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 카드' 겁났나…北, 5시간 만에 "오물 풍선 잠정 중단"
지난달 28일부터 2일에 걸쳐 약 1000개의 ‘오물 풍선’을 날려보낸 북한이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대응책으로 대북 확성기 재개 방침을 밝힌지 약 5시간 만에 태도를 바꾼 셈이다.
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강일 국방성 부상은 담화에서 “휴지장을 살포하는 행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강일은 “지난 5월 28일 밤부터 6월 2일 새벽까지 우리는 인간쓰레기들이 만지작질하기 좋아하는 휴지 쓰레기 15t을 각종 기구 3500여개로 한국 국경 부근과 수도권 지역에 살포했다”며 “한국 것들에게 널려진 휴지장들을 주어 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김강일은 지난달 26일 직접 오물 풍선 살포를 예고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강일은 “우리의 행동이 철저히 대응 조치이기 때문”이라고 오물 풍선 살포를 중단한 이유를 댔지만, 실제로는 한국 정부의 대북 확성기 재개 움직임이 북한의 이번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실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처음 오물 풍선을 부양한 직후인 지난달 29일에는 담화를 내고 “우리 인민의 표현의 자유”라며 “한국 것들은 우리 인민이 살포하는 오물짝들을 자유민주주의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로 정히 여기고 계속계속 주어담아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후 5시 20분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임위원회를 열고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착수하기로 했다”며 “(오물 풍선 살포가) 반복될 경우 우리의 대응 강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대해 “대북 확성기 재개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방송 재개를 예고했다.
군 안팎에선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이 다시 한 번 위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많다. 대북 확성기는 북한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전 수단으로 꼽힌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체제 단속과 사상 통제에 열을 올리는 점을 고려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당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사건 때도 한국이 2004년 이후 11년 만에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먼저 협상을 제안하며 방송 중단을 요청할 정도였다. 외부 정보에 민감한 김정은 정권이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을 이번에도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하지만 오물 풍선 사태가 완전히 매듭지어질지는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민 단체가 이날 대북 전단으로 오물 풍선에 맞대응한다고 예고한 가운데 북한은 이에 대한 보복조치를 또 공언했기 때문이다. 김강일은 담화에서 “한국 것들이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경고한 대로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사태의 책임을 다시 한국에 넘기려는 전술로, 긴장 격화를 원치 않는다면 전단을 날리지 못하도록 단체를 설득하라고 또다시 한국 정부를 압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확성기 재개 방침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풍선으로 인한 재물 손괴 등 실제 국민 피해가 이미 발생한 만큼 북한이 태도를 바꿨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응 방안을 되돌리는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언제든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는 태세는 완비해 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멈출 경우 확성기 방송을 다시 틀지는 않더라도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는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이를 위해 필수적인 남북 간 합의의 효력 정지 등 법률적·행정적 절차 검토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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