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숨>, 주변부의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서는 공간
[김성호 기자]
깊은숨을 내쉬게 되는 때가 있다. 달뜬 몸을 진정시킬 때, 말하자면 불안하거나 짜증스럽거나 위태로울 때에 깊은숨을 쉰다. 사람이 몰리면 호흡부터 짧아지는 법이기에. 깊은숨은 위태로운 상황을 전환하는 좋은 방법이 되어준다.
김혜나의 소설집 <깊은숨>을 만났을 때 처음 든 인상도 꼭 그런 것이었다. 작가는 위태로웠던가. 그녀는 어떤 이유로 '깊은숨'을 떠올린 것일까. 그의 삶은 자주 버거웠던 것일지 궁금하였다.
목차는 모두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말한다. '오지 않은 미래', '가만히 바라보면', '아버지가 없는 나라', '모니카', '비터스윗', '레드벨벳', '코너스툴'까지. 작품명을 하나씩 짚어가며 생각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오지 않은 미래를,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이곳에 없고, 그리하여 온갖 외국어가 넘실대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가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
▲ 깊은 숨 책 표지 |
ⓒ 한겨레출판사 |
피고 지는 마음들
김혜나는 한국문학이 지난 20년 간 보여온 주된 경향, 즉 소외되고 고립된 여성의 내밀한 이야기에 주목한다. 2010년 민음사의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2016년 제4회 '수림문학상' 등 신진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굵직한 상들까지 거머쥐었다. 변방의 여성에 대한 변치 않는 관심이 선명히 드러나는 두 번째 소설집은, 여성의 이야기가 여전히 한국 문학, 또 김혜나에게 소구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든다.
첫 이야기는 창이 넓은 카페, 가장 구석진 자리로부터 시작한다. 창이 넓은 카페와 가장 구석진 자리가 품은 괴리처럼, 그곳에서 만나는 인물들도 어딘지 이질감이 느껴진다.
먼저 앉아 있던 이는 진수와 민서다. 둘은 사귀는 사이로 주인공 여경은 민서를 먼저 알았다. 동화작가 여경과 동화작가 지망생 민서는 전통주 교육기관의 술 빚기 취미반에서 처음 만났다. 여경이 헝가리로 떠나 글을 쓰다 올 계획을 전하자, 민서가 그곳에 제 애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민서 없는 부다페스트에서 여경과 진수가 만났다.
소설은 세 사람이 만난 오늘과 얼마 전의 부다페스트를 오간다. 오늘 만난 세 사람은 함께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걷는다. 그 며칠 전 여경은 세체니 다리 위에서 다뉴브 강을 보았고, 그곳 걷기를 좋아한다던 진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를 불러내 함께 식사를 하고 부다 왕궁을, 그 어여쁜 성곽길을 따라 걸었다. 그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어서였으리라 그렇게 여겼다.
▲ 명상(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첫 소설은 아주 짤막한 이야기다. 글을 쓰러 헝가리에 다녀온 동화작가가 귀국 후 제게 도움을 준 어느 커플과 만나 회포를 푸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 번의 입맞춤도, 한 번의 포옹도, 마음 담긴 서신하나 없는 것이지만 그들 사이에 마음이 피어나고 진다는 걸 독자는 알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이 부담으로, 불편으로 화하는 순간이 있다. 소설은 그 불편의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의 시점에서 묘사한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어떠한 잘못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어쩌면 많은 것이 일어난 그 시간들이, 오래 참은 숨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내쉬어지는 것이다.
서로를 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피어보지 못한 꽃이, 혹 가시가 있고 악취가 있을지라도, 그저 그만두는 것이 나는 못내 아쉬워서 다음 장에도 이야기가 이어지길 바랐다. 그러나 다음 장은 저기 멀리 태국으로 자리를 옮겨 펼쳐진다. 주인공은 요가원 강사로 일하다 몸을 상하고 요양과 여행을 겸하여 파타야로 떠나온 여자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일찍이 파타야에 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는데, 그곳은 무척이나 야한 곳인데 야하다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야하여 야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땅이다. 휴양지치고 바다는 탁해서 영 놀 마음이 생기지가 않는데, 나이 든 백인들과 돈 많아 보이는 동양인이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여자아이들을 곁에 하나씩 끼고 다니는 것이 영 민망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곳에서 조금 더 머물다 보니 파타야는 누구도 다른 누구를 판단하지 않는 곳이었고, 그리하여 온갖 성소수자들의 천국이었으며,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망가진 많은 이들이 흘러들어오는 땅이기도 했다. 김혜나가 '가만히 바라보면'에서 그린 파타야가 꼭 그런 곳이다. 가만히 오랫동안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도시, 또 그토록 달리 보이는 사람들이 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작품 가운데 '나'는 트랜스젠더인 잠과 우연히 가까워진다. 술을 잔뜩 먹은 그이가 나의 방에 쳐들어와 잠을 청한 탓이다. 그로부터 잠과 나는 파타야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고, 나는 조금씩 잠의 삶에 개입되기 시작한다.
