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환율 불안 당분간 불가피… 취약계층 살릴 대책 필요
달러 외엔 모든 통화가 오를 듯
원화 약세 → 물가 상승… 서민 고통
버텨만 내면 ‘3저’ 호시절 기대
최근에 해외 물품 직구(직접 구매)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싸도 너무 싼 중국 온라인 쇼핑몰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쌀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아마도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설명되겠지만 환율 영향도 무시하기 힘들다. 싸게 팔더라도 고환율로 환전하면 자국 통화로는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환율은 앞으로도 올라갈 가능성(위안화 가치는 하락)이 있어서 중국 쇼핑몰의 공격적인 판매 전략은 계속될 공산이 커 보인다. 문제는 위안화만 오르는 게 아니라 다른 통화들도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오는 6일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 조치가 도화선이 될 듯하다. 이미 벌써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조치로 미국 달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통화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한국 원화도 예외가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안 그래도 불안한 물가가 흔들리고 내수가 어려워져서 이에 기대고 있는 취약계층에는 혹독한 시절이 될 것 같다. 이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국면이라 하겠다.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기후마저 이상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세상이 뒤숭숭해지면 사람들은 안전을 희구하게 된다. 최근 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불안 심리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환율에는 온갖 것이 다 영향을 미치기에 환율을 예상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경제 실적이 환율 변동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 달러화 환율이 강세를 유지하는 것도 미국 경제가 어느 나라보다도 좋은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덕분에 물가도 높은 수준이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 인사들은 하루가 멀다고 고금리의 현 통화정책 기조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유럽은 다르다. 당장 이번 주 있을 ECB의 통화정책회의에서 정책금리를 인하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 4월 유럽지역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에 근접한 2.4%를 기록하자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공개적으로 6월에는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다가 다수의 ECB 정책위원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 유럽의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이 됐다. ECB가 정책금리를 인하한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본격적인 정책 전환기(pivot)에 들어서게 된다. 이로 인한 영향을 정확하게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환율 변동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유럽은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어서 달러인덱스(세계 주요 통화들과 가중평균한 미 달러화 환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7.6%나 된다. 다른 조건은 그대로인데 금리가 하락하면 유로화의 대미 달러 환율은 약세로 돌아설 것이다. 시장의 관심은 어느 정도나 떨어질까 하는 점과 다른 나라 통화들도 약세로 돌아설 것인가로 모여진다.
환율은 단기적으로 국가 간 자금 이동이나 금리 차이에 영향을 받지만 결국에는 그 나라의 경제기초여건(fundamentals)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환율은 이렇게 저렇게 조정할 수 있는 정책 변수가 아니라 한 나라 경제활동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금리 인하에 따른 각국의 환율 변동 양상은 다를 것이다.
중국은 지난 20여년간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과도하게 투자한 결과 지금 재고가 쌓이고 경기가 부진하다. 여기에 유로화 약세가 가세한다면 위안화는 약세를 보일 개연성이 높다. 물론 중국은 세계에서 달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위안화 환율이 폭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오르는 쪽이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위안화가 그간 강력한 저지선이던 달러당 7.3위안을 돌파하는가가 관전 포인트가 될 듯하다.
일본의 경우 경기가 호전되고 수십년간 학수고대하던 물가 상승을 이루고 있지만 쉽사리 금리를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부채가 너무 많아 자칫 금리를 올렸다가는 이자 상환 부담이 높아져 재정이 파탄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국제투기자본이 일본 엔화를 공격했고, 그로 인해 최근 엔화 환율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역시 엄청난 외화보유액을 바탕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나름대로 안정화 조치를 취하곤 한다. 실제로 4월 말 엔화가 달러당 160엔을 돌파하자 지난 한 달간 약 9조8000억엔(86조원)을 달러 매입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엔화는 155엔 주변으로 내려왔지만 ECB가 금리를 인하한다면 엔화 역시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원화도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작년 이래 1300원대 환율이 계속되는 것이 못내 불편하지만 당분간은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까지 달러인덱스와 원화 환율이 대체로 비슷하게 움직였던 점을 감안할 때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인다는 말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가격이 올라가므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물가가 불안해진다. 그리고 경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임금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오르면 사람들이 소비를 늘릴 턱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서민의 삶은 팍팍해지고 영세기업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부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들이 살아야 나라가 살기 때문이다.
다행히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은 유리해진다. 지난 5월 수출이 11.7% 증가하면서 8개월 연속 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다만 다른 통화, 예를 들면 세계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일본이나 중국의 환율도 오를 것이므로 우리만 일방적으로 유리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기업이 가격에 의존하지 않고 비가격 요인, 즉 생산성을 높이고 국제경쟁력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환율 안정을 기할 수 있는 길이고 한국 경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혈로다. 영세업자나 서민들도 지금의 어려움을 견뎌내야 한다. 견뎌내기만 한다면 환율도 떨어지고, 금리도 떨어지고, 물가도 떨어지는 3저 호황기를 맞게 될 것이다.
안희욱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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