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초계기 갈등’ 문서로 봉합…대북 대응 협력 강화에 방점
한·일 국방당국이 양국 함정·항공기 간 소통 강화 방안을 담은 합의문을 도출하면서 5년 넘게 끌어온 ‘초계기 갈등’에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양국 간 안보 협력을 위해 소모적 논쟁을 피하고 대북 억제력 강화에 집중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다.
2일 국방부에 따르면 전날(1일) 신원식 장관과 기하라 미노루(木原稔) 일본 방위상은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제21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만난 뒤 함정·항공기 간 안전거리 유지, 주파수의 우선순위 설정을 통한 양 측 간 소통 강화 등을 골자로 한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간 소통 방안을 다룬 합의문”을 작성했다.
국방부는 “앞으로 양측은 평시 해상에서 조우할 경우 합의문을 준수해 작전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발적 상황에서 원활하지 않은 소통이 초계기 갈등을 불러일으켰다고 보고 합의문에 관련 소통 강화 대책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담으려 했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양국 장관이 도출한 해당 합의문은 향후 한국 해군참모총장과 일본 해상막료장의 서명을 거쳐 본격 시행에 돌입한다. 군 당국은 해군과 해상자위대간 정례협의체를 통해 합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면서 개선 방안 및 기타 사항을 협의하고 상호 교육 훈련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초계기 갈등은 2018년 12월 동해에서 조난한 북한 어선을 수색하던 한국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함정 근처로 날아온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조사·照射)했다고 일본 측이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 초계기에 추적 레이더를 조사한 바가 없고, 오히려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을 위협비행했다”는 입장이다.
합의 내용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주파수의 우선순위를 정해 양측이 호출하고 응답하기로 한 내용이다. 한·미·일 등 25개국이 2014년 서태평양해군심포지움(WPNS)에서 합의한 ‘해상에서의 우발적 조우 시 신호 규칙(CUES·큐스)’을 강화한 것으로 일종의 소통 ‘안전장치’인 셈이다. 기존 CUES는 유사시 통신을 위한 주파수가 명시돼 있지만 약 10개 주파수를 나열한 수준이라 채널이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CUES를 토대로 한국이 주파수의 우선순위까지 정해 함정·항공기 간 소통을 강화하기로 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규범을 지킨다는 보편성을 토대로 부담을 줄이는 한편 양국 간에는 세부적 사항까지 정해 준수하기로 함으로써 재발 방지에 대한 상호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함정·항공기 간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CUES의 내용도 이번 합의에 담겼다. 지난 4월 개정된 내용인데, '함정과 함정 간의 안전거리'만을 다룬 이전 CUES를 보완해 항공기가 함정에 무분별하게 접근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 양국 갈등의 원인이 일본 초계기의 저공비행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합의가 이뤄졌다는 시각도 있다.
양국 장관은 또 한·일 국방차관급 회의를 연례화하고 한·일 국방정책실무회의와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간 고위급 교류를 재개하는 등 국방당국 간 대화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동시에 양국은 합의문에 한국 측의 레이더 조사나 일본 측의 저공비행 등 여전히 입장이 엇갈리는 사안은 아예 명시하지 않기로 했다. 양측의 시비 다툼은 일단 묻어놓겠다는 얘기다. 군 당국자는 “기존 방식의 논의가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고 지난해 뜻을 모은 뒤 1년 만에 가시적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당시 이종섭 전 국방장관과 하마다 야스카즈(浜田靖一) 전 일본 방위상은 샹그릴라 대화에서 만나 재발방지책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여기엔 현 정부 들어 한·일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기조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일각에선 강제성 없는 합의라는 점, 이견이 있는 사건에 대한 사실 규명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논란의 불씨가 아직 남아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일 관계의 변화에 따라 기존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논란이 대표적 갈등 요소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형상 자위함기 사용을 놓고 한·일이 이번 회담에서 이견을 드러냈다고 이날 보도했다. 자위함기 게양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확인해 줄 것을 한국 측에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상자위대의 자위함기 게양은 국제관례’라는 지난해 정부 발표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며 “이번에 (욱일기 사안이) 의제로 제안된 것도 없고 논의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미 국방장관 회담 "오물 풍선, 정전협정 위반에 미측 공감"
한편 신 장관은 이날 샹그릴라 대화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도, 오물 풍선 살포 등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긴밀하고 조율된 대응을 해나가기로 약속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신 장관이 오스틴 장관에게 북한이 오늘까지 700여개의 오물 풍선을 날린 사실을 언급했다"며 "오스틴 장관은 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데 공감했고, 전반적으로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이해하고 공감을 표했다"고 말했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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