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좌절에도 빠른 재취업, 이번엔 승강 전쟁이다
[이준목 기자]
▲ 황선홍 대전하나시티즌 신임 감독 |
ⓒ 대전하나시티즌 제공 |
올림픽대표팀에서 큰 좌절을 맛본 황선홍 감독이 K리그로 복귀해, 명예회복을 노린다. 3일 프로축구 K리그1 대전 하나시티즌구단은 공식 채널을 통해 "신임 감독으로 황선홍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황선홍 감독에게는 무려 4년 만의 대전 복귀다. 대전은 황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을 맡기 전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았던 친정팀이기도 하다. 황 감독은 대전이 기업구단으로 처음 전환했던 2019년 초대 사령탑 자리에 올랐고, 당시 대전은 2부 소속이었다.
하지만 황 감독은 성적 부진에 구단 수뇌부와의 갈등까지 겹치며 한 시즌을 다 채우지 못하고 2020년 9월 중도 하차했다. 그해 대전은 1부 승격에도 끝내 실패하며 황 감독과 대전의 첫 만남은 양측 모두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대전은 2년 후인 2022년에야 1부 승격에 성공할 수 있었다. 황 감독은 2021년부터 23세 이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고, 지난 3월에는 사령탑이 공석이 된 A대표팀의 임시 감독을 잠깐 맡기도 했다.
본래 황 감독의 계약기간은 파리올림픽까지였지만, 23세 이하 대표팀이 지난 카타르 AFC U-23 아시안컵에서도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에 패하여 8강에서 탈락하며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되면서 황 감독의 계약기간 역시 자동으로 일찍 종료됐다. 한때 유력한 차기 A대표팀 감독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것도 없던 일이 됐다.
올림픽 본선 탈락이 황선홍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의외로 황 감독은 한 달여 만에 K리그에서 빠른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것도 이미 자신이 한번 맡았던 팀에 다시 복귀했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다.
황 감독의 K리그 복귀에 팬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한국 축구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진출 실패에도 곧바로 클럽팀의 지휘봉을 잡은 데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반면 대표팀과 클럽은 별개라는 반박도 나온다.
황선홍 감독 만큼 축구인생의 '명과 암'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도 찾기 힘들다. 선수시절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전설이었던 황 감독은 19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A매치 103경기 50골)로 군림하며 월드컵 본선무대에만 4번이나 출전했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에서는 중요한 찬스를 놓쳐서 비난을 받거나,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날리는 등 불운이 끊이지 않았다. 황 감독은 생애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축구의 기념비적인 본선 첫승인 폴란드전 선제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최고참으로 4강신화에 기여하며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도자로서의 행보도 마찬가지였다. 황선홍 감독은 부산 아이파크, 포항 스틸러스, FC서울과 대전까지 총 4개의 팀을 이끌며 2번의 K리그와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한때 지도자로서도 성공가도를 걸었다. 특히 전성기로 꼽히는 포항 감독 시절에는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도 2013년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며 '더블(2관왕)'을 달성하는 이변으로 '황선대원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황 감독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지도자로서의 커리어가 극심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FC서울에서 성적 부진과 선수단, 팬덤과의 불화로 인해 낙마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중국 프로축구 옌벤 푸더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구단의 해체로 시즌을 치러보기도 전에 하차해야했다. 여기에 생애 최초로 2부리그팀의 지휘봉을 잡은 대전에서도 한 시즌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남긴 성과 역시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교차한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완벽한 경기력으로 '무패 우승'을 달성하며 잠시 명예회복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23세 이하 아시안컵에서는 2회 연속 8강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2022년에는 21세 이하로 구성된 일본에 3골차 완패, 2024년에는 한 수아래로 꼽히던 인도네시아에게 졸전 끝에 각각 덜미를 잡혔다는 점에서 황선홍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황 감독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동정론도 존재했다. 아시안컵의 경우, 배준호 등 주력 유럽파 선수들의 차출이 이미 협의까지 끝난 상황에서 소속 구단들의 갑작스러운 번복으로 불발되며 정상적인 전력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축구협회의 잘못된 판단으로 황 감독이 A대표팀 임시 감독을 맡으며 올림픽 대표팀에 전념할 수 없었던 고충도 있었다.
황선홍 감독에게는 대전이 어쩌면 지도자 커리어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포항 시절을 끝으로 이후 맡은 팀마다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던 황 감독으로서는, 대전에서마저 또다시 실패한다면 K리그1에서 더 이상 감독 경력을 이어나가기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황 감독과 동기인 홍명보 감독은 2014년 A대표팀에서 큰 좌절을 맛봤으나 K리그 감독으로 복귀한 이후 울산 HD의 2연패를 이끌며 어느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전임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이었던 김학범 감독도 제주 유나이티드를 맡아 지난해 9위였던 팀을 현재 6위까지 올려놓으며 선방하고 있다.
문제는 황 감독이 맡게 된 대전의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 한때 승격팀 돌풍을 일으켰던 대전은 올시즌 3승 5무 8패(승점 14)로 K리그1 12개구단중 11위로 추락하며 강등권에 위치해있다. 최하위 대구FC와는 다득점에서만 겨우 1골 앞서 있을뿐이다. 이민성 전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임했다.
황선홍 감독이 K리그1으로 돌아온 것은 2018년 FC서울 감독 사임 이후 무려 6년 만이다. 시즌 중반에 갑작스럽게 부임하여 차근차근 팀을 만들어갈 시간도 없는데다, 승강 전쟁은 황 감독에게도 처음이다. 황 감독으로서는 올시즌 대전을 기적적으로 반등시키고 1부리그에 잔류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업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황 감독은 2024년에만 올림픽 팀의 본선진출 실패와 소속팀의 2부 강등이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달성하는 '감독 인생 최악의 한 해'가 될 가능성도 있다.
황선홍 감독은 구단을 통해 "대전하나시티즌이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재창단할 당시 첫 발걸음을 함께했던 만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다시 돌아오게 되어 기쁜 마음이 크며 어려운 상황에서 중책을 맡겨주신 구단에도 매우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반면에 팀이 현재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과 책임감도 무겁게 안고 있다. 그동안 현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빠르게 팀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 현재의 위기 극복을 넘어 구단이 꿈꾸는 비전 달성을 위해 모든 구성원들과 하나 되어 화합하고 노력하겠다"라는 각오를 전했다.
황 감독의 대전 사령탑과 K리그1 복귀전은 A매치 휴식기 이후 공교롭게도 15일 열리는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와의 원정경기다. 벼랑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황 감독의 마지막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