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참으로 애매한 한중 관계
한동안 “한·미는 동맹, 한·중은 동반자”란 말이 유행했다. 한데 최근 상황을 보면 동맹은 굳건한데 동반자란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얼마 전 한·일·중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 간 회담을 봐도 그렇다. 리창이 한 차례 동반자를 언급했을 뿐 윤 대통령 발언에선 그 표현을 찾기 어렵다. 한·중 관계의 상징과도 같았던 동반자 단어가 이젠 역사의 유물로 사라진 걸까?
동반자는 중국어로 한솥밥을 먹는 식구 훠반(伙伴)을 가리킨다. 이 동반자가 중국 외교에 본격 활용되기 시작한 건 냉전이 해체된 이후다. 중국은 1996년 새로운 안보관을 채택했는데 그 핵심은 동맹을 냉전 시기의 낡은 개념이라 치부하고 대신 세계 각국과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중국에 따르면 동반자 관계엔 크게 세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국제무대에서 국가 간 갈등을 덮어두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와 관련 잘 알려진 성어가 구동존이(求同存異)다. 두 번째는 상대방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가상의 적을 설정하는 동맹과 큰 차이가 있다. 동맹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데 반해 동반자는 선언에 가깝다. 중국은 이에 따라 한·중 관계를 발전시켜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방중 때 양국은 처음으로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이후 우리 대통령이 새로 취임할 때마다 격이 높아져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는 전면적협력동반자 관계가 됐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시엔 전략적협력동반자 관계로 올라섰다. 전략적이란 말에는 세 가지 함의가 있다. 양자뿐 아니라 지역 문제도, 경제뿐 아니라 안보도, 단기뿐 아니라 장기 문제도 논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중국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태도에 우리 측에선 “이게 동반자 관계냐”라는 불만이 터졌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 때는 격을 높이는 대신 내실화에 힘쓰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당시 한·중은 ‘성숙한 전략적협력동반자 관계’에 합의하는 데 그쳤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 때는 동반자 관계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는 상호존중과 호혜, 공동이익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중국은 이런 한국의 언사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동반자 관계를 버린 건 아니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참으로 애매하다. 이게 바로 한·중 관계의 현주소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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