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종씨앗 운동의 산파 '토종씨드림'

주간함양 최학수 2024. 6. 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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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농업에 토종종자 생태계 마련하기] 전통 식문화 복원의 핵심은 토종씨앗

[주간함양 최학수]

토종종자는 오랫동안 농민들의 손에 의해 최소 30년 이상 이 땅에 심겨진 종자를 말한다. 매년 심겨지며 조금씩 그 땅의 생태계에 맞춰서 적응해 온 토종종자는 우리 삶의 터전과 유기적으로 공명하는 존재이자 농민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최근 유전자변형 농수산물(GMO)과 종자주권 등의 이유로 이미 많이 주목받은 토종종자가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역 풍토에 맞는 다양성 확보를 통해 병해충 및 환경변화에서 생존율이 뛰어난 토종농작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함양군은 농업이 주요 생산기반인 지역으로 농업계획이 중요하다.

경상남도를 통해 함양군도 토종농산물 소득보전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저변확대에 한계가 있다. 농업 문화유산인 토종종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만든 토종종자 생태계를 알아보고 함양농업의 미래를 고민해본다.

토종씨앗 운동의 본산, 토종씨드림
 
 토종씨드림 변현단 대표
ⓒ 주간함양
 
전남 곡성군 석곡면 산 깊숙한 곳. 토종씨드림 사무실. 토종씨드림 변현단 대표는 토종작물 재배특성 조사를 위해 오늘도 옥수수를 심고 있다.

토종씨드림은 2008년 4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귀농운동본부, 연두농장, 흙살림, 한국토종연구회, 환경농업연구회, 농어촌사회연구소 등 단체 대표와 개인이 모여 결성됐다. 변현단 대표의 말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 내 전통농업연구회에서 시작된 종자에 대한 관심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주목을 받았어요. GMO 분야로 유명한 원광대학교 김은진 박사, 유전자원센터에서 재래 종자 보존 업무를 하던 안완식 박사 등 여러 단체와 개인이 모여 최초의 민간단체인 토종씨드림을 결성하게 됐죠. 그 해 첫 모임에 전국에서 51명이 모였어요. 그게 우리나라 토종씨앗 운동의 시작이었어요."

초기에는 당시 안완식 박사가 갖고 있던 600점을 전국귀농운동본부, 연두농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흙살림으로 나눠 각자 보존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동시에 새로운 종자 수집을 위해 지역을 탐방하는 일도 시작됐다. 2012년, 종자가 유지되려면 농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변현단 대표는 토종학교 1기를 만들었다. 토종학교에서는 농사를 가르치고 토종종자도 심었다. 연두농장에서는 토종종자를 상업재배를 해서 판매를 시도하기도 했다. 1농가 1품종 갖기를 목표로 종자 나눔에 힘썼다.

"현실적으로 1농가 1품종을 갖기가 되게 힘들어요. 토종씨앗이 상품으로 나가는 상황은 굉장히 미미해요. 농민들은 수익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토종씨앗을 이어가기 더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17년도부터 토종씨드림에서는 연구가 시작됐다. 매년 200종의 새로운 씨앗을 심고 정보를 정리해서 도감으로 펴내는 등 종자와 농법, 나아가 요리법에 대한 내용도 꾸준히 연구했다.

또한 무분별한 나눔으로 종자가 소실되는 일이 반복해서 발생하자 그 종자에 고유한 이력을 매기는 것에도 힘썼다. 종자 체계를 갖추면서 그 종자를 체계적으로 증식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증식 농가를 확보하면서 보급 시스템이 체계화 됐다.

"일단 여기서 연구를 하면 두 번째로는 증식 농가에게 보급이 돼요. 그러면 증식 농가는 그 품종을 엄청 부풀리는 거죠. 세 번째 단계가 보급이에요. 지금 앉은뱅이 밀이 다 보급됐잖아요. 앉은뱅이 밀은 보급 안 해요. 이미 농가간 서로 잘 나누고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저희는 이제 남도참밀을 보급해요. 한 4년 보급을 거쳐 남도참밀이 깔리면 그 다음을 보급한다는 거죠."

비슷한 내용으로 변현단 대표는 토종씨드림에서 토종고추를 보급한 사례를 설명했다.

"칠성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울릉초도 좋아하거든요. '칠성초가 짱이야' 이럴 때 울릉초를 딱 집어넣으면 사람들 선호도가 나뉘어요. 그 다음에는 영천초를 3년 보급하고 다음은 파주초를 보급하는 식이에요. 이런 보급 체계를 가질 때 토종씨앗 보급이 활성화돼요."

작물의 특성도 제대로 알기 전에 단순히 토종이라서 의존하게 되는 방식으로는 토종씨앗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변현단 대표는 사람들이 작물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선호를 가질 수 있도록 농가 보급 체계를 잡았다.

"아직까지도 씨앗에 대한 운동은 되게 조악한 수준이에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최고예요. 체계는 우리 토종씨드림이 제일 잘 잡혀있어요. 그래서 대만과 일본에서도 견학을 와요. 작년에 태국에도 가봤지만 토종씨드림이 제일 잘 잡혀있어요. 우리나라 국가기관 유전자원센터보다 더 체계적이죠."

