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 빚어낸 보석 이야기

권아름 2024. 6. 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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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에서 나타난 돌과 보석, 하이 주얼리 이야기
화이트골드, 블랙 래커, 브릴리언트 & 로즈 컷 다이아몬드를 결합해 리듬감이 느껴지는 브레이슬릿(2014).
화이트골드,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로 머리 장식 또는 펜던트 및 어깨 장식의 여러가지 방법으로 착용할 수 있는 네크리스(2021), 개인 소장품.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의 보석에서 놀랍도록 찬연한 빛을 발견한 적 있을 것이다. 땅속 깊은 곳에서 채광된 돌은 신비로운 보석에서 하이 주얼리라는 작품으로 탄생하며 수천 년을 공명하며 흘러간 시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보석이 결정화된 지구의 시간을 품는다면 주얼리에는 정교한 기술과 창조의 여정을 담은 인간의 시간이 담겨 있다. “보석과 돌이 지닌 힘과 매력을 최초로 인지한 것은 인류입니다. 동물은 아무리 화려한 돌이라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지난 5월 서울 DDP에서 시작된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을 기획하고 구성한 ‘신소재연구소’ 스기모토 히로시가 쓴 전시 서문이다. 아름다운 돌을 발견하고 이를 보석으로 재창조하는 인간. 주얼리에는 인간과 자연의 시간이 모두 녹아 있다. 지난 2019년 도쿄 전시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전에서는 까르띠에가 제작한 186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의 컬렉션,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모은 ‘까르띠에 컬렉션’을 통해 자연이 빚어낸 보석을 경이롭게 형상화한 인간의 시간을 보여준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우아한 자태를 표현한 ‘오키드 브로치’(1937). 까르띠에 메종을 상징하는 팬더 디자인에 에메랄드, 오닉스 등으로 완성한 브레이슬릿(2014). 플래티넘과 전체 약 17캐럿의 페어형 다이아몬드 7개가 섬세하게 표현된 티아라(1905).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로 구성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뱀 모양의 네크리스(2009), 개인 소장품. 옐로골드와 오벌형 스타 루비 14개가 컬러 대비를 이루는 네크리스(1935). 패션 디테일에서 모티프를 얻은 ‘레이스 리본 브로치’(1906). 원뿔형 카보숑 컷 루벨라이트 2개가 감싸고 있는 브레이슬릿(2016). 플래티넘과 화이트골드,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로 풍부한 색상 조합이 돋보이는 ‘힌두 네크리스’(1936, 1963년에 리폼). 화이트 골드와 오닉스, 다이아몬드로 디자인한 링(2009). 모자이크 무늬가 독특한 ‘로통드 드 까르띠에 워치’(2017). 사파이어 5개가 영롱하게 빛나는 네크리스(2020). 고대 이집트에서 영감을 받은 ‘피라미드 클립 브로치’(1935). 오팔, 퍼플 사파이어, 블루 사파이어 등 단순하지만 본질에 집중한 브레이슬릿(2015).
까르띠에의 대표 모티프 팬더(panthère). 1914년 시계 패턴으로 처음 등장해 여성의 자유를 표현하는 상징이자 시간을 초월하는 까르띠에 작품세계의 중심에 있다.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에서 장대한 시간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자연물과 전통 자연 소재를 적극 사용한 공간의 시노그래피와 까르띠에 작품과의 조화를 통해 엄연한 실체로 존재한다. 전시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자동차 대신 스기모토의 100년 된 거대한 시계 작품을 타임슬립 장치와 함께 물질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된다. 문명이 싹트기 전 어둠 속 돌과 나무만이 존재하는 곳에 보석이 반짝인다. 시간의 축으로 나뉜 이 세계에서 빛나는 주얼리, 워치, 오브제 및 아카이브 작품은 까르띠에 디자인의 연속성과 혁신성을 증명한다. 까르띠에가 오랫동안 쌓아온 정교한 기술과 장인 정신, 인류 문명과 문화에 대한 애정까지 확인할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을 거스르는 멀티버스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도심의 분주함을 완전히 잊을 것이다. 전시에선 까르띠에의 후원으로 한국 전통문화 연구소 ‘온지음’이 복원한 전통 직물 ‘라’를 드리운 공간, 스기모토 히로시를 비롯한 개인 컬렉터에게서 공수한 희귀한 고미술품이 함께 펼쳐져 색다른 미학을 탐색할 수 있다. 아래는 까르띠에의 예술을 시간으로 집약한 전시를 기획한 신소재연구소 건축가 사카키다 토모유키와 나눈 대화다.

