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반도체 혈관' 설계 기술 보유, 창업 7년차 韓기업

이희권 2024. 6.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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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TSMC 본사. 블룸버그

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대만 TSMC의 힘은 반도체 설계자산(IP)에서 나온다. 반도체 IP는 복잡한 칩의 특정 부분을 미리 회로로 구현해 놓은 일종의 개념 블록이다. 레고 장난감을 만들 때 기본 블록이 필요하듯, 복잡한 반도체를 설계할 때 곳곳에 쓰이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구성 요소다.


TSMC 힘의 원천...독보적인 IP


김경진 기자
엔비디아·퀄컴 등 세계적 반도체 설계기업이 TSMC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TSMC에 등록된 IP는 6만 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의 10배 수준이다. 더 많은 설계 기본 블록을 지원하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칩을 더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IP를 만드는 곳도 따로 있다. 가장 유명한 회사가 영국 ARM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거의 모든 저전력 CPU(중앙처리장치)가 ARM의 IP를 기초로 만들어진다. 반도체 설계에 특정 IP를 활용해 칩을 생산하면 설계회사로부터 IP회사가 로열티를 받아 수익을 내는 사업구조다. 설계상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상품이기에 물리적인 재고 관리도 필요 없다. 공장도 자원도 필요없는, 철저한 ‘두뇌 싸움’인 셈이다. 기술 장벽이 높아 ARM 등 소수 기업의 과점 시장으로 꼽힌다.


메모리·NPU IP 가진 세계 유일 회사


이성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대표. 사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오픈엣지테크놀로지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반도체 IP 회사다. 반도체 칩 설계에 필요한 IP를 만들어 전 세계 반도체 회사에 공급한다. 지금도 직원의 90%가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주력 설계영역은 메모리 반도체와 NPU(신경망처리장치) IP. 두 영역에 걸친 IP를 모두 보유한, 세계 유일의 회사다. 이 회사 이성현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두뇌(NPU)가 일하려면 영양분(데이터)을 공급해줘야 한다”면서 “비유하자면 우리는 심장(메모리 반도체)과 두뇌를 이어주는 혈관을 만드는 회사”라고 말했다.

NPU는 인공지능(AI)의 성능을 좌우하는 칩이다. 작동 원리가 사람의 뇌 신경망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신경세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듯 신호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데이터를 처리한다. 무엇보다 최근 AI 학습에 많이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전력 소모가 적고 효율적이어서 스마트폰과 PC에 탑재되어 기기에서 AI를 구현하는 데 쓰인다.


NPU가 뜬다


신재민 기자
오픈엣지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반도체 설계 연구개발을 하던 이 대표와 동료들이 독립해 2017년 창업했다. 서버를 거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구동되는 엣지용 반도체 설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회사 이름을 ‘오픈엣지’로 정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챗GPT의 등장으로 AI 혁명이 시작되면서 인터넷 연결 없이도 개별 기기에서 AI를 구동할 수 있는 온디바이스 AI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 지난 1월 삼성전자가 선보인 갤럭시S24 시리즈가 대표적인 ‘온디바이스 AI폰’이다. 올해 삼성은 물론, 애플·퀄컴·인텔 등이 모두 NPU를 탑재한 제품을 내놓는다. 이 대표는 “생성 AI는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소비전력과 비용 문제가 크다”면서 “개인이 소유한 컴퓨팅 파워를 나눠서 쓰는 온디바이스 AI 기술이 본격적인 대안으로 주목받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AI 반도체 시장이 활짝 열리면서 NPU와 같은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사이 병목현상이 문제로 떠올랐다. 제아무리 ‘두뇌’가 빨라도 메모리가 제때 데이터를 공급해주지 못하면 성능이 제자리걸음이기 때문. 둘 사이를 이어주는 IP 블록 만들기에 전문인 오픈엣지에 거대 시장이 열린 것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차량용 자율주행 반도체 시장도 정조준한다. NPU는 성능과 속도가 동시에 요구되는 완전 자율주행 구현을 위해 이상적인 칩으로 꼽힌다. 관련 IP를 응용할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이와 관련해 오픈엣지는 지난 4월 새 NPU IP인 ‘인라이트 프로’를 출시했다. 기존 제품 대비 칩 성능이 4배 이상 개선됐다. 차량용 자율주행은 물론 카메라·모바일 칩에 적용할 수 있는 IP다. 이 대표는 “이미 고객사에 IP가 전달됐다”면서 “올해 말 테이프아웃(칩 설계를 마치고 생산 공정으로 넘어가는 단계)될 예정”이라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 용량과 대역폭을 고객의 용도에 맞게 만드는 맞춤형 메모리 시대가 시작되면서 관련 IP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라면서 “아직 우리 반도체 산업이 대부분 제조 공정에 집중되어 있지만 IP 개발이 전체 생태계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만큼 세계적인 IP 업체인 ARM·시놉시스·케이던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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