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돌아온 시민기자의 고백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은영 기자]
2007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1년 남짓한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대학 4학년에 복귀하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오마이뉴스를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사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일본 유학 생활을 하며 재일 동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한 편 제작했었다. 2007년 귀국 후, 그 작품이 한국의 어느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대학생 입장으로서는 꽤나 큰 상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 기쁨과 동시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재일 동포들을 향한 나의 관심이 다큐멘터리 하나로 끝난다면 작품을 위해 그들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들을 위해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기사 쓰기를 중단한 진짜 이유
▲ 창피해서 나만 읽고 싶은 15년전 나의 기사 |
ⓒ 오마이뉴스 |
당시의 오마이뉴스는 창간 7주년을 맞은 아직은 어린(?) 매체였다. 지금처럼 인터넷 언론이 대중화되기 전이었기에 `시민 참여 저널리즘`을 내세우는 오마이뉴스의 등장은 사회적 이슈였다. 뉴스의 지평을 바꿨다는 평가도 있었던 반면 독자들의 저항도 강했다. `일기는 혼자서 일기장에 쓰라`거나 `오마이가 신문이냐?` 등의 가시 돋친 말들은 당시의 시민기자들 기사에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던 댓글이었다.
그래도 나는 오마이뉴스가 좋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마이뉴스 기자님들과 기획 취재 차 함께 일본을 방문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고, 사석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다양한 기자님들과 교류하며 그분들 덕분에 나의 세계도 넓어졌다. 당시 나에게 오마이뉴스는 삶의 활력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2009년 3월을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기를 관뒀다. 왜 그랬을까? 표면적으로는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첫째는 뉴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당시의 시민기자분들께는 죄송한 고백이지만 그때의 나는 `사는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거대한 담론만이 뉴스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는이야기는 오마이뉴스를 이루는 큰 축의 하나인데, 당시의 나는 그 생각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둘째는,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글쓰기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뷰와 같이 취재 대상이 존재하는 기사를 작성한 후에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기사의 조회수가 낮거나 나쁜 댓글이라도 달릴 때면 `나보다 필력 좋은 기자가 기사를 썼더라면..`하는 자책감과 함께 취재 대상자들께 죄송한 마음이 물밀 듯 밀려왔다.
▲ 15년 전의 나는 나의 한계에 부딪혀 글쓰기를 포기했었다. |
ⓒ pixabay |
기자 활동을 그만둔 2009년은 내가 일본에 이주한 해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의 눈에는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일본에서, 그래도 좋은 인연들에 둘러싸여 보낸 지난 15년은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최은영 시민기자 연재기사 https://omn.kr/27fc4, 기자님, 저 팬입니다!) 같은 시간이었다.
반면, 나의 언어생활만을 살펴보면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일본인 남편과 결혼하고, 주 언어가 일본어인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급속히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2년 전 한국인 커뮤니티가 거의 없는 현재의 거주지에 정착하게 되면서 나의 언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오마이뉴스였다. 기사를 쓰는 것이 한국어로 읽고 쓰는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언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다소 이기적인 목적으로 오마이뉴스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는이야기의 힘을 다시 보다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오마이뉴스. 익숙한 로고와 다소 자극적인(?) 기사의 제목들을 보는 것만으로 친정에 돌아온 듯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활동을 재개한 나를 알아봐 주시고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는 기자님들도 계셨다(감사합니다!).
달라진 것도 많아 놀랐다. 우선 하루 동안 올라오는 기사의 양이 엄청나게 늘었다. 더 놀란 것은 그 기사들의 완성도이다. 한국은 물론 해외 여러 곳에 계신 시민기자님들의 기사를 읽고 있자면, 이걸 내가 공짜로 읽어도 되나 싶을 만큼의 전문성과 완성도를 갖춘 기사들이 많았다.
그런 내가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섹션은 무엇일까?(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사는이야기다! 시민기자님들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속에 정치, 경제, 민족 등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담론들이 생생하게 녹아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다.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의 작가이기도 한 최은경 편집기자님의 말처럼 `들릴 듯 말 듯 작게 들리고 보일락 말락 겨우 보이는` 이 작은 이야기들이 주는 울림과 감동은 다른 뉴스 매체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오마이뉴스, 특히 사는이야기가 가진 커다란 힘이다.
할머니는... 언젠가 내게 행복은 무언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또 내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49쪽)
시민기자님들의 기사를 읽으며 나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친절한 목소리로 택배 기사님을 맞이하고, 택시 기사님에게 진상 손님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육체와 마음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가진 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헤아려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나는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십만인클럽을 통해 오마이뉴스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가입동기를 선택할 때 `대안언론 후원`이라는 항목을 골랐지만, 사실 내 마음속의 후원 동기는 따로 있다. 그것은 `커피 한 잔 대접하기`이다.
▲ 일단 편집 기자님부터, 제 커피 한잔 받으시죠. |
ⓒ pixabay |
따뜻한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은 또 다른 존재는, 동료 시민 기자님들이다. 기자님들 중에는 15년 전의 나처럼 `이런 게 기사거리가 되나?`라고 망설이며 키보드 앞에 앉아 계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조회수가 낮거나, 편집 방향이 본인의 생각과는 다르거나, 상처가 되는 댓글들로 인해 마음 상해 계신 분들도 있으실 테다.
어떤 모습이든, 여전히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으신 동료 시민기자님들께. 여러분이 들려주시는 작은 목소리에 웃고 우는 독자가 여기에도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손 한번 꼭 잡아드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 사드리고 싶었다.
나는 앞으로도 오마이뉴스를 통해 내가 사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시민기자님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정독해 나갈 예정이다. 오마이뉴스라는 플랫폼에 모여진 기사들을 통해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며, 우리가 걷는 이 길 곳곳에 행복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시민 기자들의 구심점이 되어 주고 있는 오마이뉴스가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정론직필하는 매체로 존재해 주기를,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바라본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