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보살핌이 필요한 세상
일반적으로 동물의 세계는 가장 힘이 센 개체가 우두머리가 되고 무리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힘’이 서열화의 기준이며 ‘우두머리’의 상징적 조건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동물행동학자인 프란스 드 발 박사는 우두머리의 조건은 ‘힘’만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무리를 잘 보살피고 무리 안에서 싸움을 중재하며 고통받는 동료를 위로할 줄 아는 개체가 오히려 우두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즉, ‘보살핌’의 능력을 갖춘 개체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의 논리’만으로 지속될 수 없으며 공동체를 이끌어갈 수도 없습니다. 힘 대 힘이 부딪히는 곳에는 오히려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며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의 흔적만 남습니다.
예전에 ‘사랑이 뭐길래’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가부장적 권위를 소유한 ‘대발이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는 엄격함과 모진 성격의 극한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닌 사람입니다. 어느날 딸이 원하는 모델을 하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러자 대발이 아버지는 심하게 화를 내며 반대합니다. 힘으로 딸의 꿈을 막으려 합니다. 이때 순종적이던 아내와 다른 가족들이 아버지를 반대합니다. 대발이 아버지는 이전처럼 가부장적 권위와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오히려 가족간에 갈등과 상처만 남습니다. 가족 공동체에서도 힘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공동체에는 무엇보다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서로 보호하며 돕는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공동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동체 안에는 공동체 질서를 지키기 위한 힘이 존재합니다. 정의와 공평을 추구하기 위해서 규칙이라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힘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 힘의 역작용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힘’만 점점 강조되고 ‘보살핌’은 조금씩 사라져갑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공동체에 ‘보살핌’을 강조하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보살핌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신명기 24장에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일어나는 상황에 관한 규례가 나옵니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 함부로 담보물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는 약자인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채권자가 주인 행세를 하며 채무자의 집에 침입하는 것은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모독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채무자의 집은 사적 영역이고 집 밖은 공적 영역이기에 함부로 사적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상대방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채권자는 채무자가 물건을 밖으로 들고나와 건네주도록 배려해야 했습니다. 이는 채무자의 ‘인간 존엄성’과 ‘사생활’을 지켜주는 인격적 배려였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인격적 배려였습니다.
채권자로서 자신의 재물을 돌려받을 권리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부채 추심을 위해서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해 사적 영역인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공적 영역인 집 밖에서 기다려주는 인간미가 보이는 배려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작은 것이지만 이러한 인격적 배려를 통해 서로 ‘보살핌’을 실천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인격적인 배려에서 나오는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향한 보살핌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에 열매를 많이 맺으며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승구 목사(영은교회)
◇이승구 영은교회 목사는 연세대학교(신학과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신학과 석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신학과, 교역학 석사)을 졸업했습니다. 평택동산교회 교육전도사와 새문안교회 전도사 및 교육목사, ‘더 처치교회 개척’ 담임목사, 새문안교회 부목사를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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