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바보야, 문제는 ‘지역경제’야
최대 5배… 대기업 유치 등
구태의연한 대응으론 안돼
제주도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 배모(46)씨는 요즘 ‘죽을 맛’이라고 한다. 손님이 곧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상 손님 발길이 잦아드는 최근 상황은 생계를 위협하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배씨는 “어떻게든 꾸려나가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영업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관광객이란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제주도에서조차 자영업이 힘들다는데, 내륙 소도시는 오죽할까 싶다. 도시가 조성된 지 12년 차를 맞은 세종시가 대표적이다. 곳곳을 돌아다녀보면 특정 지역을 빼고는 ‘유령도시’로 오인할 법한 곳이 적지 않다. 상가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채 폐가마냥 빈 공간을 드러내고 있다. 2일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 정보에 따르면 세종시의 상가 공실률은 올 1분기 기준 24.8%에 달한다. 4곳 중 1곳은 사람으로 치자면 ‘실업자’ 신세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1.3%를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에 온기가 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민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기지개를 켤 만한 형편이 안 되는 것 같다. 혹자는 지금이 코로나19 때보다 더 최악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반도체 경기 회복에 따른 수출 증대 등 호재가 있다지만 현장에선 소위 ‘낙수 효과’를 말하는 이를 찾을 수 없다. 돈은 벌고 있는데 어딘가 구멍으로 돈이 슬슬 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수준이다.
사실 이는 한국이 지닌 구조적 비대칭을 고려하면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 5명 중 1명은 자영업자라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임에도 내수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의 가계부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수도권 자영업자들과 달리 지역은 한파에 시달린다.
상가 공실률 추이를 보면 이 격차를 엿볼 수 있다. 지난 1분기 서울시와 경기도의 상가 공실률은 각각 5.4%, 4.4%에 그쳤다. 분당역세권의 경우 1.6%로 사실상 ‘완전 임대’에 가깝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정반대 상황이다. 서울시, 경기도, 제주도 세 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공실률이 적게는 14.8%에서 많게는 26.4%에 달한다.
높은 상가 공실률은 그만큼 지역 주민들의 소비 여력이 떨어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시의 1인당 민간소비는 244만5500원을 기록했다. 반면 공실률이 높은 나머지 지역의 1인당 소비 여력은 170만~180만원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의 경제 위기는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는 다양한 악순환을 부른다. 돈벌이가 시원찮으니 청년세대가 해당 지역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지역사회에서 청년세대가 감소할수록 아이 울음소리는 듣기 힘들어진다. 이는 지방 소멸을 부르는 요인이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국가 소멸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지방정부는 이 문제 해법으로 ‘대기업 유치’를 부르짖는다. 그러면서 정부의 재정·제도적 지원을 외친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비슷한 얘기를 되풀이한다. 벌써 수십년째 이 얘기를 하지만 사실 그다지 바뀐 것은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한국의 지역고용 전략’ 보고서는 그런 측면에서 접근법이 신선하다. 보고서는 한국처럼 자영업자 비중이 20% 정도인 이탈리아 사례를 돌파구로 제시하고 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산업지구가 어떻게 자영업자 그리고 중소기업을 전문화해 대기업 유치 없이도 지역 고용을 발전시켰는지에 주목했다.
유사한 구조상 한국이라고 못 할 바 없어 보이는 방향성이다. 다만 이 사례처럼 혁신하려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의존해 온 관성을 떨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는 변화는 없다. ‘할 수 있느냐’가 아닌 ‘해야 한다’의 문제란 점을 지자체는 잊지 말기 바란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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