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은 국민에'라지만, 국민 뜻 따른 개헌은 드물었습니다"
[오문수 기자]
▲ 주철희 박사가 자신의 저서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
ⓒ 오문수 |
올해 나이 60인 주철희 박사. 예순 살에 이르렀으니 이순(耳順)의 나이다. 공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지 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나이다.
60이면 안주하고 친구들과 잡담하며 소일하고 지낼만도 한데, 주 박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보수논객과 논쟁하며 책을 펴낸다. 주제는 주로 여순항쟁이다.
그는 전북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사학)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대한민국의 현대사, 민주주의 저항운동, 국가폭력, 민간인 학살, 반공문화 등을 중심으로 역사 재정립에 진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량국민들>,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주철희의 여순항쟁답사기>1-2 등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다양성 가운데 우리의 삶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고, 또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점은 같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 삶의 흔적이자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사를 해석하는 역사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 그에게서 며칠 전 "새로운 책을 냈다"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가 펴낸 <대한민국 현대사 : 헌법에서 현대사를 읽다>는 1948년 7월 17일 헌법 제정에서부터 시작하여 9차 헌법 개정으로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이 자리하기까지 과정에서 담긴 대한민국 현대사를 담고 있다. 그가 여순항쟁에 집중하다가 헌법개정에 대한 책을 내게 된 동기를 말했다.
"많은 사람이 헌법 속 현대사의 진실을 너무 모르는 게 안타까워서 책을 내게 됐어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체에도 불구하고, 9차례 개정 중에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따라 개정된 경우는 드물어요. 민주주의와 주권재민의 헌법 정신은 권력자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습니다."
다음은 그가 펴낸 책을 중심으로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국민의 기본권 강화가 절실하다
▲ 주철희 박사의 최신 저서 <대한민국 현대사: 헌법에서 현대사를 읽다> 1,2권 모습 |
ⓒ 주철희 |
- 개헌을 얘기하시는데, 차후 제10차 개헌에서 주안점을 둘 조항은 무엇인지요?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의 국가입니다. 그런데 행정부와 입법부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만, 사법부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민주성을 위해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선거제가 필요합니다. 이는 제2공화국 때 실시되었던 제도입니다.
여기에 사법부의 양대 축인 헌법재판소도 선거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 강화가 절실합니다. 특히 저항권은 반드시 신설되어야 할 조항이고요."
- 책을 읽다 보면, 현행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규정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우선 세계 대부분 나라의 헌법에는 영토 규정이 없습니다. 있다면 중국 정도가 현 '대만'을 중국의 하나의 성(省)으로 간주하는 정도이지요.
우리나라의 역사는 만주 등에서 시작되었는데, '한반도'란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인지요. '한반도'란 단어가 맞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한반도란 명칭은 1900년대 시작된 용어이고, 자주 사용한 영토의 명칭도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란 국제적으로 통용된 명칭도 아닙니다."
- 제2공화국을 민주당 정부라고 일컫는데, 대체로 제2공화국을 실패한 정부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유가 뭐죠?
"제2공화국은 시민의 피로 달성한 4.19혁명의 성과물입니다. 제2공화국은 헌정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각책임제를 시행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국민들은 내각제에 대한 불신이 있습나다. 그런데 제2공화국의 내각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겨우 1년도 안되는 동안 민주당 정부로 차근차근 정책을 실현시켰습니다. 그런데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이지요.
5.16쿠데타 세력은 쿠데타의 명분으로 제2공화국을 폄훼 왜곡했고, 우리는 쿠데타 세력이 만들어 낸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2공화국의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권력의 분산에 가장 충실했던 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앞서 말씀드린, 사법부의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선거제를 실시했고,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를 헌법기관으로 두었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도 헌법에 담았지요."
대한민국 영토 규정하는 3조 바뀌어야 하는 이유
- 현행 헌법이 시대적 가치 또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조항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앞서 설명한, '영토 조항'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있고요. 제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규정인데요, 전통문화가 무엇이고 민족문화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실과는 맞지 않기에 개정하거나 삭제했으면 하고요.
제92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두는 조항은 삭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전신은 유신시절에 '통일주체국민회의'입니다. 즉, 구 시대의 유산이라는 점이고요. 현행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평화통일'과 무관하게 지역의 토호 세력과 정파적 이해관계로 변질되었습니다."
- 2권 마지막을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지금에 이르는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의 투쟁과 죽음이 있었다.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분의 투쟁과 죽음이 있었습니다. 즉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이 관심과 행동(실천)이 있었을 때는 그 빛이 났지만, 조금만 나태하고 무관심하면 언제든지 변질되었고 국민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지난 역사에서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분이 투쟁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그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7공화국을 위한 개헌 논의가 있습니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 헌법개정은 정치권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어, 자유와 평등이 만발하고 이 땅에 사는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골고루 잘 사는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논쟁하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그에게서는 노익장이란 말이 부끄러워질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헤아리며 그가 던진 화두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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