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타자의 자기화

2024. 6. 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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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21세기 글로벌 사회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점점 단일 민족 국가로서의 사고방식을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부 코스엔 동아시아 계열 학생들이 20∼30%, 남아시아와 중동 계열 학생들이 10∼20%를 차지한다. 남미·유럽 등 다른 곳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 배경과 민족성을 지닌 학생들을 상대로 고대 그리스·로마 예술에 내재하는 ‘타자(Other)’라는 배타적 철학 개념을 가르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개념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아메리카 편지

고대 그리스인들의 민족적인 자부심과 외국인에 대한 국수적인 태도는 악명 높다. ‘야만적’이라는 뜻을 지난 영어 단어(barbaric)가 ‘외국인’을 지칭하는 그리스어(barbaros)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그런데 BC 4세기 말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후 다양한 문화의 융화가 이루어진 헬레니즘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타자’라는 개념이 이방인이라는 좁은 의미를 떠나 ‘다른 사람’이라는 보편적 함의를 지니게 된다. 예술의 특성도 독특하게 변했다. 젊고 아름다운 남성·여성상 이외에도 쭈글쭈글한 늙은이의 모습을 한 낚시꾼, 탱탱한 아기의 모습을 한 에로스상, 꼬부랑 기생 할머니, 그리고 얻어터져 피범벅이 된 한물간 권투 선수 등 유명하고 독특한 동상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타자’라는 개념이 이방인에게 적용된 사례 중 하나로 아탈로스 1세가 페르가몬에 세운 전승 기념물을 꼽을 수 있다.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의 개념이 여기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아름답고 드라마가 넘치게 표현한 이 조각품들은 승자를 일부러 생략함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승자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중 아내를 죽이고 자살을 하는 갈리아 전사(사진)는 노예가 되기보다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는 극단적인 용맹함을 표현했다. 다양한 타자개념이 자기화한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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