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펫보험 활성화 속도 내지만…제도 개선 ‘지지부진’

이준범 2024. 6.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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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롯손해보험, 삼성화재, KB손해보험, 현대해상 

손해보험사들이 펫보험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새 상품 출시부터 캠페인, 업무협약 등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활성화에 필요한 제도 개선은 미진한 상황이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캐롯손해보험은 지난달 23일 국내 펫커머스 기업인 어바웃펫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펫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어바웃펫의 유료 구독 서비스인 실비클럽 오렌지를 통해 제공되는 실비 보험형 상품이다. 진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하면 총 보상한도(연 50만원) 내 자기부담금(1만원)을 제외한 병원비 전액을 보장하고, 반려견와 반려묘 모두 가입할 수 있다.

삼성화재도 지난 4월 반려견의 입·통원의료비 및 수술비, 펫장례 서비스 지원금 등을 종합적으로 보장하는 ‘착한펫보험’을 출시했다. 주로 수술비 보장을 중심으로 범위별 특약을 세분화해 선택의 폭을 넓힌 점이 특징이다. 월 최저 보험료 1만원대 이하인 ‘실속형’ 플랜은 수술 당일 의료비만 보장하고, ‘고급형’ 플랜은 반려견 의료비, 배상책임 등 보장이 다양하다. 반려견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동물등록증을 등록하면 월 보험료 5%를 할인해준다.

KB손해보험과 현대해상은 지난 4월 각각 상품 개정을 통해 펫보험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KB손해보험은 ‘KB금쪽같은 펫보험’을 개정해 주요 3대 질환(종양, 심장, 신장 질환)에 대해 기존 대비 보장한도액을 2배로 늘리고, 수술 1일당 치료비와 연간 치료비 보장한도도 높였다. 반려인이 상해나 질병으로 입원할 경우 반려동물 위탁시설 이용 비용을 최대 180일까지 실손 보장하는 ‘반려동물 위탁비용’을 신설하기도 했다. 현대해상은 ‘굿앤굿우리펫보험’의 대상을 반려묘까지 확대하고, ‘특정처치(이물제거)’와 ‘특정약물치료’를 업계 최초로 보장하기 시작했다.

펫보험을 위해 캠페인을 벌이거나 반려동물 서비스와 업무협약을 맺는 손보사도 늘어나고 있다. DB손해보험은 지난 4월 반려동물 콘텐츠 기반 플랫폼 비마이펫, 펫 미용 예약 중계 및 고객관리 서비스 반짝, 한국반려동물관리협회와 연이어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펫보험을 개발하고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메리츠화재도 같은 달 한국동물병원협회, 서울시수의사회와 연이어 업무협약을 맺으며 “펫보험이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을 해 동물병원 문턱을 낮출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메리츠화재는 반려동물 실손보험 일상화를 통해 모든 반려동물이 의료비 걱정 없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견생묘생 20년’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손보사들이 펫보험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는 건 성장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31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펫보험을 운용하는 10개 보험사(메리츠, 한화, 롯데, 삼성, 현대, KB, DB, 농협, ACE, 캐롯)가 보유한 펫보험 계약 건수는 총 10만9088건으로 전년(7만1896건)보다 51.7% 늘었다. 다만 2022년 기준 반려동물 개체수가 약 799만 마리인 점을 감안하면 펫보험 가입률은 1.4%에 불과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3년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가구수(602만 가구)가 국내 전체 가구 중 25.4%를 차지하고, 반려동물 없는 가구의 78.7%가 향후 반려동물 양육 의향이 있다고 밝혀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보험업계에선 펫보험 활성화를 위한 선결 과제로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질병명·진료행위 명칭과 코드를 표준화하는 것과 함께 동물병원의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동물병원마다 질병 명칭과 진료 항목이 달라 병원별로 진료비 차이가 크고, 정보가 불충분해 보험상품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통계의 확보하기 위해 표준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행법상 수의사는 진료 후 진료부를 발급할 의무가 없어, 일부 고객들이 진료기록부 대신 카드 영수증을 보험사로 전송하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또 보험사에서 반려동물을 구분하기 위해 반려동물 등록제의 정착도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펫보험 관련 제도 개선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반려동물 진료 표준화 분류체계 마련’, ‘동물 관련 보험가입 및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진료부 발급 의무화’ 등 7개 수의사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었으나 지난 29일 국회 활동 종료로 모두 폐기됐다. 지난 30일 서울 도렴동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이복현 금감원장과 12개 주요 보험회사 CEO와의 간담회에서도 CEO들이 새 보험회계 기준(IFRS17) 안정화와 함께 펫보험 시장 활성화 등 제도적 지원을 요청한 이유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31일 “펫보험 제도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아직 진행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라며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고, 저출생 시대에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만큼 펫보험이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겠지만, 보험사들이 생각하는 속도보다 느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 입장에선 진료기록부 제출 의무화나 진료 항목 표준화 등 환경 변화를 크게 원하지 않을 것이고, 금융당국 뿐 아니라 농림수산식품부에서도 참여하는 것들이 있다”라며 “제도 개선이 계속 진행되긴 하지만,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수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달 22일 발표한 ‘반려동물보험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 보고서에서 진료비 사전공시제 활성화와 진료체계 표준화, 양질의 의료데이터 구축 등을 펫보험 활성화 선결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농식품부, 금융위원회, 수의업계, 보험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협의 없이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례 협의체와 이를 지원할 조직을 별도 구성할 필요가 있다”라며 “대통령 정책공약에 제시된 ‘동물복지공단’을 조속히 설립해 동물보호와 동물권 실현을 위한 제반 업무와 연구, 데이터 관리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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