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석유 35억배럴, 베트남·말레이 수준…변수는 경제성·채산성
경북 포항시 영일만 앞바다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석유는 35억배럴 규모로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주요 석유 생산국의 매장량과 비슷한 수치다.
3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영일만 앞 바다의 석유 매장량이 35억배럴인 것으로 확인될 경우 한국을 포함한 23개의 주요 석유 생산국 가운데 한국은 20위를 차지한다. 19위인 베트남(44억배럴)과 21위인 말레이시아(27억배럴)와 비슷하다. 그 뒤로는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각각 25억배럴로 자리 잡고 있다.
영일만 앞바다에는 석유 35억배럴뿐만 아니라 천연가스 105억배럴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기체인 천연가스 매장량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기 어렵다. 조사 방법에 따라 매장량이 크게 달라져서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천연가스는 우리나라 전체가 29년간 쓸 수 있고, 석유는 4년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개발 추진 경과에 따라 매장량이 더 늘어날 여지도 있다.
정부의 기대대로 매장이 확인되면 석유·천연가스를 합해 약 30년간 생산이 가능할 전망이다. 생산된 석유 등은 상당 부분은 국내에 공급되고 해외에 수출도 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제적 가치를 두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정도(2000조원대)”라고 추정했다. 석유·천연가스 관련 산업이 발전할 뿐만 아니라 국내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면서 기업 전반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가계의 물가 부담도 내려가게 된다. 정부는 복지 등에 지출할 여력이 커진다. 전반적으로 국가 경쟁력이 대폭 올라가는 것이다.
실제 9년 전 초대형 유전·가스전을 발견한 중남미의 가이아나(인구 약 81만명)는 2022년 경제성장률이 62.3%에 달하는 등 국운(國運)을 바꾸고 있다. 가이아나가 보유하고 있는 매장량 110억배럴보다 30억배럴 더 많은 양이 영일만 앞바다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정부는 강조했다.
그러나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 이날 윤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은 정부가 지난 15년가량 동안 진행해온 지질조사와 물리탐사(탄성파·중력·자력 등)에 대해 미국 심해 기술평가 전문기업 액트지오(Act-Geo)가 지난해 2월부터 같은 해 말까지 분석한 결과일 뿐이다. 그 이후 5개월가량 동안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의 검증을 수차례 거쳤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직접 땅을 파 확인해봐야 실제로 유전과 가스전이 있는지, 있다면 정확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사람 몸에 엑스레이 찍듯이 물리탐사를 해보니 유전·가스전으로 추정되는 게 발견됐다는 의미”라며 “정확한 분석을 위해선 내시경을 넣어 조직 검사를 하듯이 탐사시추를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탐사시추 후에는 평가시추를 거쳐야 개발시추로 나아갈 수 있다. 정부는 오는 12월 탐사시추를 시작해 2035년부터 석유·천연가스 생산을 시작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개발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탐사시추에 한정해 보면 1공당 100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분석된다. 깊이가 1㎞ 이상이어서다. 한 번만 뚫어 정확한 분석에 성공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정부는 1공당 성공률을 20% 정도로 보고 있다. 약 5000억원을 들여 5번 정도 뚫어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상황에 따라 시추 횟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앞서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울산 남동쪽 58㎞ 해상에서 운영된 동해 1·2가스전의 경우 탐사시추를 11번 한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개발한 석유·천연가스는 4500만배럴로 이번에 발표된 140억배럴과 비교해 0.32%에 불과하다. 매출은 2조6000억원, 순이익은 1조4000억원이었다.
매장이 확인돼도 갈 길은 멀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아무리 많은 석유와 가스가 묻혀 있어도 채산성이 확보돼야 실제 상업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초 셰일 석유·가스를 발견했지만, 채산성을 확보한 2015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생산 추진 시점인 2035년에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어떨지도 변수다. 2015년 유가 폭락 사태의 영향으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지던 해외 유전·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실패한 전력이 있다.
투자금 조달도 어려운 숙제다. 무엇보다 개발 실무를 주도할 한국석유공사의 내부 살림살이가 부실하다. 석유공사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동안 순손실을 본 탓에 2020년 말부터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다만 김동섭 사장이 취임한 다음 해인 2022년 당기순이익 3130억원을 기록하며 12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산업부의 고위 관계자는 “해외 메이저 기업의 투자유치도 할 계획”이라며 “국내 기업만으로는 경험과 기술력도 부족해 해외 기업들의 투자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관심을 보이는 해외 기업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올 연말 시작되는 첫 번째 탐사시추 결과는 3개월여 뒤 나올 전망이다. 정부는 탐사시추 횟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3D(3차원) 물리탐사를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전까지는 2D 형식의 물리탐사만 해왔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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