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모델링 vs 빌트인…B2C 진검승부 [맞수맞짱]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6. 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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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구업계 | 한샘 vs 현대리바트

국내 가구업계에서는 오랜 기간 지켜져온 불문율이 있었다. 한샘이 움켜쥔 선두 자리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룰이다. 현대리바트, 신세계까사 등 쟁쟁한 가구업체들이 공격적으로 덩치를 키웠지만 한샘 아성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랬던 가구업계에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사모펀드 IMM PE가 새 주인을 맡은 이후 한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수익성 확보에 치중하다 보니 매출 증가세가 꺾여 결국 가구업계 1위 자리를 현대리바트에 내줬다. 현대리바트는 이참에 가구업계 선두 자리를 굳히겠다는 포부다. 자존심이 상한 한샘 역시 매출, 수익성을 동시에 키우겠다는 전략이라 가구업계 선두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1분기 매출 역전

현대리바트 5048억원, 한샘 4859억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리바트의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5048억원을 기록해 한샘(4859억원)을 앞질렀다.

한샘은 그동안 가구업계 1위를 단 한 번도 내준 적이 없었다. 가구업계에서 “이변이 나타났다”며 놀라는 배경이다. 지난해 1분기 한샘 매출(4693억원)이 현대리바트(3702억원)를 1000억원가량 앞섰는데 1년 만에 순위가 역전됐다. 현대리바트가 분기 매출 기준 가구업계 1위를 기록한 것은 1977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한샘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130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 이후 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해 수익성 회복에는 성공했지만, 현대리바트에 매출 1위 자리를 뺏기면서 자존심을 구기게 됐다.

현대리바트가 한샘 매출을 앞지른 비결은 뭘까.

올 들어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빌트인 가구 매출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 1분기 실적을 보면 빌트인, 오피스 등에 가구를 공급하는 B2B가구 부문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B2B가구 부문 매출은 18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4.5% 증가했다. 이 중 빌트인 가구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4.4% 늘어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빌트인 가구는 싱크대, 붙박이장처럼 신축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입주할 때부터 들어가는 가구다.

김기룡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리바트는 B2B가구 수주잔고가 넉넉해 뚜렷한 매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다. 수익성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올해 228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2021년 이후 3년 만에 흑자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물론 한샘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샘의 강점인 홈리모델링 시장 공략에 주력해왔다. 인테리어 부문인 홈리모델링은 과거에 주력했던 패키지 시공보다 부엌, 화장실 등 단품 시장에 집중했다. 패키지 시공은 시공 인건비로 원가율이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단품 시장 판매 확대로 마진 개선에 힘썼다. 매달 진행하는 ‘쌤페스타’ 할인 행사로 가정용 가구 판매가 늘어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뚜렷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현대리바트가 1년 새 매출을 1300억원가량 늘리는 동안 한샘은 166억원가량 높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지난해 1분기 대비 올 1분기 매출 기준). 가구업계 관계자는 “현대리바트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진 만큼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올해 연간 기준으로 현대리바트가 한샘을 제치고 가구업계 매출 1위에 오를 가능성도 높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한샘의 부엌 신제품 ‘유로클래식 화이트(위)’와 현대리바트의 프리미엄 가구 라인 ‘마이스터 컬렉션’ 쿠스 소파. 사진 아래는 김유진 한샘 대표(위), 윤기철 현대리바트 대표. (각 사 제공)
가구업계 지각변동, 왜

사모펀드 주인 맞은 한샘 리더십 흔들?

가구업계에 지각변동이 나타난 배경을 좀 더 파헤쳐보면 한샘 주인이 사모펀드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샘은 1970년 조창걸 명예회장이 창업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대표 가구업체다. 조 명예회장은 1994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나 있었지만 최대주주로서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 2022년 1월 조 명예회장은 사모펀드 운용사 IMM PE에 전격 지분을 매각한다. 조 명예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27.7%를 1조4500억원을 받고 IMM PE에 넘겼다. 롯데쇼핑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기는 했지만 최대주주는 IMM PE로 바뀌었다.