소설은 잠과 한때 그이와 가까웠으나 이제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된 린, 그리고 나를 당돌하게 연결 짓는다. 린의 도움으로 나는 건강을 찾지만, 나의 도움으로 트랜스젠더 잠은 린을 얻고, 또 린은 잠을 얻는다. 훌쩍 떠나간 여행에서 서로는 없었을 인연을 만나고, 잃었던 연을 되찾고, 서로를 전과는 다른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바라보면 세상은 조금은 더 살만해지는 것일까.
세 번째 이야기는 슬며시 내쉰 숨을 다시 참게끔 한다. 저 멀리 시애틀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 편으로 한국 해외 입양인 아진이 들어온다. 한아는 지난해 아진이 친부를 만나러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함께 지낸 사이다. 이번에 아진이 입국한 건 친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어서라 했다. 아진과 한아는 인터넷 어플로 처음 만난 사이, 그래서인지 아진은 한아를 미국식 발음으로 해나라 부른다. 해나는 곧 한아를 희미한 기억 속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한아를 처음 해나라 부른 건 어릴 적 미국에서 함께 살던 모니카였다. 일곱 살 때 한국에 들어와 엄마와 둘이 살기 전까지 모니카는 아빠를 대신하는 가족이었다. 연인 관계였던 듯 보이는 모니카와 엄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묘사되고 다시 한아와 모니카, 그리고 아진과 친부모의 이야기가 조금씩 풀려나간다. 이미 부서진 관계들이지만 소설은 서로 다른 결말로 맺어진다. 모니카는 주인공에게 의미를 주고, 아진의 친부모는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다.
네 번째 소설은 제목처럼 셋째에서 미처 못한 모니카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요가수련을 위해 떠난 인도에서의 이야기다. 두 번째 작품과 같이 요가를 하는 주인공이 나오고 가까이 지내는 진 언니와 그 아들 제이슨, 사귀는 사이이긴 하지만 열렬하진 않은 준이 등장한다. 천방지축인 아이 제이슨을 주인공은 좀처럼 참아내지 못한다. 엄마는 잔뜩 지쳐 있고, 주인공은 교감 없이 그저 제 몸만을 원하는 애인에게 또 지쳐 있다.
그다음은 무척이나 문학적인 영어수업에서 강사와 교감을 느끼는 학생의 이야기다. 둘의 사이가 진전되자 유부남인 영어강사 해럴드는 주인공과 선을 긋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남자와 여자란 이유로 사제지간의 관계며 우정을 진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같은 마음은 해럴드가 직접 학원을 차리고 연 개업식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데, 그곳에서 주인공은 해럴드의 어린 딸의 버릇없음과 해럴드의 무책임함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성별이 다른 관계에 따른 오해와 복잡함
마지막 소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로 가까워지지 못하고 심지어는 오해받는 관계에 대해 작가는 깊은숨 아래 참아두었던 마음을 한껏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혜나 작가의 소설이 대개 그러했듯 <깊은숨> 속 주인공들은 변방의 여성이다. 그녀들은 각기 제 삶 귀퉁이를 떠돌거나 어디가 중심인지조차 잃어버렸거나, 못된 사내와 그들이 구축한 사회로부터 상처를 입은 채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간다. 트랜스젠더로 여성성을 얻었거나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 또한 주인공들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은 여성성을 잃고 잔뜩 지쳐있으며, 아이들은 천방지축 날뛰어 좀처럼 정을 붙일 재간이 없다. 그 속에서 남성들은 아진의 친부처럼 책임지지 못할 아이들을 만들고, 여성의 몸만 탐하며, 심지어는 여자를 때리고 괴롭히기까지 한다. 그도 아니라면 첫 소설과 다섯, 여섯, 일곱째 소설의 남자들처럼 어떤 용기도 내지 않은 채 비겁하고 비루하게 살아간다.
김혜나의 소설은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내쉬게 한다. 처음엔 어째서 남자들을 이토록 몰지각하고 비겁하게만 그리는지 못마땅하다가도, 읽다 보면 마침내 그네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실제 존재하는 이들이란 것을 인정하게 된다. 또 한 편으로는 내게도 그와 같은 비겁과 무책임의 단초쯤은 있으리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나는 김혜나의 소설이 이 세상의 진실 가운데 일부는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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