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원 "간토대지진 학살, 일본 정부 사과가 양국 관계 첫 걸음"

2024. 6. 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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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토(關東)대지진이 발생한지 올해로 101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며 최소 6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사망했지만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만 고집하는 일본 정부에 제대로 된 조사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하고 있는 일본 의원이 있다.

일본 민영방송 TBS의 앵커 출신으로 제1야당 입헌민주당 소속인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66) 의원이다. 그는 지난 13일 일본 참의원 회관에서 열린 다큐 영화 ‘1923 간토대학살’(김태영 감독)의 특별 상영회를 지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엔 대정부 질문에서 '공문마다 조선인 사망자 숫자가 달라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정부 관계자를 질타하면서 진상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도쿄 치요다구(千代田区) 참의원 회관에서 만난 스기오 의원은 중앙일보에 “위안부나 교과서 문제로 양국 관계가 자꾸만 제동이 걸리는 상황이 안타까워 나섰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양국을 언급할 때마다 "일·한,한·일"이라고 반복하곤 했다.

지난 24일 스기오 히데야 의원이 도쿄 치요다구 참의원회관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원석 특파원

Q :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듯 한데.
A : 우익 쪽 사람들로부터 종종 위협적인 말을 듣지만 무섭진 않다. 진실을 마주할 뿐이다. 정말 일·한관계, 한·일관계가 좋았으면 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진실된 자세로 마주해야만 한다. (양국 관계는) 지금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관계다. 이전 상황을 타개하질 못하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일, 일·한관계가 차갑게 식어버린다. 나라도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Q : 빌리 브란트 서독 전 총리는 1970년 폴란드 유대인 추념비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무릎을 꿇었다. 일본에서도 이런 사과가 가능할까.
A : 간토대지진 당시 도쿄 스미다(隅田) 강변에서 당시 많은 사람이 살해됐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도 세워져 있으니 총리가 가서 꽃을 놓고 사과의 메시지를 내놓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 정부가 사과할 가능성은 낮다. 아베 전 총리 시절부터 우익이 자민당의 '코어(핵심)' 지지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총리가 강하게 나가길 원하고, 총리도 과거사 문제 등에서 한국에 강하게 나가야 지지층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우익의 억지 주장이 펼쳐지더라도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그런 사정이 있을 것이다.

Q : 일본 사회와 정치의 우경화는 얼마나 심각한가.
모두 과거에 식민 지배를 했다는 사실 정도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익이 목소리를 높이는 '역사 수정주의'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있던 사실도 그게 아니라고,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 그런 사람들만 떠드는 것이다. 일본은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앞선 정권에서 했던 것들을 부정할 수 없다. “잘못됐다,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잘못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지금 일본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졌다.

Q : 지난해 대정부 질문에서 정부 사과를 촉구했는데, 반응은.
A : 별로 효과가 없었다(웃음). 왜냐하면 일본 미디어에선 다루지 않는다. 당시 도쿄신문만 '100년 만'이라고 해서 비중 있게 다뤘고 아사히신문은 조그맣게 썼다. 그 이외는 일절 쓰지 않았다. 문제는 미디어이다. 일본 신문들은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Q : 왜 그럴까.
A : 아베 정권을 거치면서 보수 성향 언론의 영향력이 커졌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꼭 우익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지금과는 상관없는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Q : 양국 관계, 개선의 여지는 없나.
A : 열쇠를 쥔 것은 결국 국민, 민중이다. 양국 국민 사이의 관심과 호감은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나보다 내 아내가 한국을 훨씬 잘 안다. K팝과 한국 드라마는 젊은 층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일본인들은 오쿠보에서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한국 음식을 먹는다. ‘국민 레벨’의 상호 이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서도 지금 일본에 관광을 엄청나게 오지 않나.

Q : 양국 국민은 상대방의 문화에 관심이 있지만, 정치 문제로 틀어지곤 한다.
A : 국민이 서로 이해하고 호감을 갖는다 해도 결국 위정자들이 망친다. 일본과 한국이 지금 대립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과 중국이란 거대 양국 사이에 끼어 있다. 북한 문제도 항상 걸림돌이다. 중국은 상대하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 이렇게 양국이 낀 상황에 한국과 일본이 서로 반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나 문화, 여러 측면에서 양국의 협력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 스기오 의원은

「 1957년 후쿠오카(福岡) 기타규슈(北九州)시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TBS에 입사했다. 뉴스 앵커를 맡는 등 36년간 언론인으로 지내다 2015년 퇴사했다. 2016년 참의원(상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지역구는 나가노(長野)현이다.

지난해 11월 17일 스기오 히데야 의원이 일본 참의원 재해대책특별위원회에서 조선인 대학살 문제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일본 참의원 중계녹화본 캡처

스기오 의원은 지난해 11월 일본 참의원 재해대책특별위원회에서 일본 정부 관계자가 “국회도서관에서 확인되는 공문들에는 사망자 숫자가 제각각이라 학살 사실에 대해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그는 “(피해) 인원수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학살 사실을)확인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면 공문서 관리제도가 성립될 수 있냐”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도쿄=정원석 특파원 ju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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