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청년의 눈 보며 한국 외할아버지 떠올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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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1살 신예진은 ‘희망’이라는 꽃말의 데이지를 품고 2023년 2월 2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365일동안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삶을 이유를 찾는 여정’을 <너의 데이지>를 통해 풀어나갑니다. ‘데이지(신예진)’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100명의 사람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연재 기사입니다. <기자말>
[신예진 기자]
태국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지나니 라오스 비포장도로가 드러난다. 잘 닦이지 않는 흙길 위의 판잣집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에서 봤던 1960년대 한국의 비포장도로 모습이 떠오른다. 거리 변에 점포이자 가정집이 늘어선 모습도 흡사하다.
▲ 라오스 비엔티안의 모습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은 사진 너머로 보고, 어른들 이야기로 들었던 1960년대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 신예진 |
라오스는 한국의 과거 모습을 그저 닮기만 하지는 않았다. 라오스는 1970년대부터 실제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다.
1974년 첫 외교 관계를 수립한 한국-라오스는 2025년 재수교 30주년을 맞이한다. 1975년 라오스 공산화로 단교되었지만 1995년 수교 관계가 재개된 후 지속해서 교류를 이어왔다.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문했던 라오스는 여러 여행 채널에도 방영되면서 많은 한국인이 발걸음을 찾고 있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가 찾는 곳은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루앙프라방. 그곳에는 죽기 전 가야 하는 명소, 꽝시 폭포가 있다. 초여름의 라오스는 하늘을 찌르는 무더위로 가득하지만, 폭포를 보겠다는 여행자 마음을 꺾지 못했다.
▲ 꽝시폭포에서 사진을 찍는 로와 데이지 꽝시폭포를 배경으로 로와 데이지가 표정을 짓고 있다. |
ⓒ 신예진 |
에메랄드빛을 품은 꽝시 폭포는 마치 동화 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웅덩이 안의 물고기가 맨눈으로 확인된다. 계단식으로 펼쳐진 웅덩이를 걷다 보면 요정을 발견할 것만 같다. 로는 어릴 적 이 곳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고 놀았단다. 그에게 삶에 관해 물었다.
로는 루앙프라방에서 8명의 형제, 자매 사이에서 여섯째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3명의 자식 사이에서 태어난 로이 아버지는 무역하며 밥벌이를 했지만, 봉급은 8명의 자식을 키울 형편이 안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로가 6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살던 집 한 채와 자식이 전부였던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친척의 손을 빌렸다.로는 이후부터 삼촌과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린 폭포를 나와 메콩강이 보이는 로컬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라오스의 대표 음식 까오니어(찹쌀밥)를 둥글게 말면서 로는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의 눈빛에 잔결무늬를 내는 메콩강이 비친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많은 자식을 거두던 과거, 라오스는 대학교가 없었다. 로의 형은 초등학교만 졸업해 양계장 농부가 되었다.
한국 정부가 지원한 대학서 공부하는 라오스 청년들
"라오스에 있는 대학교는 사실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았어. 루앙프라방에 있는 수파누봉대학교(Souphanouvong University)는 한국 정부에서 설립을 도와준 걸로 알아."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라오스에 대학교 설립을 약속하며 시작된 계획은 포스코 등 국내기업과 강원대 등 국내 대학의 도움으로 2008년 루앙프라방에 쑤파누웡대학교 개교를 이루었다. 한국 정부가 라오스에 지원한 최초의 대학이란다.
▲ 라오스를 흐르는 메콩강 메콩강을 배경으로 해가 뉘엿 지고 있다. |
ⓒ 신예진 |
한국과 굵은 인연에 놀란 나를 보며 로는 말을 이어간다. 로가 지내온 시절은 우리 외할아버지에게 듣던 1972년 새마을운동 전 한국을 연상케 한다. 태어난 시대로 인한 가난을 몸소 겪은 외할아버지는 교육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로의 형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중요시한 형의 희생 덕분에 로는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커뮤니케이션을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 대학(University)이 없는 루앙프라방을 떠나 비엔티안에 가야 했다. 형은 로를 지원해 주겠다 응원했지만, 로는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관광학으로 루앙프라방에 있는 대학(College)에 진학했다.
▲ 데이지와 함께 있는 로의 모습 로가 데이지 꽃을 들고 웃음을 짓고 있다. |
ⓒ 신예진 |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한 뒤, 그는 항공사 표 판매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기술을 익히며 투어 상품 개발을 해나갔다. 현재는 여행사 투어와 자동차 보험 일을 하고 있다. 보험이란 개념이 보편적으로 인식되지 않은 라오스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긴 어려운 일이다. 관련 법과 조항도 부족하다.
"라오스는 여전히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국가이지만, 나는 라오스의 매력을 알리는 여행상품을 만들고 싶어."
그의 삶은 오늘날 한국을 만든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 당시 주린 배를 잡고 삶을 개척해 간 주역들의 삶.
책가방을 내려놓고 밭일하러 갔다 다시 양초 빛에 의지해 책을 펼쳤다는 나의 외할아버지도, 지금 눈앞의 로와 같이 생각했을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국가의 부흥을 위해 과거 한국 젊은이들이 걷던 거리가 라오스에도 펼쳐진다. 메콩강 너머 창문 없는 식당을 향해 선선한 바람이 분다. 로에게 묻는다.
삶의 이유, 당신의 데이지는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내 삶의 이유는 목표야. 내 여행 상품을 만들어 라오스 여행을 알리고 싶어. 그렇게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돈을 보내고 싶어."
로의 삶을 들으며 잔잔히 울리는 메콩강을 바라본다. 라오스 풍경이 불과 몇십 년 전의 한국 풍경이라 여겨지니 당연히 받아온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빠른 경제성장에 따른 부가적인 문제, 한강의 기적 세대 갈등 및 과거 한국의 발전을 두고 여러 평가가 존재하지만, 라오스가 그 자체로 보여준 단출함을 통해 나는 그동안 잊고 지내온 가치를 다시 배운다. 로의 미소에서 나는 과거 한국을 보았고, 윗세대의 피땀 흘린 노고에 겸손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원본 이야기는 기사 발행 후 아래 기자의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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