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를 자꾸 집에 데려오는 그 사람, 왜 그럴까?
[성낙선 기자]
사람이 나방의 애벌레하고 같은 방 안에서 지내야 한다면,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까? 세상에 애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애벌레가 생김새부터 너무 혐오스럽게 생겼기 때문이다. 가시 같이 돋아난 뾰족한 털, 독이라도 묻어날 것 같은 자극적인 피부색, 뱀처럼 꿈틀대는 몸통 등 뭐 하나 예쁘게 봐 줄 구석이 없다.
사람들이 애벌레를 싫어하는 건 본능에 가깝다.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 애벌레를 보는 순간 공포를 느낀다. 길을 가다 애벌레와 맞닥뜨리게 되면,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애벌레 역시 인간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꺼린다. 애벌레도 애초 다른 동물들로부터 호감을 살 의도 같은 건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보면, 사람이 애벌레와 친숙해지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애벌레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외모 이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들의 섬뜩한 외모도 어쩔 수 없이 택한 생존 방식 중의 하나다. 나방의 애벌레를 모두 해충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알고 보면 전부 그런 것도 아니다.
▲ <위로하는 애벌레> 책 표지. |
ⓒ 성낙선 |
애벌레가 주는 위로와 지혜
<위로하는 애벌레>는 작가가 집안에서 각종 나방의 애벌레들을 키우면서, 그 애벌레들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은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엮은 수필집이다. 작가는 애벌레한테서 위로를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애벌레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통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거기에서 얻는 기쁨과 감동을 진솔한 언어로 써 내려간다.
작가는 어떻게 보면, 조금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다. 수시로 애벌레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온 숲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풀을 뜯어다" 먹인다. 한 번은 거센 빗물에 쓸려 내려가기 직전에 있는 애벌레를 구출한다. 작가는 심지어 이웃이 뿌린 살충제를 맞아 "피를 토하면서 바둥거리"는 애벌레들을 "옷에다 싸서 급하게" 방으로 옮긴다.
그 모습이 범상치 않다. 작가가 그렇게 하는 데는 "새로운 애벌레가 집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풍요롭고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집안으로 들인 애벌레들을 "어지간해서는" 가두지도 않는다.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내버려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다. 작가가 이런 식으로 애벌레를 키우는 이유는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작가가 보기에, 애벌레는 단순한 미물이 아니다. 애벌레는 "근원적으로 생태주의자가 될 수 없"는 인간과 달리, "뼛속까지 생태주의자"이다. 애벌레들은 인간들처럼 "자기들만 잘살겠다는 욕망을 내세우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묵묵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 생태주의자들이 작가에게 깊은 위로와 지혜를 선사한다.
작가는 틈틈이 애벌레와 대화를 나눈다. 친구로서 "함께 밤을 지새우기도" 하면서 애벌레에게서 "순간순간을 진실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큰빗줄가지나방 자벌레가 깨달음을 준다. 자벌레는 "수도승만큼이나 경건하고 고요"한 삶을 산다. 배가 고플 때만 움직이고, 밥을 먹고 나면 다시 나뭇가지를 붙잡고 '참선'에 들어간다.
