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오물풍선 치고빠지기…'확성기' 한계선 간 보려는 노림수?
북한이 2일 밤 김강일 국방성 부상 명의 담화를 통해 대남 오물풍선 살포를 중단하면서도 '대북 전단'을 보내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기본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시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 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의도적인 '치고 빠지기'를 구사하는 모양새인데, 남남 갈등을 유발하고 남측의 대응 기준선을 가늠해보려는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대북 전단' 조건부, 사실상 정부 압박
김강일은 담화에서 "우리는 국경 너머로 휴지장을 살포하는 행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면서도 "반공화국 삐라(전단)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이미 경고한 대로 백 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실상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민간단체를 설득하라는 협박과 함께 우리 정부에 공을 넘긴 모양새다.
여기에 더해 '오물풍선',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같이 국민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도발로 국론 분열을 일으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깔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당장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절차인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나 일부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여야 간에 설전이 오가는 양상이 전개되는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오물풍선이나 GPS 교란은 일반적인 군사도발과 달리 국민이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며 "기본적으로 안보 불안 조성을 통해 남남갈등을 조장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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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도발 명분 쌓기
김정은이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규정한 만큼 강도 높은 군사 도발을 감행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김정은은 지난 2월 남북 간 해상 경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두고 "해상 주권을 성명, 발표문으로 지킬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무력행사로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대북 전단이 북측 지역에 추가로 살포될 경우 북한군이 더 높은 수위의 도발에 나서며 한반도 주도권 싸움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북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접근하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움직임도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3일 중앙일보에 보낸 성명문을 통해 "김정은이 대한민국 전역에 오물 쓰레기를 보내 우리 국민에게 모욕과 수치를 줬다"며 "김정은이 자신의 악행에 대해 만약 사과하지 않으면 천배, 만배로 보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 정부에 공을 넘긴 만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이뤄질 경우 북한군이 전방지역 대규모 훈련 재개나 서북 5도 등지에서의 기습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한계선 밀어보려는 김정은
최근 북한의 복합 도발은 한국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압박 카드인 대북 확성기 재개가 어느 정도 수위에서 현실화할 것인지를 가늠하려는 측면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이 앞으로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간보기식 도발'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김정은에게 당장 대내적인 성과가 우선인 만큼 향후 도발 스케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4년 차 중반을 향해가는 경제·국방 5개년 계획의 완성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김정은 입장에서도 남북 간 충돌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도 "북한도 이번 군사행동을 통해 위성 발사 실패로 구긴 체면을 일부 만회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전원회의 준비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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