현대 농업과 전통적 식문화
 
 토종씨드림 가는 길
ⓒ 주간함양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농업 환경은 피폐해졌고, 박정희 정부의 녹색혁명 시기에는 화학 비료와 개량종자가 도입되었다. 당시 농업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업용 종자와 화학 농업이 장려되었고, 이는 토종씨앗의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토종종자는 상업 종자에 비해 균일성과 수확량 모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상업용 농가들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토종씨앗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변현단 대표는 토종종자는 상업 종자로서 지위를 회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지금도 한살림 등에서 친환경 농업하는 사람들 중에서 토종을 다루는 사람을 극소수입니다. 두 가지 측면이 있죠. 토종종자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교육과 인식이 모자라서가 아니에요. 안정적인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는 토종씨앗의 장점으로 소개되는 '맛'은 농업 구조 시스템 속에서는 부가적인 요소에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종자에서 맛을 찾지 않는 것도 한몫하죠. 된장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 황태 다시마 등을 사용해서 된장을 만들지 맛이 뛰어난 콩을 쓸 생각은 안 하죠."

할머니들이 "맛있다"며 나눠주는 토종종자는 현대 요리법으로는 맛을 느끼기 힘들 거라고 변현단 대표는 말한다.

"과거 우리 식문화는 약식동원의 원칙으로 형성이 됐거든요. 돼지고기를 왜 새우젓과 먹는지, 회 밑에는 왜 무를 까는지 등 식문화를 약으로 먹어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원칙이나 음식의 궁합이 없어요. 우리는 가정 속에서 교육 받은 적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 식전통적인 식문화 복원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 핵심에 토종씨앗이 있는 거죠."

요즘 젊은 세대를 전통적인 식문화와 가장 멀어진 세대라고 평가한다. 식문화와 단절된 채 단순히 토종종자만을 보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국 농산물은 음식으로 그 가치를 다하기 때문이다.

개량종자 무는 그냥 먹어도 정말 시원하고 달다. 토종무는 개량 무에 비해 매운 맛이 강하다. 그냥 먹기 어렵고 누군가는 맛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토종무로 동치미를 담그면 2~3개월 뒤에 발효가 되며 매운 맛이 없어진다. 토종무로 담근 동치미의 맛은 먹어 본 사람만 그 맛을 이해한다.

"어떤 방식으로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요. 토종종자 연구를 하면서 요리법도 조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토종씨앗 운동의 본질
 
 가랏을 소개하는 변현단 대표
ⓒ 주간함양
 
변현단 대표가 말하는 토종씨앗 운동의 본질은 공유와 나눔의 철학이다. 씨앗은 자연에서 시작을 했고 인간의 노력으로 계속 이어져왔다. 토종씨앗은 세대를 거듭하며 우수한 형질의 종자를 심는 걸 수 없이 반복하며 만들어온 결과다. 계속 되물림되면서 자식들에게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독점적 배타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변현단 대표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종씨앗 운동이 단순히 나눔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씨앗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왔는지를 고민하는 마음 없이 단순히 씨앗을 물질적으로 나누기만 한다면 토종씨앗이 유지되기 어렵다.

"토종씨앗이 사라지게 된 배경에는 공동체성이라던가 나눔과 공존. 그러한 많은 정신들이 버려진 현대 사회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들의 토종씨앗 운동이라는 거는요. 그러한 나눔과, 공존 등의 정신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토종씨앗을 보존한다는 건 토종씨앗이라는 하나의 물질적인 매개를 통해서 앞으로 삶의 문화나 정신 이런 모든 것들이 함께 복원되어 합일되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어요."

WVS에서 실시한 2022년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 에 따르면 '자녀에게 가르칠 자질 5가지'를 선택하라는 조사에서 관용, 종교, 순종, 이타심 항목은 세계 평균보다 낮은 상태로 집계 되었는데 특히 이타심은 전체 4%였다. 비슷한 문화권인 중국(28.7%)과 일본(33%)에 비교해도 상당히 낮은 수치다. 현대 대한민국은 이처럼 물질주의에 따른 공동체정신이 결여되어있다. 많은 연구에서 지적하는 대한민국의 물질주의 심화 현상이 공동체에도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농촌과 도시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고 농촌의 대가 끊기고 일손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했을 때 국가의 대안은 기계화 농업이었다. 정신은 아예 배제하고 물질과 기술로 공백을 채웠다. 기후위기 상황 속에서 대안으로 스마트팜을 제안하는 요즘의 모습과 닮아있다.

토종씨드림은 대한민국 토종씨앗 운동의 대모다. 역사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는 여러 토종씨앗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해왔다. 그렇게 퍼진 토종운동의 씨앗은 지역에서는 지역에 맞게 도서관 등 다양한 형태로 싹을 틔웠다. 그렇게 토종씨앗 운동은 연결고리를 만들며 퍼지고 있다.

"제가 하는 말을 요약하자면 '씨앗 너는 나다'예요. 처음에는 51명이었어요. 지금 토종씨드림 회원을 보면 만 명이 넘을 거예요. 토종 심는 사람들은 더 많을 거고 토종씨앗 활동한다는 사람도 굉장히 많아요. 이런 활동가들이 많은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품고있는 공감, 배려, 공동체 그 모든 가치는 단순히 씨앗과 농사가 아니라 삶과 마음에 자리잡게 되는 거죠. 씨앗을 나눠주신 할머니들이 먹지 않고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씨앗을 이어가고 나눠주던 배려하던 그런 정신이 반복되는 거죠."  
 토종씨드림 풍경
ⓒ 주간함양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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