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고전 최고의 모험 서사"

주간함양 김경민 2024. 6. 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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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기리는 연암 박지원의 길] 연암의 문학세계와 정신

[주간함양 김경민]

연암 박지원 선생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세계적인 수준의 문장가로 평가받는다. 1792년부터 1796년까지 안의현감을 지낸 바 있는 만큼 경남 함양에서는 매년 연암문화제를 열어 연암 박지원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대표적 학자이자 근대 이전 산문 역사에서 가장 큰 명성과 높은 위상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일반 대중에게 덜 알려진 것이 현실이다. 함양군의 연암물레방아공원과 연암문화제의 규모 또한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업적에 비하면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 연암 박지원 선생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있어 기반이 갖춰진 함양군이 조금 더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주간함양은 연암 박지원 선생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과 더불어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관광자원으로써 활용할 수 있을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문제적 인간 연암의 생애
2. 연암의 문학세계와 정신
3. 관광코스로 구현된 이야기들(1)
4. 관광코스로 구현된 이야기들(2)
5. 행사와 어우러진 문학관·박물관
6. 연암의 자취, 물레방아의 고장

지난 회차에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전반적인 생애에 대해 짚어 보았다. 독특한 생애를 바탕으로 학자로서 문장가로서 살아온 그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남기고 떠났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정신을 제대로 기릴 때 그의 문학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번 회차에서는 앞편에 잠시 언급된 명편 <열하일기>와 그에 등장하는 짧은 소설 <호질>, 그리고 안의현감 시절 지은 <열녀함양박씨전>을 중심으로 연암 박지원 선생의 정신을 살펴본다.

물론 해당 작품들로만 그의 정신을 다 설명할 수 없고 가치를 나열하기에도 기사 분량에 한계가 있지만 이제 막 연암 박지원 선생에 대한 관심을 갖는 독자들을 돕는 차원에서 간략하게 준비했다.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박수밀 한양대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과 더불어 그의 저서 <연암 산문의 멋>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열하일기에 담긴 다양한 정신
 
 열하일기
ⓒ 주간함양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 선생이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중국의 북경에 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견문기다. 현재 남아있는 <열하일기>의 필사본은 아홉 종으로 당시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지를 보여준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지내고 있을 당시인 1793년에는 정조가 문체 타락의 주범으로 이 <열하일기>를 지목했고 반성문을 쓰라고 명령할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다. 덧붙이면 정조의 이같은 명령에 연암 박지원 선생은 속죄문을 써서 정조에게 바쳤는데 이 글이 보기 드문 명문이라 정조가 웃고 말았다는 일화가 있다.

<열하일기>에 대해 학자들은 당대의 모든 장르와 분야를 담은 복합서라고 말한다. 지리, 풍속, 문학, 경제, 의학 등 조선시대에 역사와 문화와 사상이 다 담겨 있다.

박수밀 교수는 "열하일기를 공부하게 되면 고전시대가 나아간 최고 수준의 문학과 사상과 문화의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라며 "은밀한 어원과 풍부한 형상화로 인간과 공간을 새롭게 창조한 특별한 여행기이자 인간과 문명의 본질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삶과 제도를 성찰한 경제서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고전 최고의 모험 서사라고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열하일기의 가치"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열하일기는 북학과 이용후생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는 중화의 나라로 섬긴 명나라에 대한 의리의 '대명의리'와 북쪽 청나라를 무찌르자는 '북벌론'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연암 박지원 선생은 실제 사실에 근거해 중국을 바라보고자 한 것이다.

박 교수는 "북경이라는 도시가 당시 10대 도시 안에 들어갈 정도로 굉장히 부강한 문명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암이 청나라에 발달된 문물을 배워 가난한 조선의 백성들을 살찌우고 부국강병하겠다라는 생각을 품은 것을 북학이라 한다"라며 "이 북학의 대표적인 어떤 제도로써 수레와 벽돌 같은 것을 우리가 도입하자라고 주장을 하는데 바로 열하일기에 이런 내용들이 잘 드러나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북학과 함께 또 하나가 이용후생의 정신인데 도구를 이롭게 해서 삶을 도탑게 한다는 뜻이다. 이용이라고 하면 어떤 기술 도구를 잘 활용하는 면에서 경제활동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후생은 백성의 삶을 도탑게 한다는 면에서 복지 개념이라 볼 수 있다"라며 "서경에 보면 정덕 이용후생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 조선 사대부들은 제일 앞에 나오는 정덕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는데 연암은 다르게 생각을 한 것이다. 즉 굶어 죽어가는 백성의 삶에 기반을 먼저 해결해 준 다음 정덕을 이야기하자는 정신"이라고 추가로 설명했다.

박 교수는 북학과 이용후생 정신 외에도 중요한 정신 두 가지를 꼽았다. 바로 어떤 중심적인 것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들에 주목하는 '변방 정신'과 기존 지식에 갇히지 말고 열린 가슴으로 보라는 '명심의 정신'이다.