주변 장식 속에 교묘히 숨은 무브먼트에 의해 움직이는 ‘모델 A 미스터리 클락’(1918).
마그마가 굳으면서 생긴 거친 표면이 특징인 오야석을 쌓아 올려 마치 채석장을 연상케하는 챕터2. 땅속 깊은 곳에서 보석을 찾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챕터3 전시 공간에는 식물과 동물,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문화에 대한 탐구의 결과가 16m 길이의 타원형 전시대에 놓여 있다.

Q : 까르띠에의 〈시간의 결정〉은 2019년 도쿄국립신미술관에서 선보인 후 서울 DDP에서 진행하는 두 번째 전시입니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공간에서 전시를 구성하는 건 어떤 경험일까요

A : 처음엔 DDP에서 전시를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적과 고요함을 배경으로 삼는 전시이기 때문에 개성 넘치는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과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완전한 양극을 대비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밝음과 어둠’ ‘빛과 그림자’라는 식으로 재해석한 거죠.

Q : 5년 전 도쿄에서 연 전시와 비교해 달라진 점은

A : 기본 공간 구성은 같지만 한국이라는 문화적 문맥을 융합한 것이 큰 차이점이자 특징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온지음에서 복원해 낸 한국의 전통 직물 ‘라’를 공간 표현에 사용했어요. 일본에도 같은 직물이 있습니다. 1300년 전 이미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있다는 즐거운 발견과 동시에 공간에 큰 구성 요소로서 연결성을 줄 수 있었죠. 또 한국의 미감을 담기 위해 한지를 곳곳에 응용했습니다. 전시 캡션과 각 섹션을 나누는 문에 창호지를 적용했어요.

Q : 건축물에 또 다른 건축물을 세운다는 개념으로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A : DDP는 연중 이벤트를 위한 곳으로 자주 활용되기 때문에 미술관처럼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건축물 안에 또 다른 건축물을 만들었어요. 안과 밖의 시점이 일맥상통할 수 있도록 원통형 공간으로 설계했습니다. 관람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어두운 동굴 속으로 보석을 찾아 들어가는 듯한 극적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Q : 공간디자인의 핵심적 영감이 있다면

A : ‘시간’입니다. 미술가인 스기모토 히로시와 제가 설립한 신소재연구소 역시 ‘시간’을 테마로 삼는 팀이라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미스터리 클락’과 ‘프리즘 클락’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컬렉션은 시곗바늘이 무브먼트에 연결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까르띠에의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을 나타내는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클락이 놓인 전시장에선 빛 기둥 12개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이는 시계 인덱스의 12를 의미합니다. 저희가 표현한 것은 까르띠에의 기술적 정수와 미적 요소가 담긴 시간의 결집입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관람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Q : 오랜 시간에 걸쳐 탄생한 보석과 자연, 세계의 유구한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까지 까르띠에 주얼리 컬렉션을 온전히 느끼는 전시를 위해 어떤 여정을 계획했나요

A : 3개의 챕터별로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 소재를 적용했는데요. 지구의 46억 년 시간 흐름을 느낄 수 있는 흙, 오랜 시간 버틴 나무, 돌 등을 사용했습니다. 첫 번째 챕터의 주제는 소재의 변신과 색채입니다. 편백나무 쇼케이스에 공예 기술의 정수를 담은 작품을 배치해 은은하게 풍기는 나무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형태와 디자인을 보여주는 두 번째 챕터에서는 돌에 주목했어요. 보석은 굉장히 순도가 높은 돌입니다.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루비와 반대되는 오야석(大谷石)을 활용했어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용암석은 굉장히 거칠고 소박합니다. 대비되는 돌을 사용해 서로의 특징이 부각되도록 했죠. 마지막으로 규조토로 하나의 지구를 표현한 타원형 오벌 케이스를 제작했습니다. 까르띠에 디자인 원동력인 ‘범세계적 호기심’을 주제로 동식물부터 다양한 나라에서 영감받은 독특한 작품까지 까르띠에 문화가 지구의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신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에요.

