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의 더 큰 생각 [김선걸 칼럼]

김선걸 매경이코노미 기자(sungirl@mk.co.kr) 2024. 6. 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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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화점 얘기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시절 우울한 분위기의 경영보고가 있었다.

전문경영인인 대표이사가 “회사가 수십 년 만에 첫 적자를 봤다. 면목이 없다”고 보고하고 고개를 떨궜다.

회장이 듣더니 대뜸 물었다. “회사가 그 정도면 객장에서 일하는 숍매니저들은 어떻게 견딥니까.” 숍매니저란 협력업체 소속으로 백화점 매장에 나와서 직접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자영업자거나 협력업체의 피고용인들로 판매 실적에 수입이 좌우된다.

그 생각까진 미처 못했던 사장이 “확인해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곧 상당수 매니저들이 최저생계비도 못 번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이후 백화점은 몇 달 동안 수입이 적은 매니저들에게 월 100만원씩 지급했다. 누적 인원 2000명 이상에게 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의 이야기다. ‘착한 경영’이라는 식의 단순한 평가를 하자는 건 아니다. 백화점 비즈니스의 본질은 결국 상품 판매다. 그 판매망의 실핏줄이 숍매니저다. 어려운 시기에 영업의 말단까지 생각한 디테일, 그게 포인트였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이름은 한동안 업계에서 회자됐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대차대조표 경영(Balance Sheet Management)’을 주창한다. 단기간의 이익과 비용에 전략을 집중하는 ‘손익계산서 경영(Income Statement Management)’과 반대로, 부채비율과 유동성 등 재무 구조가 탄탄한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길게 보겠다’는 것인데, 주목하는 이유는 금융사 CEO들이 오너가 아닌 임기제 경영자들이기 때문이다.

임기제 경영자는 임기 동안 과실을 따 먹어야 약삭빠른 처신이다. 그러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금융사는 경영자 인센티브를 10년 뒤 실적에 연동해놓기도 했다. ‘회사가 10년 뒤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게 한 것이다.

‘대차대조표 경영’은 진 회장 개인에게는 손해다. 은행장이나 계열사 대표들이 단기 성과를 올려야 본인도 유리하다. 그러나 이렇게 회장이 깃발을 들면 수하의 경영자들은 단기에 집착하는 본능(?)을 자제하고 지속 가능성을 신경 쓸 것이다. 젊은 직원, 장기 투자자처럼 신한금융의 먼 길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포인트다.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40% 넘는 영업이익률을 올려서 논란이 됐다. 본사 이익이 막대하다는 뜻은 매장 점주들의 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들여다본다고 한다. 정부의 조치를 떠나 이런 기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과연 사업을 지속하려고는 했을까. 그랬다면 저렇게 한 방에 이익을 독식했을까 싶다.

최근 상법 개정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로만 돼 있는 현행 규정을 ‘주주’를 포함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증권가를 취재하던 2000년대 초부터 논란이 있던 규정이 20년 넘게 개정되지 않은 사실에 놀랐다. 그간 물적분할 등으로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미치고 이익을 독식한 대주주들 중에는 꽤 유명한 기업인도 있다. 잔푼에만 눈독 들이는 기업인이 늘어나는 트렌드인 것 같다.

상법 개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큰 생각을 하는 기업인 스토리도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젊은 창업자들이 본받고 따라 한다.

선한 비전을 갖고 사회를 성장시키는 기업인들이 귀한 시대다. 그런 얘기 어디 없나.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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