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퇴로 여는 정부, '사직서 수리 금지'→'수리 검토'…전공의 복귀 '자신감'
정부가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 해소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탈 전공의들은 정부가 전공의 집단 이탈을 막기 위해 각 병원에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때문에 사직서를 내고도 다른 병원에 재취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해당 명령을 철회하면 전공의들은 일반의로 다른 병원에 채용될 수 있어 퇴로가 생긴다. 정부는 이탈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도 면제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전향적인 태도 변화에는 전공의 복귀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탈 전공의 문제 해법을 위해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고 전공의들에게 퇴로를 열어줌으로써 전공의 복귀를 유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전병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은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직서 수리 검토와 관련해서는 병원장 간담회, 여러 경로를 통해 들리는 전공의들의 의견 등을 반영해 현재 정부 내에서 논의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요구사항 중 '증원 백지화'를 제외한 사항은 정책에 반영 중인데 '사직서 수리 금지' 철회도 전공의에 대한 각종 명령 철회 요구와 함께 검토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에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및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를 포함해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확대·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전공의 대상 부당 명령 전면 철회·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 7가지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이미 확정한 상태에서 의대 증원 백지화를 수용할 수는 없고, 대신 이외의 요구사항들은 대부분 수용하겠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기존 '사직서 수리 금지' 원칙을 깨고 '사직서 수리'로 태도를 바꾼 데에는 의료계의 '태도 변화' 요구에 적극 부응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각종 명령을 철회하지 않고 사직서도 수리하지 않고 있다. 정부 태도에 변화가 없으니 전공의와 학생들은 의료 현장에 돌아올 수 없다"고 토로했는데, 이번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철회 검토는 '전공의 복귀를 위해선 정부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제언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이와 함께 전공의 복귀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내년 입학정원이 확정된 상태에서 전공의들은 더 이상의 집단행동에 명분을 잃었고, 정부도 의대 증원의 목표가 '전공의 처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경한 태도보다는 유연한 태도로 이들의 퇴로를 여는 데에 주력할 때라는 것이다.
특히 의대 증원 국면에서 남은 과제는 전공의 복귀인데, 정부는 사법처리 등 원칙 대응 방식으로 전공의 병원 복귀를 촉구하는 것보다 기존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풀고 각 병원장이 사직서 수리 권한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전공의 복귀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 통제관은 "현장 간담회 등을 통해 병원장들이 사직서 처리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 전공의 복귀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의견과 요청이 있어 이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라며 "병원장들이 (사직서 수리) 권한을 가지면 상당수 전공의를 복귀시킬 수 있다고 해서 병원장들이 적극적으로 (전공의들을 복귀시키는 데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각 병원에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이 철회되면 병원장들이 전공의 상담을 통해 가능하면 복귀하도록 설득하고, 여러 사정으로 더이상 수련할 수 없다고 하면 사직 처리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유연한 태도는 자신감에서 나온다는 분석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전공의들은 의대증원에 반발해 이탈했지만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서 '의대증원 반대'라는 집단행동에 의미가 없어졌다"며 "전공의들이 요구한 수련환경 개선 등도 정부가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등을 발표해 이 외에 요구할 것도 없어졌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공의들이 돌아오는 수밖에 없는데, 복귀 시점에 따라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 메시지를 보면 자신감이 느껴진다"면서 "정부가 '당근과 채찍' 차원에서 얘기했던 행정처분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제는 유연하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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