일본 나라 현에 있는 가스가타이샤 신사에서 매년 열리는 등꽃 축제의 아름다운 풍경 이미지. 그리고 그 앞에 고미술품과 컬러 사파이어와 오닉스 등으로 디자인한 브레이슬릿(2016)이 전시되어 있다.
어두운 동굴 속 ‘라’ 직물을 사용해 빛이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전시의 도입 프롤로그 . 그 아래는 미스터리 클락과 프리즘 클락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100년이 넘는 거대한 시계탑이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 스기모토 히로시가 1908년 밀라노 폰타나 체사레에서 미디어를 혼합해 제작한 작품 ‘타임 리버스드’(2018)는 앤티크 시계를 복원하여 시계 바늘을 역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재구성했다.

Q : 서울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도전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A : 한국과의 협업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두 나라의 공통점인 ‘라’ 전통 직물을 연결하는 것, 온지음과 다양한 문화를 함께 탐구하고 한국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도전은 전시공간을 더욱 매력적으로 완성할 수 있게 했어요.

Q : 전시장 입구에서는 스기모토 히로시의 설치미술 작업인 거대한 시계탑을 만날 수 있고, 각 챕터 마지막에는 한국과 일본의 고미술품이 전시됩니다

A : 이 전시는 순회전으로 기획했어요. 개최하는 나라의 지역 문화와 접목하는 것이 기본적 바탕이 되죠. 그 수단으로 고미술품을 전시했습니다. 스기모토 히로시의 관점에서 한국 문화와 까르띠에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조합하고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 고가구와 전통 미술품을 배치했어요. 이것 역시 큰 관전 포인트예요.

Q : 신소재연구소도 오래된 재료와 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압니다

A : 보통 건물을 세우고 재건축을 위해 부수는 것이 반복되는데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관점에서 소재에 주목했습니다. 모든 세상에서 합리화가 진행되다 보니 다양한 소재와 기법이 도태되고 사라지고 있어요. 그러나 이 시대에 적합한 것이 꽤 많습니다. 현대사회에 통용되는 것을 배제하는 건 불가능해서 사라진 소재와 기법을 현대에 접목해 이를 재조명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현대 기술이 가진 장점과 오래된 소재와 기술이 가진 강점을 융합하는 거죠. 그리고 이런 작업을 미래에 계승하고 싶어요.

Q : 지난 2008년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와 함께 신소재연구소를 설립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 스기모토 씨와 저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나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16년 동안 부딪치는 일 없이 원만하게 회사를 이끌 수 있었고, 규모도 늘릴 수 있었죠. 스기모토 씨가 파운더로 있는 ‘오다와라 문화재단’에서 ‘에노우라 측후소’를 짓기 위해 처음 만났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Q : 소재와 색채, 형태와 디자인, 문화와 장인 정신. 이번 전시는 까르띠에가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해 온 창조적 가치를 보여줍니다. 신소재연구소가 공감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A : 장인 정신입니다. 까르띠에와 신소재연구소 사이에는 기술에 대해 철저하게 추구하고 탐색하는 공통점이 있지요. 컬렉션을 전시한 나무 토르소를 보셨습니까? 일본 불상을 조각하는 불사에게 의뢰해 제작했습니다. 서양 기법으로 목 주변의 모양과 쇄골을 섬세하게 조각했어요. 저희만의 방법으로 까르띠에가 추구하는 장인 정신을 녹여냈습니다. 많은 관람자가 신소재연구소와 까르띠에의 크래프츠맨십이 중첩된 장점을 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온지음에서 소재 협력을 진행한 ‘라’ 직물 뒤로 일본의 가장 진귀한 삼나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가스사 스기’ 쇼케이스에 담긴 주얼리 작품이 마치 어둠 속 희미하게 피어오른 안개 사이로 왕실의 보화를 담은 봉인된 상자를 놓인 공간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서울 DDP 전시장 앞에 선 신소재연구소 소장 사카키다 토모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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