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며 “입주 물량 부족은 전세 가격에 반영될 것이고, 해가 갈수록 전세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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