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헌법소원 10년 쥐고 있던 헌재, 이제야 나온 결론 '각하'
[복건우 기자]
▲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
ⓒ 복건우 |
헌법재판소(헌재)가 10년을 쥐고 있던 세월호 참사 관련 헌법소원의 결과를 내놨다. 10년 만에 나온 '최장기 미제 사건'의 결론은 헌법소원 대상조차 아니라는 '각하'였다. 그나마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은 각하해선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헌재는 지난 5월 30일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 발생한 정부의 위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세월호 희생자·유가족 이름으로 청구된 '신속한 구호조치 등 부작위 위헌확인' 사건에 대해 "이 사건 구호 조치는 심판 청구가 제기되기 전 종료되었으므로 심판 청구는 권리보호이익이 없었던 경우에 해당한다"며 각하 결정했다.
그러면서 "이미 법원을 통해 구체적인 위법성이 판단돼 그 민·형사상 책임이 인정되었으므로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을 이유로 예외적인 심판청구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각하는 청구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아예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심판 절차를 끝내는 처분이다.
▲ 왼쪽부터 이종석 소장·이은애·이영진·김형두·정형식 헌법재판소 재판관. |
ⓒ 연합뉴스 |
이 사건은 10년 전 헌재에 접수됐다. 세월호 희생자·유가족은 국가가 참사 당시 신속하고 적절한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2014년 12월 31일 부작위 위헌확인 헌법소원 심판(2014헌마1189)을 청구했다. 청구인들은 구조 과정에서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 보호 의무와 보호 청구권, 국민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을 국가가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부작위는 국가기관이 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공권력이 행사되지 않아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할 경우 헌재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 헌재는 유사한 취지로 2015년 1월 5일 청구된 헌법소원(2015헌마9)을 병합해 심리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사건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보지 않고 5대 4로 각하했다. 이종석·이은애·이영진·김형두·정형식 재판관이 각하 의견을 내 다수로서 헌재의 법정의견이 됐다.
헌재는 "피청구인(대한민국 정부)의 구호 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개별 기관이 세월호 사고 당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수난구호법, 국가 위기관리 기본 지침과 관련 매뉴얼을 이행했는지 등 위법성의 문제로 귀결된다"라며 "공권력 행사에서 위헌성이 아니라 단지 위법성이 문제되는 경우 그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헌재의 선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월호 이후 입법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제정해 지속적으로 재난 안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공권력 행사의 반복에 관한 구체적 위험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며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을 이유로 예외적인 심판청구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 왼쪽부터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 |
ⓒ 연합뉴스 |
다만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재판관들은 "세월호 사고와 같이 재해에 준하는 대형 해난사고로 국민의 생명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이행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있고, 대형 해난사고에서 국가의 생명권 보호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여부에 대한 헌재의 확립된 결정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세월호 사고에 관한 법원 확정 판결이 있지만 이는 관련자 개개인의 형사 처벌과 국가배상 인정 여부에 관한 것으로, 피청구인의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 여부가 문제되는 이 사건 심판 청구와 서로 다른 헌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며 "이 사건 심판 청구는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지적받는 우리 사회의 해양 안전관리 실태와 구체적인 위기 상황에 대응할 피청구인의 책임을 헌법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점을 고려할 때 심판청구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또 "구조 작업이 적절한 방법에 따라 효율적으로 진행됐다면 인명 피해를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보 파악과 취득, 현장 구조 방식, 해경지휘부의 판단 및 지휘,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에 관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구호 조치는 과소보호금지 원칙(너무 적게 보호하면 위헌)에 반해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므로 결국 유가족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는 심판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조항은 훈시규정이라 위반해도 강제력이 없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통상 법정 처리 기간인 180일을 넘긴 사건은 '미제 사건', 2년을 넘긴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는데, 이 사건은 10년 가까이 헌재에 계류돼 있어 '최장기 미제 사건'으로 꼽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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