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세계 교회 역사]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안녕하세요. 더미션입니다.
저는 지난주부터 아프리카 한 국가에 출장을 와 있습니다.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 경기도 파주 순복음삼마교회 박영숙 목사님, 성도님들과 함께 국제 NGO가 어떻게 현장에서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것은 NGO가 가진 전문성과 시스템이야말로 어려운 현지인을 효과적으로 살리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혹 후원비 전체가 쓰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인의 직접 후원이나 직접 선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니 그런 직접 후원이 얼마나 깨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는지 절감했습니다.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전문 단체야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다가가며 지속해서 도울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요즘 한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지요. 한류 덕분에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한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 대륙입니다. 이 대륙은 아직 한류를 알지 못합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여전히 가난하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의 대학생들은 아직도 책과 종이가 없어서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컴퓨터 없는 학교도 너무 많습니다. 챗GPT 시대에 이들은 아직 3차 산업혁명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예와 제국주의의 압제, 식민주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주눅이 들었고 자존감이 낮습니다.
아프리카는 중국 자본이 들어와 도로를 건설합니다. 그러면 그 도로 위를 일본 차가 다닙니다. 그만큼 중국과 일본이 강세입니다. 그러면 이 아프리카에서 한국은 무엇이 강할까요. 가만 살펴보니 한국은 주는 것을 잘합니다. 질병과 가난, 교육의 무혜택 등에서 벗어나게 해줄 그리스도의 마음, 복음을 주는 일이야말로 한국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현지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비즈니스로 아프리카에서 무엇을 가져간다면, 한국인들은 무엇이든 주려고 한다는 현지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가난하고 아프고 배우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마침 4일부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시작되는군요.
여전히 이 세상에는 도와줄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얼마든지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유튜브 카톡 핸드폰 SNS TV 보기를 줄이고 타인을 향해 눈을 돌린다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한 주가 되면 어떨까 합니다.
1873년 6월 4일 미국 아이오와주 무스카틴에서 사도적 신앙 운동의 창시자이자 현대 오순절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찰스 F. 파햄이 태어납니다. 1900년 베델성경학교를 설립, 방언을 말하는 오순절 운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파햄 목사는 윌리암 시모어와 함께 미국 오순절주의 발전과 확산에 있어 기여했습니다. 파햄은 오순절 운동의 독특한 요소인 성령세례와 방언을 연관시킨 사람이었습니다. 파햄은 오순절주의의 방언 교리를 설명하고 운동을 확장한 최초의 설교자였습니다.
온몸에 쇠사슬이 묶여 있던 그는 공의회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전능하실 뿐 아니라 완전히 공의로우시며 유일한 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항소하리라. 나는 그의 손에 처분을 맡긴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 증인들이나 오류에 가득한 회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리와 공의 위에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얀 후스는 1371년 지금의 체코 지역인 보헤미아 남부 후시네츠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프라하대에 입학합니다. 그 무렵 프라하에 널리 퍼진 존 위클리프의 개혁 사상을 접했고 1398~1399년 프라하대에서 강의, 1403년엔 프라하대 학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 성당의 강단에서 설교자로서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특히 서방교회의 대분열로 교황이 3명이 되면서 그는 자격 없는 교황에게는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성경이야말로 교황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을 심판할 수 있는 궁극적 권위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성경에 순종하지 않는 교황에게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면죄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찬에서도 떡뿐 아니라 포도주도 평신도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이종성찬’을 주장했습니다.
얀 후스는 당시 공의회에서 “지금 당신들은 한 마리 거위를 죽이지만 100년 후에는 굽지도 삶지도 못할 백조가 등장할 것”이라며 마르틴 루터의 출현을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YMCA는 구한말 개화파 청년들과 미국 선교사들이 주축이 돼 1903년 10월 28일 설립한 ‘황성 기독교 청년회’가 모태입니다. 초창기부터 YMCA의 멤버들은 근대적 사회개혁 의식에 고취로 직업교육, 농촌운동, 기독교 민권운동에 정열을 쏟았습니다. 이후 이상재(2대 회장) 윤치호(4대 회장) 김규식 홍재기 등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이미 해체된 독립협회의 정신을 계승하는 기틀을 세웠습니다.
YMCA는 체육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여 1905년 야구를 처음으로 보급했습니다. 이어 농구(1907년) 스케이트(1908년) 등을 한국 땅에 도입했다. 1919년 2·8 독립선언과 3·1운동을 선도했고 1922년부터 물산장려운동과 농촌강습소개소운동 등으로 자립 경제 운동을 펼치고 YWCA 및 보이스카우트, 신간회 등의 단체도 지원, 창설했습니다.
1903년 6월 6일 인도 교회 운동의 선구자이자 가장 유명한 성경 교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도 전도자 바흐트 싱 형제가 인도 펀잡에서 태어났습니다.
1834년 6월 9일 ‘현대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캐리가 41년 동안 인도에서 쉬지 않고 선교 활동을 하다 별세합니다. 그의 선교 기간 개종자 수는 700여명에 불과했지만 성경 번역, 교육, 사회 개혁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특히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외침으로 19세기 선교 운동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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