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세월호 참사 국가책임 10년 만에 각하…5대4로 갈렸다

문현경 2024. 6.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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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4월 2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경기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모습.청와대사진기자단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헌법적 책임에 대한 판단이 10년만에 나왔다. 헌법재판소의 결론은 ‘각하’, 판단하지 않겠다는 판단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30일 재판관 9명 중 5명의 의견으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낸 헌법소원을 각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은애·이영진·김형두·정형식 재판관은 “이 사건에서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을 이유로 예외적인 심판청구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족들이 헌법소원을 낸 건 2014년 말이다. 이미 구호조치는 끝난 뒤였다. 유족들이 바란 건 헌법적 해명이었다. ‘국가가 신속하고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건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어긴 것이고 그 결과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는 걸 확인해주길 바랐다.

소송이란 그를 통해 얻을 이익이 있어야 낼 수 있다. 무익한 소송은 각하다. 다만 청구인의 권리구제에 도움되는 게 없을지라도 비슷한 침해가 앞으로 반복될 위험이 있고 헌법질서의 수호 유지를 위해 헌법적 해명이 긴요한 사항이라면 예외적으로 받아줄 수 있다.

하지만 이종석 소장 등 5명의 헌법재판관들은 세월호 사건이 이러한 예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관련 법제 정비를 통해 세월호 사고 같은 대형 해난사고의 발생을 예방하는 한편 사고 발생 시 국가가 적절한 구호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을 했다”며 비슷한 침해가 반복될 위험이 없다고 봤다.

헌재가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10년이 걸린 배경엔 법원에서 관련 재판이 길어진 영향도 있다. 국가의 구조 실패에 대한 형사 재판은 지난해 11월, 민사 판결은 지난해 1월 확정됐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 확정을 통해 구호조치의 위법성에 관한 구체적 판단이 이루어졌고 이에 관하여 이 사건에서 달리 판단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는 모습. 연합뉴스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대형 해난사고로 국민의 생명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 이행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으나 이는 개개인에 대한 범죄 성립 여부와 국가 배상 책임 여부에 관한 것으로 유족들의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 여부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봤다. 헌재가 살펴봐야 하는 문제란 거다.

반대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은 “세월호 구호조치는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반하여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유가족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결론에 앞서 18페이지에 걸쳐 2014년 4월로 당시 사고 발생부터 해경의 구조 활동과 청와대 대응 등을 살피고 그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사고 발생시부터 침몰시까지는 물론 침몰 후 상당시간이 경과할때까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며 서면보고와 전화보고만 받았고 그럼에도 정확한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다” 등이다.

■ "인명피해 현저히 감소시켰을 것" 반대의견 결론 보니

「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세월호를 불법 증·개축하여 복원성이 약화되었음에도 화물을 과적하고 고박 불량인 상태로 출항시킴으로써 사고의 사전적 원인을 제공한 회사, 운항 중 급변침을 일으켜 상황을 악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승객들에 대한 대피 및 퇴선지시에 관한 기본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채 자신들만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 및 선원에게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사고 당시의 맑은 날씨 조류의 흐름과 수온 인근 해역에 구조협조를 위해 대기 중이었던 선박 등의 숫자 바다에 뛰어든 승객들은 대부분 구조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사고 발생 후 침몰하는 과정에서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9시 30분 경부터 세월호 4층 갑판이 침수된 9시 50분까지 짧게는 20분간, 최초 신고시인 8시 54분부터 완전 침몰시인 10시 31분까지 길게는 약 100분간에 걸친 구조작업이 적절한 방법에 따라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더라면 인명피해를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①진도 VTS의 사고 발생 사실에 대한 인지 지연, 목포해양경찰서의 사고신고 접수업무 미흡, 관련기관 사이의 교신 내용 전파 미이행 등 사고 발생 후 초기상황에 대한 정보파악 및 취득에 관한 문제, ②123정 및 항공구조대의 적극적 구조조치 미이행 등 현장구조세력의 구조방식에 관한 문제, ③목포해양경찰서장 및 해양경찰 지휘부의 판단 오류와 적절하고 효율적인 지휘 미이행, ④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에 관한 문제가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함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규범적 측면에서 특정 국가기관이나 개인에게만 돌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위 모든 행위들이 총체적으로 결합하여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피청구인의 책임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고, 476명이 승선한 배가 침몰함으로써 재해에 준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고 있던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구호조치는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반하여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므로 결국 유가족인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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