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탈북 외교관 "확성기 영향 대단…北, MZ군인 동요 두려워해"
"확성기 방송을 통해 접경 지역 군인의 마음을 빼앗으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도록 정신 전력을 와해할 수 있습니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확성기로 전파된 정보로 인해 최근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김정은의 권위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며 3일 중앙일보에 이같이 말했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인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도 "북한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이등병의 편지'를 흥얼거릴 정도로 확성기로 흘러나오는 한국 노래와 뉴스의 영향은 대단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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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軍 '사상 침투' 두려움
북한은 접경 지역 군부대를 주기적으로 '교방', 즉 주둔지를 교체시킬 정도로 남측과 맞닿은 군인들의 사상 이완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접경지를 통한 북한 군인의 귀순만 14번에 이른다. 류 전 대사대리는 "확성기 데시벨이 워낙 큰데, 전선에 있는 군인들을 향해 '최고 존엄'(김정은)의 권위를 훼손하는 방송으로 도배하니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1963년 박정희 정부 때 시작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남북 군사합의를 통해 중단됐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천안함 폭침(2010), 목함지뢰 사건(2015), 4차 핵실험(2016) 등 북한의 중대 도발 시 대북 확성기를 재설치하거나 방송을 재개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당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확성기는 모두 철거돼 현재까지 방송이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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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이등병의 편지' 부를 정도"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확성기가 재개됐을 때는 '뱅뱅뱅', '오늘부터 우리는', '소원을 말해봐' 등 대중가요가 방송 다수 포함됐다. 10대에서 20대가 대부분인 전방의 북한 군인들이 동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태영호 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에 "접경지역 군인들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새카만 밤에 굶주린 배를 붙잡고 근무를 서던 중 트로트 등 한국 노래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면 그렇게 귀에 잘 박힌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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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의 낙…후방에도 전파"
대북 확성기 방송이 이전보다 한국 문화를 동경하는 경향이 강해진 MZ 세대 북한 군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1970년대 북한 측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전방지역 군인들은 확성기 방송을 듣는 게 군 복무의 낙"이라며 "본인만 듣는 게 아니라 후방에 이를 전달하며 이들이 직접 일종의 '안테나', '중계탑'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사상 교육이 투철할 때도 확성기 방송은 잘 먹혔는데, 최근 문화적으로 남측에 훨씬 경도된 '장마당 세대'에 대한 체제 이완 효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북한이 얼마나 아파하는지는 앞선 남북 간 고위급 회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15년 8월 북한이 남측 확성기에 포탄까지 쏜 뒤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여했던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관심사는 오로지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다른 문제는 거의 꺼내지도 않은 채 확성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은 한국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대가로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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