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석유 브리핑'... 가능성 믿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다니
[임병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윤 대통령 오른쪽은 국정브리핑에 배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면서 말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 할 수 있다."
브리핑 내용대로라면 기뻐할만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발표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윤 대통령이 발표한 포항 지역은 원래 가스와 석유가 자주 발견된 곳이고 매장된 것도 분명하지만, 가장 중요한 '경제성'이 떨어져 채굴을 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 1976년 1월 16일 조선일보 1면 |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
이같은 일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1976년 1월 1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작년 12월 초 우리나라 영일만 부근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나온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는 본격적인 매장량 탐사 작업을 실시한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온 것이 사실이라는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습니다. 국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나라도 이제 산유국"이라며 꿈에 부풀었고, 심지어 '석유 원년'이란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석유가 나왔다'는 대통령의 말은 전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주식 시장은 요동치다 못해 과열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일주일 만에 석유 관련 보도는 사라지고, 포항에서 울산까지 송유관을 깔고 있어 포항 시가지 전체가 이주해야 한다는 뜬소문만 나돌았습니다.
이듬해인 1977년 1월 장예준 상공부장관은 "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밝힌 바대로 탐사를 계속 하고 있지만 새로운 소식은 없다"면서 "석유 탐사는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고 기다려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반전이 일어납니다. 정부는 "포항 석유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시추를 중단했다"고 짤막한 발표를 했습니다. 더는 포항 석유에 관한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는 없었습니다.
포항 석유는 조작?... 석유 파동 이후 나온 해프닝
1984년 5월 <월간조선>에 조갑제 기자의 포항 석유 조작설 관련 기사가 실립니다. 1975년 <국제신문>에 근무했던 조 기자는 포항 석유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를 작성했지만 당시 사회부장은 "어제부터 정보부에서 연락이 와서 포항 석유에 대해 일절 보도하지 못하게 했다"라며 기사를 막았다고 합니다. 당시 조 기자는 취재 자료를 토대로 논문까지 썼고, 일본 언론은 이를 받아 보도했습니다.
조 기자는 포항 석유에 대해 "경제성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매장량은 적을 것"이라며 "유전 개발 여부는 경제성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조 기자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취재한 경위 등을 조사받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경제성에 관한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석유가 나왔다"고 말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전세계 경제가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한국은 더 심각한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당시 서울 시내 번화가의 네온사인 70%가 꺼졌고, 국민들은 석유통을 들고 주유소를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집집마다 석유곤로에 석유를 넣지 못해 연탄난로도 바꿀 정도로 우리나라는 혹독한 파동을 겪었습니다.
경제가 무너지자 대통령의 지지율도 추락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박 대통령은 '국민생활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까지 발동했습니다.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다'는 말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중앙정보부의 삐뚤어진 충성심과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이 빚어낸 해프닝이었습니다.
▲ 2016년 포항MBC는 포항 가스 유전이 경제성이 없다고 보도했다. |
ⓒ 포항MBC 유튜브 갈무리 |
2015년 한국석유공사는 포항 앞바다에서 3600만 톤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합니다. 당시 한국석유공사는 국내 1년 소비량의 1.3배이고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11조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상북도는 가스개발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개발이 이뤄지면 3조 원이 투자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내놨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추해 보니 매장량도 부족하고 경제성도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추 결과와 보고서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다가 포항MBC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석유나 가스 개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경제성'입니다. 시추 작업을 통해 경제성이 확인되는 경우는 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원 개발은 사기꾼도 많고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윤 대통령은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높다고 알렸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말은 '가능성'입니다. 정확한 시추 결과가 나온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했습니다. 불확실한 가능성만 믿고 굳이 대통령이 브리핑을 할 필요가 있는지 물음표가 따라옵니다. 일각에선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정치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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