이후 한샘 내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지오영그룹 총괄사장을 역임한 김진태 대표가 2022년 1월 한샘 수장을 맡은 이후 가구업계 1위를 넘어 ‘글로벌 리빙테크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내놨다. 2026년까지 홈리모델링 부문 매출을 2조원으로 키워 전체 매출 4조원을 돌파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존 제조·유통 위주 사업 방식에서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형태로 기업 체질을 전환하겠다는, 그럴듯한 계획이었지만 정작 실적은 살아나지 않았다. 오히려 2002년 코스피 상장 이후 처음으로 2022년 217억원의 연간 적자를 기록하는가 하면 매출도 2조9억원에 그쳐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

상황이 심상찮자 IMM PE가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7월 한샘 CEO를 40대 초반의 김유진 대표로 전격 교체했다. 김진태 대표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과 1년 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유진 대표는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MBA)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쳐 2009년 IMM PE에 합류했다. 그동안 IMM PE가 인수한 주요 기업 수익성을 끌어올린 이력이 주목받는다.

2017년부터 할리스에프앤비 대표를 맡은 그는 공간과 콘텐츠 연구에 집중해 다양한 베이커리, 식사 메뉴를 추가한 덕분에 실적이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16년 1286억원 수준에 그쳤던 할리스에프앤비 매출은 2019년 1649억원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27억원에서 155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실적 개선에 성공한 덕분에 IMM PE는 2020년 할리스에프앤비를 KG그룹에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김유진 대표는 수년째 적자를 내던 에이블씨엔씨도 흑자전환시켰다. 멀티 브랜드 포트폴리오 강화, 해외 시장 공략에 힘쓴 덕분에 에이블씨엔씨는 2022년 영업이익 100억원을 달성했다.

이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한샘 구원투수로 올라섰다. 김유진 한샘 대표는 “매출 성장을 배제한 단기 비용 절감과 수익성 개선 없는 맹목적 매출 성장을 지양하고, 장기적으로 매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이 가능한 사업 구조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한샘은 수익성 확보에 치중하면서 판매관리비를 대폭 줄였다. 지난해 한샘의 판매관리비는 4304억원으로 2022년 대비 6.6%가량 감소했다. 광고, 직원 복리후생비용 등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돌입했다. 최근 정기 인사에서 고위급 임원을 단 한 명도 승진시키지 않는 등 인건비 절감에도 나섰다. 덕분에 올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매출이 감소세를 보이면서 내부가 뒤숭숭한 모습이다.

이선일 BN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샘이 비용 효율화를 통해 실적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리모델링, 가구 교체 수요 확대로 구조적인 성장이 가능하려면 주택 경기가 살아나야 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현대리바트도 한샘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현대리바트 모태는 1977년 현대건설 가구사업부에서 출발한 금강목재공업이다. 당시 리바트는 가구 브랜드 이름이었다. 이후 현대종합목재산업으로 이름을 바꿨고 1998년 고려산업개발에 매각됐다. 매각 이듬해 사명이 리바트로 바뀌었다.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에 인수된 후 10년 넘게 지배구조에 큰 변동이 없었다. 현대리바트 최대주주는 현대지에프홀딩스(옛 현대그린푸드)로 지분 41.2%를 보유했다.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장 출신인 윤기철 대표가 2020년부터 수장을 맡은 이후 4년 넘게 회사를 이끌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그는 기획조정본부 경영개선팀장, 서울 목동점장을 거쳤다. 현대백화점그룹 내 기획, 재무통으로 유명하다.

