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다"…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가족 도와주는 법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 2024. 6. 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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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 우울증클리닉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우울증은 흔하고 우울감은 누구나 느낀다. 살다 보면 인생의 위기란 우울증 환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우울증 환자를 열심히 위로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너만 우울하냐, 너만 힘든 일이 있는 건 아니다”라는 식의 말이 입밖으로 툭 튀어 나오기도 한다.

가족이 우울증 환자를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환자와 편안한 상태로 같이 잘 지낼 수 있는가’ 하는 관점으로 우울증에 접근해야 한다. 조급하게 접근하면 오히려 탈이 난다. “왜 빨리 좋아지지 않느냐!”고 환자를 채근하는 것도 금물이다. 때로는 무관심하게 있는 것도 필요하다. 평소에 너무 과도하게 관심을 기울여서 환자가 부담을 느껴왔거나 잔소리가 심한 가족이었다면 거리를 조금 두는 것이 좋다.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었다가 환자가 요구할 때 개입하면 된다.

우울증 환자가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면, 약간의 격려와 응원으로 가족이 환자의 동기 부족을 메꿔주면 좋다. 환자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잘못으로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시켜 주는 것도 필요하다. 가족이 응원하고 꾸준히 함께 옆에 있을 거라고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환자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면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거나, 관계가 나빠진다. 우울증 환자를 그냥 내버려 두면 버릇이 없어지거나 나태해질 것 같다고 걱정하는 가족들도 있다. 환자가 나아지려는 동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가족이 힘을 보태고 나아질 거라고 확신을 갖게 도와야 하지만, 압박을 가하면 치료 의지는 낮아지게 마련이다. 환자의 심리적 부담감이 커지면 더 위축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릴 수도 있다.

‘우울증에 걸리면 무조건 쉬게 해야 하느냐, 가만히 내버려 두어야 하느냐’ 하고 우울증 환자의 가족은 종종 의사에게 묻는다. 지쳐 있으면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냥 쉰다고 우울증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신체적 건강을 회복할 때와 마찬가지로 건강한 음식 먹고 제때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 몸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건강하게 관리해야 치료된다.

억지로 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환자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요양하듯 시간을 보내면 회복이 늦어진다. 환자의 회복 속도에 맞춰 활동량을 점진적으로 늘려갈 수 있도록 가족이 보조를 맞춰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 맛있는 식당에서 외식하기, 가벼운 산책처럼 부담을 느끼지 않을 활동부터 환자가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우울증이 심할 때는 이마저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아무런 활동 없이 실내에만 계속 머물면 우울증은 악화된다.

가정주부가 우울증에 걸렸을 땐 접근법이 조금 다르다. 그들은 집안일과 육아로 자기 삶을 잃어버렸다고 느낀다. 자신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고, 자아 실현에서 멀어졌다고 좌절감을 느낀다. 이럴 때는 육아나 집안일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필요하다. 배우자가 집안일을 대신해 주면 좋다. 남편이 아이를 전담하고, 아내가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우울증에 걸린 주부가 아무것도 안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면 환자는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다.

아이와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 엄마가 된 것 같다며 자책한다. 가족은 환자에게 “그렇지 않다. 우선은 건강을 회복하는 게 더 우선이다”라고 안심시켜줘야 한다. 안정을 취하고 나서 이전 생활로 돌아가도 좋고, 의미 있는 다른 일을 해 볼 수도 있으니,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해야 한다.

우울증 환자의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가족도 우울증 환자의 식사 만큼은 꼭 챙겨서 같이 먹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환자가 자기 방에서 혼자 밥을 먹으려고 하거나 끼니를 거르면 “밥은 가족이 함께 모여서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게 좋다. 식사할 때 대화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말없이 식사해도 되니 얼굴만이라도 마주 보며 밥 먹는 시간 만큼은 가족 모두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해야 한다.

가족들이 우울증 환자와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적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거다’하고 정답을 꼭 집어 말해줄 수는 없다.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환자에게 지나치게 밀착하는 건 좋지 않다. 환자를 돕겠다고 과도하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개입하는 것도 안 좋다. 때로는 적당히 무신경하게 지켜보는 게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가족마다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가 다르고, 환자마다 요구하는 관심의 강도도 다르다. 완전한 무관심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친밀하게 끊임없이 대화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걸 매 사례마다 정확히 결정하기란 무척 어렵다. 약물의 용량을 늘이듯 조금씩 조정해가면서 적절한 수준을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 의사와 상의하면서 조율해도 된다. 그렇다고 의사가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다. 주치의와 상의하면서 적절한 개입의 수준과 관심의 정도를 조정해 나간다, 라고 크게 생각하면 된다.

가족이 명심해야 할 원칙은 ‘효과적인 것은 반복하고 효과적이지 않은 것은 멈춘다’이다. 가족이 도와준다고 했는데 환자는 오히려 불편해하고 우울증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쳤다면 그런 개입은 중지하는 게 좋다. 우울증 환자의 치료에 효과적인 개입이라면 그걸 반복하면 된다.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고 있을 때 환자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을 떠올려 보고 그것을 다시 하면 된다. 환자가 평소에 기분 좋아하거나, 의욕을 냈던 일들을 떠올려 보고 그것을 다시 할 수 있도록 가족이 도와주면 된다. 평소에 환자와 외식하면서 가족 대화가 원할했다면 그걸 다시 시도하면 된다. 환자가 좋아했던 음식을 만들어줘도 좋다. 환자가 산책하기를 좋아한다면 가족이 같이 강변을 걷는다. 환자에게 산책하기 좋은 장소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환자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족이 알고 있고,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할 때 설득하는 것도 가족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말해도 완강하게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 상담이 무슨 도움이 되냐”라는 식으로 거부하면 가족이 치료에 대해 말을 꺼내기조차 어렵다. 그럴 때는 가족부터 병원에 와서 우울증 환자에 대해 의사와 상의한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가족이 의사와 먼저 상담하면서 어떤 점을 주의하고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환자 대신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는 것도 좋다. “어떻게 하면 너를 도울 수 있을지 알아보려고 내가 먼저 병원에 갔다 왔다”라고 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가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너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솔직히 말하면 된다. 그러고 나서 “너도 병원에 같이 가면 좋겠다”라고 슬쩍 권유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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