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지옥 옆은 낙원?
“괴물은 존재하지만 그 수가 적다. 더 위험한 건 질문 없이 (시키는 대로) 믿고 행동할 준비가 돼있는 평범한 사람, 공무원이다.”
유대계 이탈리아인 화학자 프리모 레비(1919~1987)는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의 10개월을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1958)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5일 개봉)는 이런 ‘악의 평범성’을 소름끼치게 그려낸 작품이다. 라디오헤드·자미로콰이 등의 뮤직비디오, 광고, 영화를 넘나든 유대계 영국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59)가 ‘언더 더 스킨’(2014)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영화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올초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음향상 등을 휩쓸었다.
다섯 자녀를 둔 젊은 가장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는 폴란드의 천상의 화원 같은 아름다운 사택에서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를 여왕처럼 받들며 가족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복무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회스가의 담장 너머는 당시 400만 유대인을 집단 학살한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이고, 루돌프는 바로 이 악명 높은 수용소의 소장인 독일 나치 장교다. 나치는 아우슈비츠를 둘러싼 40㎢ 지역을 ‘존 오브 인터레스트’(관심 지역)로 불렀다.
영국 작가 마틴 에이스미스의 2014년 동명 소설에서 착안한 영화는 더 효율적인 유대인 ‘소각 시스템’을 고민했던 루돌프를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워커홀릭(일 중독자)으로,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리는 헤트비히를 결혼생활에 성공한 노동자 계급의 딸로 묘사했다. 가해자를 악마화한 여느 홀로코스트 작품들과 반대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잘 살려고 애쓰는 한 가족의 초상을 그렸다. ‘우리와 다른 인간들’로 손쉽게 선 그어온 역사 속 악당들이 우리와 닮은 인간이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단란한 가족의 평온한 일상은 구역질 치미는 공포 장면이 된다.
‘쉰들러 리스트’(1993) 이후 유일하게 아우슈비츠 현지 촬영을 허가받았고, 독일 명배우 크리스티안 프리델, 산드라 휠러가 처음으로 나치 역할을 수락했다.
방대한 양의 역사 자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이 보유한 생존자 증언을 “고고학자가 유물 발굴하듯” 재구성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글레이저 감독은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 런던 북부 교외 지역인 하들리우드의 유대인 예술가 공동체에서 자랐다”고 밝히며 “이 영화 연출을 결심한 이후 10년 간 깊은 분노를 좇아왔다”고 말했다.
밤새 쉬지 않는 소각장의 붉은 열기와 함께 화면 밖에서 침투하는 사운드도 인상 깊다. 영화 ‘가여운 것들’ ‘놉’ 등을 작업한 사운드 디자이너 조니 번이 아우슈비츠 상황에 대한 600쪽 분량의 연구를 토대로 2022년 파리 폭동의 비명·고함, 기차·총소리 등 1년간 전 세계에서 수집한 고통의 사운드를 활용해 빚어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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