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Z여자들] 오십이 된 헬로키티에게 이런 꿈이 있었다니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기자말>
[김현진 기자]
헬로키티가 올해 오십 살이란다. 시나모롤, 포차코 등 2000년대 이후 탄생한 산리오 캐릭터에 빠진 아이 손에 이끌려 '헬로키티 50주년 특별전(8월 13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뮤지엄)'에 다녀왔다.
헬로키티는 산리오라는 일본의 오락 기업에서 만든 다양한 캐릭터 중 하나. 아이들은 물론 성인에게도 폭넓은 사랑을 받는다. 전시회에서 이 놀라운 사랑의 실체를 확인했다. 캐릭터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 헬로키티 50주년 특별전 포스터. |
ⓒ 헬로키티 50주년 특별전 |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캐릭터, 혹은 자신과 전혀 달라 매력적인 캐릭터를 골라 애정을 쏟는다. 어딘가 어리숙하고 착하지만도 않은 캐릭터가 그 모습 그대로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데는 묘하게 우리를 위로하는 구석이 있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빼어나지 않아도 어딘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모가 우리에게 있을 수 있다고. 그런 모습으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토닥여주는 것 같고.
고유한 모습으로 긴 세월 담담하게 살아남은 헬로키티가 커다란 성취를 일구거나 급진적인 변화를 이룬 인물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이토록 작은 존재가 변함없는 자신으로 사랑받는다는 일이 문득 경이로웠달까.
헬로키티가 피아노와 영어를 좋아하고 장래희망이 피아니스트와 시인이라는 걸 새롭게 알았다. 피아노와 영어를 좋아하는 고양이라니. 게다가 피아니스트와 시인이 꿈이라니.
그 사이 헬로키티의 손과 발의 둥글기가 바뀌고 옷에 달리 단추의 크기도 알게 모르게 다듬어졌다. 티 나게 달라진 게 아니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키티에게도 세월의 흔적은 남았구나. 그런데도 키티의 꿈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십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꿈을 품고 사는 것 같다.
이것은 니체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개념을 통해 말하려는 것이다. (...)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특별한 과거가 없었더라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을 이해한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이상 과거를 이루는 핵심 요소들을 억압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과거의 다양한 모습을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기술에 녹여 냄으로써 그 과거 전체를 "소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 <가치 있는 삶> 64~65쪽, 마리 루티 지음, 이현경 옮김, 을유문화사
자신으로 꿋꿋하다는 건 어떤 걸까. 자신의 부족을 수용하면서 과도한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고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것, 그리고 타인을 포용하면서도 그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부정적인 과거나 반항적인 기질을 억누르기만 하지 않고 그것들을 삶의 기술에 녹여내면서 담담하게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나는 나로 꿋꿋할까. 부족하고 빈자리만 보여 그걸 채우려고 읽고 쓰는 일에 매달렸다.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결심으로 주먹을 꼭 쥐며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세수하고 밥을 먹듯 익숙하게 적어 나가는 날로 건너온 듯하다. 글을 쓰면서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나이구나, 별 수 없이 나네' 인정하게 되었다고 답해야겠다.
다채로운 서사와 사유가 담긴 책을 읽으며 어떤 빈 곳은 채우기도 했다. 쓰고 또 쓰면서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과거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도 얻었다. 때로는 나답게 단단해지려 예민하게 용기를 내었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자신은 과감하게 잘라내었다.
그러느라 실패하고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간신히 내가 되어간다. 꿋꿋함도 자랐다. 꿋꿋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을 가볍게 풀어놓는 일조차 어려웠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뒤로 미루고 힘들게 얻는 것만 가치 있다고 꼿꼿하게 굴었다.
뭐 신나고 재미난 일이 없을까, 가볍게 살랑거릴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요즘, 꿋꿋함이 그런 여유를 들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도 괜찮다고 여기면서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일에 너그러워졌다. 그러자 잊혔던 꿈이 움트고 내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일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다.
▲ 발레를 시작했다 즐거운 일을 찾아 눈을 반짝이는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내 꿈은 발레하는 할머니. |
ⓒ 김현진 |
그런 마음에 크고 작은 꿈들이 자란다. 작가가 되고 싶고 괜찮은 번역가도 되어야 하고, 언젠가는 시인도 되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발레 하는 할머니,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되고 싶고. 되고 싶은 걸 꼽다 보니 될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인정해 주고 잘해야만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걸 꾸준히 반복하는 사이 우리는 그런 사람에 다가간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작가가 되고 번역을 하는 사이 번역가가 되고. 한 줄이라도 시를 쓰고 있다면 적어도 그 순간에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때엔 피아니스트가, 발레 동작을 지어내는 찰나엔 발레리나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결과라고 믿는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빠르게 도달하고자 욕심내는 대신 계속 향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기울어지고 있다면 과정 안에서 결과일 수 있다. 되어가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니까. 되어가는 건 시도하는 순간에 닿을 수 있으니까. 천천히 꾸준히 되어가기. 그 상태를 유지하는 한 이미 쓰는 사람, 발레 하는 사람, 피아노 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지 말고 일단 하면 되는 거지, 용기를 북돋아 보자.
지천명에 다다른 헬로키티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헬로키티이면서 피아니스트, 시인으로 살고 있을까. 40대인 나와 꿈이 같네. 그러면서 반가워하는 나는 가볍게 살랑거린다. 발레 학원을 등록해야지, 시 수업에 다시 참석해야지 생각한다. 내가 나에게 꿋꿋하고 인심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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