자벌레는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직 "먹고 참선"만 한다. 작가가 애벌레를 "뼛속까지 생태주의자"로 표현한 건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이처럼 "수도승"이나 다름이 없는 삶을 사는 자벌레를 보면서, 작가는 "만약 이 다음에 다른 생이 주어진다면, 저런 자벌레로 한생을 삭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애벌레
<위로하는 애벌레>는 여러 면에서 애벌레라는 존재를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애벌레는 추하다'는 관념에 조금씩 금이 가는 걸 알게 된다. 애벌레의 추한 외모 이면에 분명히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이 있다. 고정관념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미추와 관련된 관념은 특히 더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이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사람들에게 애벌레는 "흉측하고 징그러운 혐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들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다.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애벌레는 다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추한 외모에 눈이 멀어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애벌레의 다른 면들을 보게 해준다. 애벌레라는 생명체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애벌레는 애초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동물이다. 그런 존재를 인간이 가진 기준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러면서도 또 감동적이다. 그 과정이 애벌레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우면서도 강한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
"새로운 환생은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다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얼굴, 몸 구조, 심장의 위치, 뇌의 위치까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생명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 미라, 그리고 나방. 애벌레는 그렇게 세 번의 삶을 사는데, 맨 마지막의 삶이 가장 화려하다. 이러한 변신은... (오랜) 고통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애벌레는 뛰어난 생존본능을 가진 강한 동물이다. 사람들이 애벌레를 미약한 동물로 보는 것도 편견에 가깝다. 애벌레는 경우에 따라 이 세상 어떤 동물보다 강한 면을 가졌다. 인간은 체온이 떨어지면 죽지만, 애벌레는 그렇지 않다. 거세미나방 애벌레는 일종의 불사신이다. 막대기로 내리찍고 돌멩이로 짓눌러도 잘 죽지 않는다.
그런 거세미나방 애벌레가 배추 싹 등을 잘라 먹는 습성이 있어 농부들의 원성을 산다. 그 바람에 해충 소리를 듣는다. 애벌레 처지에서 보면 그 소리도 적잖이 억울하다. 거세미나방 애벌레는 "하루에 딱 한 번만" 풀을 잘라 먹는다. 그 정도 악행은 숲을 아예 통째로 파괴하는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해충이라는 개념 역시 인간중심적이다.
▲ <위로하는 애벌레> 책 내용 일부. |
ⓒ 성낙선 |
작가가 애벌레를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나비와 나방을 구분하는 상식 중에 '나비는 낮에 활동하고, 나방은 밤에 활동한다. 나비는 배 부분이 홀쭉한데 나방은 뚱뚱하고, 나비는 앉을 때 날개를 접지만 나방은 펴고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다.
"벌꼬리박각시처럼 나방 중에서도 낮에 활동하는 것들이 제법 있고, 가중나무고치나방처럼 몸이 홀쭉한 것들도 있고, 으름밤나방처럼 날개를 접고 있는 것들도 있다."
매미나방 애벌레는 "악당"으로 유명하다. 온몸을 "무시무시한 독침으로 중무장"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미나방 애벌레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다. 그들의 몸을 뒤덮은 날카로운 털은 "개미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공격을 하기 위한 게 아니다. 악당은 따로 있다.
매미나방 애벌레의 천적은 기생벌이나 기생파리다. 그들이 다가오면 애벌레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흔들면서" 달아난다. 그래도 그들이 계속 달라붙으면,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그냥 밑으로 미련 없이" 몸을 던진다. 그동안 애벌레들이 나무에서 추락하는 걸 일종의 공격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그만 오해를 푸는 게 좋겠다.
작가가 어려서부터 애벌레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친구가 던진 박각시 애벌레에 놀라 눈물을 흘렸던 때도 있다. 그 후로 "애벌레만 보면 진저리치"던 작가가 애벌레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어린 딸 덕분이다. 딸과 함께 숲속 산책을 나갔다가 거기서 발견한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를 딸이 "데려가서 키우자"고 말하면서부터다.
작가는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애벌레를 집에 데려와 "날마다 지켜보다 보니" 어느 순간 트라우마가 치유됐다. 그 후로 애벌레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상이 반복된다. 작가 이상권은 소설가이면서, "일반문학과 아동 청소년 문학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책에 들어간 삽화는 그의 딸인 이단후가 그렸다.
작가가 책머리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애벌레에 대한 서사시"이자 "헌사의 글"이다. 애정을 기울여, 진심을 다해서 썼다. 글이 어렵지는 않지만, 곱씹어야 할 문장들이 많다. 그 문장들은 소가 여물을 먹듯이 느릿느릿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애벌레가 기어가는 속도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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