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직장인 천여명, 건물 뛰쳐나와 공원에 모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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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민 기자]
영국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14일, 영국 런던 금융중심지 '시티오브런던' 인근 한 공원에 직장인들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바쁜 근무시간이고 궂은 날씨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으며, 회사 팻말을 들고 서있는 사람 주변으로 모여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영국에 와서 디자인 회사의 경영지원팀(General Management)에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 된 새내기 직장인인 필자이지만, 이제는 이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 됐다.
▲ 런던 직장인들 건물밖에 모여있는 사연 |
ⓒ 기자 제공 |
작년 9월에 입사해서 두 달만인 11월에 이미 건물 화재 대피훈련을 경험했고, 이번이 벌써 두 번째 경험하게 되는 훈련이다. 영국에서는 법적으로 일 년에 최소 한번 이상 화재대피 훈련을 실시하고 기록하도록 하고 있으며, 필자의 회사 건물은 매년 5월, 11월 두 차례 화재대피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 필자의 회사에서 사전에 약속한 집결지 |
ⓒ 기자 제공 |
건물 화재 대피 훈련은 건물의 100m 밖으로 벗어나서 약속된 집결지(Assembly Point)에 모이는 것을 골자로 하며, 회사마다 지정된 소방안전담당자(Fire Warden)의 지시에 따라 대피하는 것을 훈련한다.
회사는 법적으로 화재 위험이 적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규모에 따라 직원 50명당 1명의 직원에게 소방훈련을 받도록 하고, 그 중 한 명을 소방안전담당자로 지정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 화재시나 훈련 시에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날 화재대피훈련은 시작 39분 만에 종료되었다. 오전 10시 20분경에 화재알람이 울렸고, 즉시 대피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방송에 맞춰서 각 층마다 비상구 계단을 통해 대피 훈련이 시작됐다. 일 년에 두 번 진행되기에 한 번은 위층에서부터 대피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한 번은 아래층에서부터 대피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각 회사의 소방안전담당자는 자신이 담당자(Fire warden)임을 알려주는 형광조끼를 입은 상태로 해당 층의 모든 직원들이 대피를 하고 사무실에 아무도 없음을 직접 확인한 후에 대피하며, 건물 밖으로 나가서 건물 소방 총담당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건물 소방 총담당자의 체크 리스트에 모든 회사들이 대피했다고 표시가 된 후에야 훈련상황은 종료된다. 이날, 18개 층의 20여 개의 회사에서 1000여 명이 모두 대피하며, 오전 10시 59분부로 훈련이 모두 완료됐다.
화재대피훈련이 끝나고 사무실로 복귀해도 된다는 안내 문자를 받고 들어오는 런던의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생각에 잠긴 필자의 모습을 느꼈는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소방안전담당자인 영국인 직원 '시안(Sian)'이 내게 한국에서도 이런 경험을 해봤는지에 대해 물어왔다.
필자는 영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4년 가까이해왔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익숙지 않았기에 당당하게 '한국에서도 해봤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한국 회사들의 상황을 내가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불시에 진행되는 건물 화재대피훈련을 직접 실시해 본 적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이 있다곤 하지만, 이 또한 행정·공공기관이나 학교 등만이 중심이 돼 진행된다-편집자 주).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분들에게 여쭤본다. 여러분의 회사 사무실에는 소방안전훈련을 받은 담당자가 지정되어 있는가? 화재 시에 건물 대피 지침을 인지하고 있는가? 갑작스러운 재난상황에서, 미리 연습하거나 실전처럼 대비한 게 아니고서는 아비규환의 상황을 잘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 Fire warden이라고 적힌 형광 조끼가 눈에 띈다. |
ⓒ 기자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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