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까지 연주해주세요” IQ 162 천재 손짓 시작됐다

김호정 2024. 6. 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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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리허설 중인 지휘자 이승원. 소리에 대한 예민한 감각, 음악에 대한 확신이 있는 지휘자다. 김종호 기자

“비올라와 첼로 선생님들, 19번째 마디 알레그로부터 해보겠습니다. 크레셴도와 디크레셴도를 조금 더 표현해주시겠어요?”

지휘자 이승원(34)의 말은 깍듯했다. 지난달 29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연습했던 현장이다. 그는 공연을 이틀 앞둔 리허설에서 단원들에게 존칭을 붙이며 음악에 대한 해석을 전달했다.

또한 정확한 지휘자였다.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과 한 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본 뒤 이승원은 악보의 마딧수와 특정 악기를 정확하게 지목한 후 요구 사항을 깔끔하게 전했다. “227 마디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선생님들이 호른보다 빨리 나오고 계시는데요, 조금 늦춰주시면 좋겠습니다” 식의 예의 바르고 간결한 지시가 리허설 내내 이어졌다. “여기에서 소리는 꽃잎이 피어나듯 부풀려주세요” “쉼표까지 연주해주세요” 등 상상력의 표현도 눈에 띄었다.

‘2024 니콜라이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뉴스1]

이승원은 지난 4월 덴마크의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한국인 최초 우승인데, 보다 큰 가치는 그 후 이어지는 연주 기회에 있다. 말코 콩쿠르는 우승자에게 연주 무대를 여러 번 마련해주는 특전으로 인해 좋은 대회로 꼽힌다. 이승원은 이번 우승으로 총 24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노르웨이·스웨덴·미국의 유수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에 선다. 이승원은 “내년 시작해 앞으로 5~6년 동안 오케스트라를 원 없이 지휘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뿐 아니다. 콩쿠르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본 명문 에이전시들이 계약을 제의한다 했다. “준결승 이후 2개, 결승 이후 5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모두 화려한 아티스트들이 소속돼 있는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이며 그 중 한 곳과 계약을 앞두고 있다.

이승원의 지난달 리허설은 그가 주목받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소리에 대한 예민한 감각, 음악에 대한 확신이 있는 생각이 있는 지휘자였다. 여기에 단원들과 소통하는 능력, 겸손함, 또 간결하게 자기 생각을 전하는 힘을 갖췄다.

이승원은 비올리스트로 출발했다. 2007년 결성된 노부스 현악4중주단의 비올라 멤버였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꿈꿨던 오랜 희망은 지휘자였다. “카라얀·아바도 지휘를 듣고 보면서 컸다. 베를린 유학 시절부터 늘 오케스트라 공연과 리허설을 찾아다녔다.” 그는 25세에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 지휘과에 다시 입학했다. 비올라로 학사, 석사,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 학교였다. 지휘에 전념하기 위해 2017년 노부스 콰르텟에서 탈퇴했다.

“탈퇴할 때는 노부스 콰르텟 연주가 한 해 60번, 지휘는 3번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별로 이뤄 놓은 것이 없는 지휘의 길을 시작했다. “이런 비교를 해봤다. 콰르텟을 그만두고 지휘를 선택했다가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또는 지휘자가 되고 싶지만 참으면서 4중주단에 남아 계속 아쉬워할 수도 있었다. 두 경우를 생각해봤을 때 큰 고민 없이 전자를 선택했다.”

이후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지휘를 했고, 루마니아·대만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22년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임용, 1년 만에 수석 부지휘자가 됐다. 4월 말코 콩쿠르 우승은 경력의 화려한 정점 중 하나다. 지휘 공부를 본격 시작하고 꼭 10년만의 일이다.

말코 콩쿠르는 그의 우승을 발표하며 “이미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음악가”라 소개했다. 비올라 연주자이고, 좋은 현악4중주단의 멤버였으며, 독일 라이프치히 음대의 비올라 교수였던 경력도 있다. 지휘자 이승원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퍼즐은 명석함이다. 그가 2016년 예능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 출연했을 때, ‘아이큐 162’ ‘수학 올림피아드 다수 입상’ ‘절대음감 소유’ 등의 키워드로 소개됐다. 이승원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방식에는 그의 이러한 특성이 함께 들어있다.

올여름에는 한국 청중과 만날 기회가 많다. 이달 20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다음 달 5일 서울시립교향악단, 11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대전시립교향악단(7월 19일), 평창 대관령음악제(8월 3일)를 거쳐 국립오페라단의 작품을 지휘하며 오페라 지휘자로 데뷔한다. “어려서부터 지휘자의 모습을 보면 무척 설렜다. 그렇게 되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 왔다”는 그가 빠르게 도약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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