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김경수 정치 재개의 조건
노무현 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이 열린 지난달 23일 전후로 더불어민주당 내 친문재인계가 결집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22대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이재명 일극체제’가 되면서 제대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던 차에 맞은 큰 행사였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 중심에 ‘친문 적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있었다.
지난해 8월 영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출국했던 그는 추도식 참석을 위해 지난달 일시 귀국했다. 평산책방을 방문해 문 전 대통령을 만나고 친문계 인사들과 접촉했다. 귀국하면서 향후 행보에 대해 “지금 상황에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기보단 오히려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워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더니 문 전 대통령을 방문하고 나서는 “(해외에) 좀 더 머물며 공부한 후 연말에 완전히 귀국할 계획이다. 너무 오래 나가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일정을 구체화했다.
이런 와중에 그의 복권 얘기가 나왔다. 김 전 지사 측은 그가 억울하게 수사와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적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는 이유를 댄다. 정치 역학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의 분열을 노려 복권해줄 것이란 예상도 많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서 나와 새로운미래로 출마한 이낙연 전 총리가 참패하면서 이재명 대표와 겨룰 수 있는 지명도 있는 친문계 인사가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 전 지사는 문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17년 대선을 전후해 인터넷 댓글 조작을 공모한 혐의(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로 수사받고 이듬해 8월 기소됐다.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돼 수감 생활을 했다. 2022년 12월 사면받고 출소했지만 복권되지 않아 2027년 12월 28일까지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과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형 집행이 면제된 날로부터 5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큰 변수가 없다면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이 그 이전에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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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15주기 계기 복권 거론
야권 내 이재명 대항마로 부각
댓글 조작 반성ㆍ사과가 우선
」
문 전 대통령 측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김 전 지사가 향후 선거에서 모종의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는 듯하다. 더군다나 민주당이 “한 사람을 거의 황제로 모시는 당”(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돼 가고 있는 현 상황은 그의 정치복귀에 대한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은 당헌ㆍ당규 개정을 통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과 2026년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 그리고 이를 통한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한 레드카펫을 깔려고 한다.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같은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즉시 정지하도록 한 당헌 80조를 아예 삭제할 모양이다. 2015년 문재인 당시 당(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추진한 대표적 혁신 조항이다. 2022년 8월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서 예외적으로 당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만들어 현재의 이 대표가 존재하는데, 앞으로는 아예 논란조차 없게 해 주겠다는 심산이다. 김 전 지사가 복권돼 정치 행보를 재개한다면 지금과 같은 민주당의 퇴행적 운영에 동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를 지켜본 정치권 인사들의 공통된 예상이다.
이런 기대를 받는 김 전 지사가 복권돼 정치권에 다시 합류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법적으로 최종 유죄 판결받았던 과거 일에 대한 반성과 사과다. 그는 수사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떳떳한 모습이다. 2021년 7월 수감되면서 “사법부에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2022년 사면 논의 때는 자신의 뉘우칠 일이 없다며 형기를 채우겠다고 했다. 김 전 지사의 이런 모습은 자신의 반성이 2017년 대선 결과의 정당성을 훼손, 문 전 대통령에게까지 책임이 떠넘겨지는 걸 의식해서라는 해석이 있다.
김 전 지사는 조만간 다시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동안 해 온 유럽 국가들의 사회통합 관련 공부를 더 진행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정치권에서의 타협과 사회적 통합을 이룰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한다. 바라건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잠재적 독재자의 판별 기준 1번을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으로 제시한 스티븐 레비츠키ㆍ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의 의견도 새겨봤으면 한다. 이들은 헌법을 부정하거나 위반할 의사를 드러낸 일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봤다. 사법적 판단을 무시한 채 사회적 통합과 타협을 운운하는 건 동물적 정치 감각과 팬덤에만 의지하려는 또 다른 정치인 한 명의 모습일 뿐이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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