변방 정신에 대해 박 교수는 "보통 문명의 본질을 찾을 때 예컨대 프랑스 그러면 에펠탑, 뉴욕을 가면 자유의 여신상 등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암은 똥과 깨진 기왓조각이 진정한 문명의 본질이라고 말한다"며 "북경에 갔더니 깨진 기왓조각을 활용해 디자인을 만들고 마당의 진창을 막고 더러운 똥은 갖다가 버리는 게 아니라 말려 장작을 삼거나 거름으로 사용하는 등을 보면서 오히려 가장 작은 것에 위대한 본질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명심의 정신에 대해서는 눈과 귀가 만들어내는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세상을 공정하게 바라보는 것을 말하며 당시 북벌론과 같은 이데올로기에 갇히지 않고 사심과 편견 없이 배울 것은 배우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자는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의 시각으로 인간 문명을 바라보다

<호질>은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짧은 소설이다. 이 호랑이의 질책을 뜻하는 <호질>에 대해 박 교수는 "중세 시대가 나아간 최고 수준의 사상적 깊이를 가진 작품"이라고 말한다.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면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북곽(北郭) 선생은 대학자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지만 실은 타락하고 위선적인 양반이며, 다른 한 명인 동리자(東里子)는 열녀로 추앙받지만, 실은 문란한 성생활로 서로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둔 과부이다. 이 두 사람이 어느 날 동리자의 집에서 밀회를 즐기다가 동리자의 아들들에게 발각되어 북곽선생이 줄행랑을 쳤는데, 퇴비를 만들려고 모아둔 똥 무더기에 빠지고, 마침 지나가던 호랑이에게 혼쭐이 난다는 내용이다.

박 교수는 "소설 호질 안에는 문명과 자연의 대결과 같은 생태사상이 되게 중요하게 나온다.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 문명의 야만과 폭력을 굉장히 꾸짖는 내용"이라며 "그동안 고전들은 인간 중심으로 자연을 생각했지만 연암은 달랐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연암의 궁극 의도는 인간과 문명을 거부하려는 것이 아닌 '범이든 사람이든 만물의 하나'임을 말하는 것, 즉 서로 죽고 죽이는 게 아닌 자연과 사람의 공생을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한 열녀함양박씨전
 
 함양열녀밀양박씨정려비
ⓒ 주간함양
 
<호질>과 같이 시대를 한참 앞서간듯한 이야기는 1793년 안의현감 시절 쓴 <열녀함양박씨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해당 작품은 기본적으로 열녀전의 전통을 따른 산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대화체가 많고 본문 전반부가 허구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소설로 보기도 한다.

당시 연암 박지원 선생은 함양에 사는 박씨 부인의 순절을 다룬 <열녀함양박씨전>을 통해 열녀 풍속을 완곡하게 비판했다. 열녀는 남편이 죽은 후에 수절하거나 위난 시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여성을 말하는데 연암 박지원 선생은 일반적인 열녀전과 달리 열녀 제도를 비판하고 과부의 내면 심리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박 교수는 "당시 사대부의 아내는 평생 한 남편만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남편이 죽어도 재혼하지 않았다. 지금의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에서는 아예 재혼 금지를 문서로 규정했다. 나아가 재혼한 여자의 자식은 동반과 서반, 즉 양반의 관직에 임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아놓았다"라며 "이 법은 사대부의 여성에게 해당하는 규범이었지만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다 보니 평민은 물론 천민 계층까지 퍼져서 남편이 죽으면 여자가 홀로 살거나 남편을 따라 죽는 일이 나라의 풍속이 되기에 이르렀다"라고 전했다.

오늘날에 남편이 죽었다고 아내도 따라 죽어야 한다는 도덕률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선비 가운데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지 않았고 깨어있다는 지식인은 물론 실학자도 마찬가지였다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그런 와중에 두사람은 열녀 행위를 과감하게 비판했다"며 바로 연암 박지원 선생과 다산 정약용 선생을 짚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열녀함양박씨전>, 다산 정약용 선생은 <열부론>을 통해 비판했다.

박 교수는 "연암은 과부들을 연민과 안쓰러움으로 바라본다. 연암은 유가 이념이 아닌 휴머니즘의 관점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연암은 과부의 마음으로 들어가 과부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라며 "과부의 입, 과부의 생각에서 나온 발언은 과부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회 현실을 향해 있다. 연암의 시선은 궁극적으로 한 인간을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하고 억지로 죽게 만든 사회 현실을 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지금의 관점에서 연암의 여성관이 근사한 시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대적 조건을 생각하면 당대의 평균 남성들보다는 진일보한 생각이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있을 듯하다"며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여성을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 바라보려 한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 (주간함양)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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