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리뷰] 가상과 현실을 넘어, ‘여기 밖’의 ‘원더랜드’
팬데믹 기간 중 걸었던 영상통화가 사후세계에 대한 새로운 영화적 상상력을 열었다. 세상을 영영 떠난 이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먼 곳에,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영화 ‘원더랜드’의 세계는 그 위에 구축됐다.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김태용 감독이 ‘만추’ 이후 13년 만에 상업영화 메가폰을 잡았다. 특별 출연한 배우 공유까지 원더랜드 서비스를 둘러싼 6인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그렸다.
개봉 전부터 화려한 면면들로 눈길을 끌었다. 탕웨이가 ‘만추’ 이후 13년 만에 남편인 김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질 딸을 걱정해 자신을 AI로 복원하는 엄마 바이리 역을 맡았다. 수지와 박보검은, 사고로 의식을 잃은 태주와 그런 그를 AI로 복원하는 정인을 맡아 처음으로 연인 사이를 연기했다. 평소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한 최우식과 정유미는 원더랜드 서비스를 관리하는 플래너 동료로 합을 맞췄다.
극 중 원더랜드 서비스 속 AI는 신청자의 기억 데이터에 기초한다. 그 기억은 고인을 그대로 옮기진 않는다. 정인(수지)이 태주(박보검)의 밝은 면을 부각해 어떤 요구에도 다 응해주는 다정한 AI 남자친구로 복원했듯, 생전과 완전히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AI 바이리(탕웨이)의 어머니(니나 파우)가 허무함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원더랜드’는 생전의 미련으로만 구축된 이상향일까. 영화는 무한하게 복사된 거울 연출로 정인의 고뇌를 표현한다. 철학자 쟝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처럼 생전의 고인이 ‘이데아’(본질)라면 원더랜드에 복원된 AI는 ‘시뮬라크르’(복사물)다. 생전 꿈꾸던 좋은 모습만을 담은 이상적인 ‘초실재’로 현실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원더랜드’는 원본과 복사라는 뻔한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여기에는 영상통화라는 소재가 크게 작용했다.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가 실시간 통신 기술의 보편화가 고전적 개념의 시간과 공간을 ‘여기’와 ‘저기’로 재편했다고 분석했듯 시공간이 복수성을 갖게 됨에 따라 가상은 거짓, 부재함을 넘어 ‘여기 밖’에 존재한다는 새로운 존재 양상으로 거듭났다. ‘원더랜드’는 바로 이 가짜가 진짜로 존재한다는 지점을 근사하게 잡아낸다.
AI의 학습하는 속성도 가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서비스 플래너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이 만나는 다양한 의뢰인이 보여주듯 ‘원더랜드’는 이상적이기만 한 가상이 아닌, 현실을 투영하고 상호작용 하는 ‘또 다른 현실’이다.
극 중 화면 밖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배워간 AI 바이리가 이를 잘 보여준다. 화면 밖과 연락이 닿지 않으면 걱정하고, 슬퍼할 줄도, 화면 밖을 위해 기꺼이 달릴 줄도 아는 후반부 AI 바이리(탕웨이)의 행보는 복원AI가 기존 바이리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기계인형이 아닌, 새로이 관계 맺는 존재로 거듭나는 순간을 그린다.그래서 남겨진 이는 어떤 식으로든 위로 받는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듯, 학습하는 AI와 새로 관계 맺고 소통하는 것이 다시 한번 꿈 같은 기회를 연장시켜 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박보검의 말처럼 ‘이상하고 이상적’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정인과 태주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보다 ‘원더랜드’가 우선될 수는 없다고 짚는다. 러닝타임 중 둘의 서사가 깊게 다루어지지는 못했으나, 달콤했던 일상에 예기치 않은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예측이 어렵다는 이유로 편리한 관계만을 택할 수는 없다고 전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바로 곁에 있는 이와 여기서 행복할 것, 누구나 언젠가 이별을 겪게 되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닌 ‘여기 밖’의 존재로 향하는 것이니 두려워 말 것. 이것이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가상 논의를 경유한 ‘원더랜드’가 전하는 위로와 공감이다.
오는 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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