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1년 일찍 입학시키면 출산율↑" 국책기관, 황당 제언 논란

이우림 2024. 6. 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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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지윤]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국책연구기관 간행물에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여학생의 1년 조기 입학’이 제시됐다. 남녀 간 발달속도를 고려해 여학생을 한해 일찍 입학시키면 결혼 적령기에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인데 성차별적이고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에 따르면 이런 내용은 최근 발간된 ‘재정포럼 5월호’의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에 담겼다. 보고서를 쓴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현재의 인구 문제를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로 정의한 뒤 생산가능인구 확보를 위한 저출산 대책을 단계별로 나열했다.

문제가 된 건 ‘남녀 교제 성공 지원 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다. 장 연구위원은 이성 교제 성공을 위해 정부가 만남을 주선하거나 자기계발을 지원해 이성에 대한 매력을 제고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의 발달 정도보다 느리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령에 있어 여성들은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도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해줄 여아 조기 입학과 향후 남녀 교제 성공률 간의 인과관계나 기대 효과 등은 담기지 않았다.

이번 조세연 보고서에는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해 은퇴한 노인들을 해외로 이주하자는 방안도 들어갔다. “노령층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은퇴 이민 차원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양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구 보고서가 공개되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주장이 나오면 성차별 이슈는 당연히 따라오는 수순인데 깊은 고민 없이 나온 제언”이라며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도 “노인은 외국으로 보내고, 젊은이들은 공장에서 물건 찍듯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낳아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라는 식의 억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향후 저출산 대책 평가를 하게 될 국책연구기관에서 필터링 없이 이런 보고서가 나왔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조세연 산하에 인구정책평가센터를 개설하고 향후 저출산·고령화 정책의 사후평가 업무를 맡기겠다 밝힌 바 있다.

맘 카페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상황에 MZ세대들이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저출산 대책이 저출산을 더 부추긴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만 조세연은 “재정포럼 원고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지 본원의 공식의견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저출생 대책으로 취학연령을 하향하자는 주장은 과거에도 제기된 바 있다. 2015년 새누리당은 만 5세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가능하게 하고 초·중·고교 과정을 10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다만 이때는 취학연령이 낮아질 경우 입직 연령이 빨라져 젊은 나이에 결혼해 출산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조세연 보고서처럼 결혼 적령기 남녀가 매력을 더 느낄 수 있게 한다는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고 성별에 따라 입학 연령에 차등을 두지도 않았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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