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7년 묵은 '재량근로제' 손질…"전문직 근로시간 유연화"
정부가 유연근로제의 일환인 ‘재량근로시간제도’(재량근로제)를 전면 손질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연구개발(R&D) 등 정확한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전문 직종에 유연한 근로시간을 부여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1997년 도입 이후 별도의 제도 개선 없이 유지되면서 활용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3일 정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최근 ‘재량성‧전문성 있는 업무에 대한 근로시간 규율 법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현재 운영 중인 재량근로제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하는 내용이다.
재량근로제는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해 ‘1일’ 또는 ‘1주’ 단위 근로시간을 미리 정하고, 실제 일한 시간과 무관하게 그만큼만 근로시간으로 간주하는 법적 제도다. 예를 들어 ‘실제 근로시간에 관계없이 1일 8시간 근로한 것으로 본다’고 합의서를 작성한 뒤, 출퇴근 시간을 지정하거나 근로시간을 측정하지 않고 재량 근로에 맡기는 것이다.
재량근로제는 연구개발직과 정보처리시스템 설계·분석, 광고·디자인,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기자·PD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특정 직종에만 적용될 수 있다. 정확한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전문 직종에 노사 합의를 거쳐 유연한 근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제도 취지기 때문이다. 시간외근로수당을 미리 기본급에 포함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와 성격상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포괄임금제는 법적 근거가 없는 관행화된 계약 방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적용 대상이 한정적이고 운영 방식에 대한 해석도 모호한 탓에 재량근로제는 선택근로제·탄력근로제 등 다른 유연근로제도와 비교해 활성화가 잘 되지 않고 있다. 고용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재량근로제를 도입한 비중은 2021년 1.8%, 2022년 1.9%, 2023년 2.2% 등 2% 전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의 마지막 재량근로제 손질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졌다. 당시 고용부는 주52시간제 도입에 따른 보완책으로 적용 대상에 금융투자분석(애널리스트)과 투자자산운용(펀드매니저) 등 2개 직종을 추가했다. 하지만 단순히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만으론 재량근로제를 활성화하긴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시대 변화에 따라 재량성·전문성이 상당한 업무에 대해서는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 활용이 요구되고 있다"며 “아직 특정 개편 방향을 정해놓고 있진 않다. 우선 실태조사를 통해 현장에서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부터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량근로제 확산이 자칫 법정근로시간을 넘어선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재량근로를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주52시간제 등 현행 법정근로시간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1주에 60시간 이상 근무를 해도 근로시간을 측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증빙하기 쉽지 않다. 결국 노사간 상호 신뢰가 없다면 본래 취지에서 변질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문 직종에서 재량근로제가 확대되면 일본·미국 등에서 적용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잼션’ 제도처럼 성과 중심 체계로 근로 환경이 바뀌고, 재택근무도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장시간 노동 방지를 위해선 현행 근로자 대표 제도를 실효성 있게 개편하는 등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연장근로시간(1주 12시간) 관리단위를 기존의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년’ 등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 반발에 직면하면서 관련 논의를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사실상 이관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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