현대리바트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로 들어온 지 10년 만인 2022년 첫 영업손실(279억원)을 기록하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살아나는 모습이다. 윤기철 대표는 지난 4월 주주총회에서 “수익성 중심 경영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앞세워 업계 선도 기업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 기획·개발·생산·판매 등 전 사업 부문에 걸쳐 원가 구조 개선, 비용 효율화를 실시해 수익성 개선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양 사 경영 전략 비교해보니

현대리바트 고급화, 한샘 디지털 주력

한샘을 제친 현대리바트 독주 체제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한샘과 현대리바트의 사업 구조를 눈여겨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현대리바트는 전통적으로 B2B, 한샘은 B2C 부문이 강하다. 앞서 살펴본 대로 빌트인 가구, 오피스 등 B2B 부문이 매출 성장세를 주도했다. 코로나 엔데믹 전환으로 직원들이 사무실로 대거 복귀하면서 오피스 가구 매출 상승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이에 비해 리하우스(인테리어), 홈퍼니싱(집 꾸미기) 등 B2C 부문에 주력해온 한샘은 주택 경기 침체 직격탄을 고스란히 받았다. 고금리 여파로 주택 거래가 급감하면서 가구 수요도 덩달아 고꾸라졌다.

향후 한샘과 현대리바트의 1위 경쟁에서는 ‘프리미엄 B2C’ 시장이 핵심 승부처로 떠오를 전망이다. 선두에 오른 현대리바트는 여세를 몰아 한샘의 강점인 B2C 시장 공략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리바트가 B2B 시장에 이어 B2C 시장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낼 경우 한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리바트는 최근 가구 교체 수요가 늘자 고가 프리미엄 가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최상위 프리미엄 가구 라인 ‘리바트 마이스터 컬렉션’을 선보였다. 마이스터 컬렉션은 합판을 주로 사용하는 국내 가구업계에서는 보기 힘든 월넛(호두나무), 애쉬(물푸레나무), 버치(자작나무) 등 최고급 천연 원목을 적용해 눈길을 끌었다.

마이스터 컬렉션 한 제품 생산에는 원목 가공·패브릭·가죽 등 각 소재나 공정별 장인 10여명이 참여한다. 전문가가 모든 생산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생산 소요 시간도 한 제품당 최소 3주 이상 걸릴 정도다.

이에 질세라 한샘은 올 2월 신규 프리미엄 붙박이장 브랜드 ‘시그니처’를 공개하는 등 고가 시장 공략에 힘쓰는 중이라 양 사 대결이 볼 만해졌다. 시그니처는 짙은 갈색과 브론즈를 핵심 컬러로 선정했고 나무와 금속, 가죽 질감을 구현한 표면재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김승준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샘은 홈퍼니싱에서 수익성이 낮은 저가 가구나 생활용품, 제휴몰 판매 비중을 줄이고, 고가 제품을 마케팅하는 전략을 내놨다. 부동산 업황이 개선될 때 이익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고 분석했다.

양 사는 서비스 차별화에도 나섰다. 현대리바트는 국내 최초로 ‘3년 품질 보증 제도’를 도입했다. 자사 제품에 대한 품질 보증 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해 소비자 수요를 끌어들이겠다는 속내다.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한 소파 제품을 다음 날 집으로 배송해주는 ‘내일배송’ 서비스를 가구업계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한샘은 디지털 전환(DT)으로 맞불을 놓는다. 기존 한샘닷컴과 한샘몰을 통합한 ‘통합 한샘몰’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홈리모델링과 홈퍼니싱 부문 전반에 ‘옴니채널(Omni-Channel)’을 구현했다는 평가다. 옴니채널이란 고객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경로로 상품을 검색하거나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매장 직원 역시 한샘몰을 통해 고객의 관심 상품과 방문 일정, 선호 스타일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한샘의 디지털 전환이 안착하면 오프라인 비용 절감에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리바트, 한샘 모두 B2C 시장 공략에 주력하는 가운데 프리미엄 가구 시장에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현대리바트가 선두 자리를 굳히기 위해 공격 경영에 나섰는데 한샘의 비용 절감 전략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연말에 뚜껑을 열어봐야 할 듯싶다.” 재계 관계자 촌평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1호 (2024.05.28~2024.06.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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